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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늙고, 또 치매에 걸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또 병들면 수발을 드는 게 당연한데, 상을 주시다니요.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난 8일, 제36회 어버이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정애순(鄭愛順·52·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씨.

 

“쑥스럽다”면서 겸연쩍어하는 그녀는 마을에서도 소문난 효부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동시에 모신 억척 며느리이자 딸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을회관에서 날마다 노인들의 점심을 챙기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나이 23세에 광부로 일하던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초가집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 두 명과 함께 살았지만 텃밭 하나 없어 살림이 쪼들리기만 했다. 게다가 결혼 4개월 만에 남편이 실직을 당해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때부터 정씨는 날품팔이, 포장마차, 얼음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농지를 사 1990년에는 3300㎡(1000여 평)의 비닐하우스를 마련했다.

 

그 사이 시동생 두 명을 모두 출가시켰다. 식구도 줄줄이 늘어 딸만 여섯 명을 뒀다. 하우스에는 1년 내내 토마토, 오이, 고추를 심었다. 덕분에 생계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다.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막내딸을 제외한 5명의 대학교육도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인근에 혼자 살던 친정어머니가 노환으로 앓아 누웠다. 시어머니도 모시기 어려운 실정인데도 셋째 딸인 그녀는 친정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한 지붕 두 어머니’를 모신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농사일을 하면서도 두 어머니의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차려드렸다. 틈틈이 말동무를 해주고, 날마다 목욕도 시켜드렸다. 대소변도 받아냈다. 친정어머니는 2년 동안 함께 살다 돌아가셨다.

 

그 무렵 시어머니(현재 93세)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30년 이상을 모신 시어머니가 정신을 놓아 더 힘들어졌지만 그녀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지난해 8월엔 둘째딸(30세)까지 위암 판정을 받았다. 거듭된 시련이었지만 그녀는 묵묵히 병수발을 들며 생활해 오고 있다.

 

“힘들지 않았어요. 한때나마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신 게 행복이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살림 탓에 가족들에게 평소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함께 살았으면 싶네요.”

 

정씨의 딸들도 예비 효부들이다. 오래 동안 어머니가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을 가까이서 본 탓인지 할머니 수발을 앞장서서 든다고. “요즘 젊은이들이 효를 모른다고 하는데, 부모가 먼저 실천하면 자식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는 것 같다”는 게 정씨의 얘기다.

 

“제가 하는 일이 효도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만 내 마음이 편해져서…. 부모님이 행복해 하면 자식도 당연히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까?”

 

덧붙이는 글 | 이돈삼 기사는 전남도청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정애순, #효부, #어버이날, #국민훈장 동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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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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