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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새벽녘 약간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자식을 자동차에 싣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선지 고속도로는 그리 많은 차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회색빛으로 덮인 먼 하늘을 말없이 응시하며 지금으로부터 15~6년 전 무심코 지나치듯 흘러가며 들렀던 영월 그리고 정선을 떠올려 보았다. 구불구불한 강원도의 산길, 눈앞에 보이는 온통 산, 산, 그리고 그 산과 산 사이를 흐르던 물과 바람에 대한 느낌을 기억해 보았다.

나는 자동차를 몰아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원주 나들목에서 우회전하여 중앙고속도로를 달렸다. 흐릿한 아침 아스팔트 도로 위를 날렵한 뱀처럼 미끄러지며 움직이는 조용한 운행이 싫지 않았다. 요란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내 새끼들과 아내를 대동한 채 어딘가로 떠나는 조용한 새벽의 여정이 나에게 묘한 쾌감으로 다가옴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청령포 화장실 입구에 걸려있는 팻말
▲ 욕심을 버리는 곳 청령포 화장실 입구에 걸려있는 팻말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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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나들목으로 들어서서 먼저 영월로 향했다. 물안개에 싸인 비감의 청령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청령포 주차장에 내려서 ‘욕심을 버리는 곳’에 들렀다. 내 몸속(아랫배)에 가득 들어찬 포만의 욕구와 욕심의 찌꺼기를 미련 없이 속 시원하게 버렸다.

삼면이 물이고 그 뒷쪽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오지인 청령포
▲ 서강 나루에서 바라본 청령포 삼면이 물이고 그 뒷쪽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오지인 청령포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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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조류의 초록빛이 은은히 풀어져 휘돌아 흐르는, 침묵이 감도는 ‘서강’의 청령포 나루터에 서서 건너편의 소나무 숲과 그 뒤편을 막아서고 있는 산과 하늘을 비감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따름인데, 마치 섬처럼 고립된 청령포의 역사와 지나간 시절의 환상이 물 위의 바람을 스쳐 내게 전율로 다가온다. 아~! 가슴이 찌릿하다. 내 안의 의지로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과 두근거림이다.

배를 타고서 서강을 건너 청령포 자갈밭에 내렸다. 자갈밭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보다 물이 많아서 이 자갈밭을 모두 삼킨 채 흐르던 ‘서강’을 생각했다. 그리고 삼면이 물로 포위되고 산과 절벽으로 둘러쳐져 자욱한 고독과 한을 품은 이 비감의 오지 청령포를 생각했다. 그러나 또한 어이없게도 고요하게 펼쳐진 청령포의 아름다운 비경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감상에 빠진 내 철없는 감성의 아이러니에 대해 움찔했다.

바깥세상과 단절 되고 고립된 채 뭇 짐승과 나무와 산과 강과 바람을 벗 삼으며 하루하루를 소일했을 어린 단종에 대해 생각했다. 날마다 고독과 비애를 눈물로 훔치며 소나무 숲을 거닐었을 어린 단종의 감당할 수 없었던 삶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단종의 한과 슬픔이 서린 비감의 숲에서 가족의 추억을 남겼다.
▲ 청령포의 숲에서 단종의 한과 슬픔이 서린 비감의 숲에서 가족의 추억을 남겼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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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서 단종이 어머니와 부인 송씨를 그리워하며 앉아 있었다는 ‘관음송’을 바라보고, 적막한 바람소리가 휘~이 허공에 날리는 오래된 소나무 숲을 한적하게 걸었다. 그리고 그 숲에서 우리 가족의 조촐한 여행스케치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노산대 절벽 아래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 '노산대'에서 바라본 서강 노산대 절벽 아래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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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종 임금이 그의 숙부인 세조(수양대군)로부터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남쪽의 낭떠러지 절벽 위에 올라 시름을 달랬다고 하는 ‘노산대’ 와 ‘망향탑’ 에 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실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인양 스스로 착각하며 절벽 아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푸른빛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꽂아 두고서 오래도록 침묵으로 몰입하였다.

담장을 넘어 단종의 어소를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있는 듯한 소나무
▲ 충심스런 소나무 담장을 넘어 단종의 어소를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있는 듯한 소나무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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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벽에서 내려와 청령포 소나무 숲 속에 고즈넉하게 갖혀 있는 단종의 어소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조촐하게 지어진 한옥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절을 하고 있는 듯 머리를 숙인 한 그루의 충심스런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유배된 군주를 향해 애절한 충심의 자세로 머리 숙여 절하고 있는 그 소나무를 바라보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무의 순심을 깨달을 수 있는 듯하다. 나와 처자식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담장을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한 바퀴 돌아 나오며 ‘청령포’에서의 기억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단종 임금의 안식처인 장릉으로 향했다.
 
조촐하고 초라한 봉분과 석물로 조성된 장릉
▲ 초라한 장릉 조촐하고 초라한 봉분과 석물로 조성된 장릉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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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덤으로 향하는 비교적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오르는 언덕 양 옆으로 무성하게 연둣빛 새 살을 피우는 신록의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일상의 너저분한 마음의 피로를 툴툴 털을 수 있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과 공기, 몸과 마음을 편안히 다스려주는 초록의 빛깔이 가득한 청정한 영월의 기운이 비타민처럼 내 몸 안으로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서니 약간의 평탄한 곳이 있었고, 나는 그 곳에서 숨을 크게 내쉬며 한 숨을 돌렸다. 저 만치 앞 언덕 위에 초라하게 조성된 작은 봉분과 주변의 조촐한 석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또 다른 삼촌인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사건이 탄로가 나자 단종은 결국 사약을 받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서강 강변에 처참하게 버려졌다. 그랬던 것을 ‘엄흥도’라는 사람이 삼족을 멸한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간신히 수습하여 밀장을 한 곳이 바로 이 곳 장릉이다.

장릉 봉분이 있는 곳으로 오르는 좁은 길 왼쪽 아래를 보면 꺾어진 참도와 정자각, 비각 등이 가파른 경사지 밑에 위치하고 있다. 홍살문부터 참도와 정자각 그리고 봉분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상으로 일관하게끔 되어 있는 조선왕조 능제의 전형이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단종의 죽음 이후 은밀하게 장례를 치르느라 영월 엄씨 선산에 급히 무덤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초급한 상황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조선 왕조 27분의 왕과 비의 무덤 중에서 한양(서울)에서 80리(최대 100리)를 벗어난 곳에 조성된 남한 유일의 무덤인 이 곳은 노산군(단종의 강봉 칭호)이 죽은 지 241년이 지난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복위가 논의되고, 급기야 노산묘에서 장릉으로 능호를 받고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장릉의 옆으로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 홍살문과 꺾어진 참도, 그리고 정자각이 보인다.
▲ 가파른 장릉의 낭떠러지 장릉의 옆으로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 홍살문과 꺾어진 참도, 그리고 정자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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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덤 앞으로 다가가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덤 속에 누워서 바로 옆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을지도 모를 심약한 어린 임금의 안식처가 안녕하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그런 다음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서 무덤 아래로 총총 걸음을 걸어 내려왔다.

무덤 아래에는 단종의 복위 계획을 벌이다 발각되어 그에 연루된 신하들과 노복, 군졸, 궁녀 등이 무참히 죽음에 이른 옥사 사건 연루자들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배식단’과 그들의 위패를 보관한 ‘장판옥’등이 있었다. 나는 그 곳을 천천히 돌아보며 야심과 권력, 그로인한 무고한 생명의 죽음과 억울한 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단종 임금이 이제라도 영원토록 편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장릉의 능원 풀밭에 살포시 내려놓고서 영월의 신비한 비경으로 알려진 ‘선돌’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향했다. 그리고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금세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돌’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언덕에는 나무로 만든 계단이 능선을 따라 있었는데, 쉬엄쉬엄 걸어 올라가니 절벽이 있었고, 망루처럼 생긴 철제 조망대가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커다란 바위(?)가 갈라져 기묘한 중심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선돌을 보았고,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말없이 흐르고 있는 우리가 기필코 지켜야 할 생명의 강을 감탄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내 아이들도, 아내도 ‘선돌’이 보여주고 있는 신비한 비경에 모두들 함께 감탄하였다.

커다랗게 갈라진 바위 틈새로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의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 영월 '선돌'의 비경 커다랗게 갈라진 바위 틈새로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의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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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비경을 본 느낌은 마치 시원하고 상쾌한 사이다를 목으로 벌컥벌컥 충분히 마신 듯한 것이었다. 그렇듯 청량하고 맑은 마음으로 우리는 38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계곡을 스쳐 59번 국도로 접어들어 정선의 구절리로 향했다. 산을 넘고 물길의 옆을 따라 달리는 자동차 차창을 통해 신선한 동강의 물 냄새가 물씬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게다가 마침 주변에 만발한 철쭉과 야생화들의 향기가 더해져 달리는 자동차 안은 온통 때 묻지 않은 향기로 가득 들어찼다. 

구절리 역에서 레일 바이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 구절리 역 '레일 바이크' 구절리 역에서 레일 바이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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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치 카페가 멋들어진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구절리 역에 도착했다.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의 날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발길을 옮기도록 했는가 보다. 구절리역 기차선로 위에는 ‘레일 바이크’를 타려는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서 그들 나름의 추억과 유희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집 딸내미들은 ‘레일 바이크’를 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지 좀처럼 그 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아우라지 역에 있는 멋들어진 어름치 카페
▲ 아우라지 어름치 카페 아우라지 역에 있는 멋들어진 어름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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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지만, 나는 아이들과 아내를 다독여 어름치 카페가 기다리고 있는 아우라지 역으로 향했다. 커다란 어름치 모양으로 만들어진 아우라지 역 앞 카페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고, 소멸되었던 내 안의 동심을 살살 자극하기도 했다. 그 만큼 색다르고 재미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도 아내도 “아이 좋아라!” 하며 신기해하고,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뱃사공이 줄을 잡아당겨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 아우라지 강변 뱃사공이 줄을 잡아당겨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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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우라지 역 앞에 펼쳐진 아우라지 강변으로 발길을 옮겨 잔잔하고 평화로운 물비늘을 바라보았다. 양수인 송천과 음수인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진다’는 뜻의 아우라지는 오래 전 한양으로 목재를 운반하는 뗏목이 출발하던 곳이라고 한다. 나는 그 곳에서 옛 시절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착요 후렴으로 불렀다고 하는 정선 아리랑을 코로 흥얼흥얼거려 보았다. 그러는 사이 저 앞 아우라지 강 위에 뱃사공이 강변의 양끝에 연결해 놓은 줄을 당겨 사람들을 배로 건네주는 모습이 보였다.

아우라지 강변 쉼터에서의 달콤한 휴식
▲ 달콤한 휴식 아우라지 강변 쉼터에서의 달콤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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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이어져 온 오늘의 느닷없는 날치기(당일치기) 강원도 여정이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강변의 원두막처럼 생긴 쉼터에 누워서 오늘 하루 동안 수고한 내 두 다리와 등을 잠시 동안 쉬게 했다. 그런 다음 잠시의 휴식으로 몸을 추스린 후 아우라지 강변에 내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가만히 섰다. 우리는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시선을 모아 저물어 가는 서쪽 하늘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5월 4일 답사여행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영월, #정선, #아우라지,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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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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