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0일 아침.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는 손님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 옆 이장댁 마당이 분주하다. 담 위로 얼굴만 내밀고 염탐을 한다.
"사진 안 찍남?"
"뭣 하는데요?"
"이모작."
"이모작?"
"아, 못자리 옮긴다고!"
7~8인의 주민들이 품앗이를 하고 있었다. 4월 말 경에 마당에서 보온해서 못자리로 나간 것이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늦게 나가는 모를 이모작이라고 불렀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작과 다르기에 질문을 하였지만 정확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 이모작이 이모작이지 뭔 뜻이 있어!"
10여일 간격인데 날씨가 따뜻해서 이번에는 마당에서 바로 모판 작업을 하고 논으로 운반하는 모양이다. 대략 세 가구 정도의 논으로 배분되는 듯했고 품앗이에 동원된 집은 다섯 집 정도로 보였다.
지난번 못자리 작업은 촬영을 하지 못했다. 물론 몰랐기 때문이다. 알아도 이른 아침에 마을에 당도해야 촬영이 가능하다. 뜻하지 않게 이른 출근을 한 탓에 오늘은 촬영이 가능할 듯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나 찍어달라고 하지 않나. 우리들 밥상에 쌀이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금년에는 기록할 수 있을 듯하다.
"사진 안 찍남? 이모작 허는디"
작업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진행되었다.
1. 모판을 집어넣고
2. 흙을 담고
3. 볍씨를 뿌리고
4. 물을 뿌리고
5. 다시 흙을 뿌리는 과정이 모두 기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별로 인원이 배치되었다. 트럭으로 바로 옮겨 차곡차곡 쌓는다. 이 과정을 모두 손으로 수행했던 시절은 어떠했을까. 참 지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기계화는 필연적이다. 노동력이 없는데 다른 방도가 없다.
이날 아침에 작업한 것이 대략 400개 정도의 모판이다. 마무리, 보강 차원의 못자리 작업이다.
모판 작업은 넓은 논 전체에 씨앗을 바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모판 위에서 볍씨를 발아시켜 논의 못자리로 이동해서 키우기 위한 과정이다. 지정댁의 모판 작업은 채반에 흔드는 방식이었는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 대농은 그래서 젊은 사람들 몫이다. 정확하게는 기계를 가진 사람들이 대농을 한다.
마을에서 품을 파는 일은 아주 정확하게 작동한다. 상대방이 기계를 가졌다고 쉽게 부탁하는 일은 없다. 대가를 지급한다. 하지만 이날과 같은 품앗이에는 대가가 없다.
동일한 작업라인에 서서 균등하게 일을 진행한다. 품앗이의 미덕은 노인이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균등한 노동력으로 취급받는 것에 있다.
노동력 교환 시 가치에 대한 평가가 타산적이지 않다. 참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의리를 기반으로 한다. 서로 간에 노임을 주고받는 노동과 품앗이의 구분은 암묵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싸가지 없는 놈이 되기에 딱 좋은 날이다. 딱 걸렸다.
사진 찍다 말고 "Go Go! Non으ro!"
카메라를 밀쳐 두고 트럭에 올라 모판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 일이 나의 몫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인원이 많고 이동 거리가 거의 없어 지정댁 모판 옮기던 날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경운기로 흙이 한 번 더 옮겨지고 트럭 2대 분량이 모두 채워지기까지 대략 90분 정도 소요된 듯하다.
참외로 마른 목을 달래고 한담을 나누다가 논으로 이동했다.
"Go Go! Non으ro!"
모판을 못자리에 배치하기 위해 운반하는 이 과정이 제일 힘든 듯하다. 허리를 굽히는 시간이 많고 줄을 서서 운반하는 작업의 특성상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한 판 작업이 끝 날 때까지 꼼짝없이 계속해야 한다. 남자는 4판씩, 여자는 2판씩 옮겨 주었다.
긴 장화, 이른바 '물신'을 신지 않았으니 가짜 이장이 못자리로 들어설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경사로에 기대어 서서 모판을 옮겨 주는데 열이 이동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모판을 옮겨 주어야 하니 논두렁 기울기 탓에 엉거주춤한 자세에서는 허리가 아프고 다리는 떨린다. 그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남아 있는 모판을 눈짐작하고 지루한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렇다. 농사일은 끝없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이 과정을 끝내면 남은 대부분의 일은 기계가 대신할 것이다. 그러니까 기계화된 요즘에 있어서 오늘 과정이 가장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 날이다. 마을회관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자장면 시키신 분!"
새참으로 자장면이 배달되었다. 평소 이장의 식사 시간으로 비교하자면 좀 이른 시간이지만 오전 자장면은 작업 중에 반가운 손님인 것은 분명하다. 허기도 달래고 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배달 온 청요리집 사장님은 돌아가지 않고 빈 그릇을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점심 전에는 한가한 듯했다.
"빼갈 한 병 안 들고 왔어?"
"깜박했네."
"고춧가루는?"
"여그 주머니에 갖고 있제. 우리집 고추 매워이잉."
과연 경험해 본 중국집 고춧가루 중 제일 매웠다. 정신없이 자장면 한 그릇을 밀어 넣고
어르신들 눈을 피해 담배 연기 날리고 다시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찍사로 등장했다가 자장면에 팔린 품팔이로 급 신분상승을 하다뉘….
하여간에 맛나요! 부탁도 안했는데 곱빼기를 시켜주시다니.
"곱빼기 아녀! 이거이 보통인데…."
즐거운 외침 "자장면 시키신 분~"
여기서부터 사진이 이상하다. 카메라를 뒤로 메고 일을 돕다보니 모드 설정 버튼이 엉뚱하게 돌아간 모양이었다. 일하는 사이에 잠시잠시 셔터를 눌렀지만 확인할 틈은 없었다. 협동 작업이니 나의 촬영을 기다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 모심기가 아닌 것이다. 이하 사진은 정상적인 사진처럼 만든다고 많은 보정을 한 것이다.
모판이 모두 놓이고 이제 물신 신은 사람들만 작업이 가능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 한 분이 함께해서 종종 작업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아, 저리 가란께!"
"긍께 가고 있자녀!"
"아니, 오지 말고 가란 말이여!"
"그란께 가자녀!"
"아! 오지 말라니깐!"
피복(被覆)을 한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피복은 벗겨질 것인데 이것을 보온못자리라고 하고 가장 일반적인 못자리 형식이다.
피복을 하려는데 작년에 사용하던 피복의 길이가 짧다. 어머니는 다시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다시 사용하려니 길이도 짧고 구멍도 많다. 아들은 새 피복을 준비했고 어머니는 헌 피복이 못내 아깝고 아쉬운 표정이다. 잠시 이를 두고 실랑이가 있었지만 아들이 준비한 새 피복을 사용하는 것으로 의견은 정리되었다. 이제 작업은 마무리다.
반나절 동안 예정치 않았던 못자리 일을 함께 했다. 서툰 일손이지만 꼼지락거리지 않고 최대한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하고 보니 그 노동의 힘듦이 허리로 가장 먼저 전해온다.
모두들 흡족한 얼굴이다.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들을 던진다.
"인자 쌀밥 묵그로 해놨응께."
흙투성이 카메라를 등에 메고 마을 사람들과 논길을 걸어 나왔다.
예상치 못한 노동의 기쁨...그리고, 어르신들의 덕담
"수고했네."
뭔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댁에서 소 먹이시지요?
부산 제 본가 엄니 따라 마트 가면 수입소 삽니다.
손자 3명 모이면 그 먹성에 한우 먹이기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답이 안보이네요. 죄송합니다.
"욕봤소."
뭔 말씀이신가.
레저도 아니고 제가 더 미안하지요.
기회 되면 사진도 찍고 종종 돕지요.
마을 이야기도 좀 합시다.
"중간에 안 가고 끝꺼정 도와주니 고맙네."
엄니는 일흔여섯 해를 해 오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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