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에 나의 경쟁자는 없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허나 집권 70 여일이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 앞에 예기치 못한 강적들이 나타났다. 21세기 대한민국 사이버 민란의 주역, 10대 중고딩이 그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이명박 탄핵서명운동을 벌여 순식간에 130만 명을 훌쩍 넘기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 미니홈피를 맹폭하여 간단히 폐쇄시키기에 이르렀다. 사이버 배틀 스테이지1은 중고딩들의 압승으로 끝났다.
5월 2일부터는 오프라인으로 전투가 확산돼 청계광장에서 맞짱대결이 시작되었다. 2일과 3일 이틀 연속 벌어진 스테이지2의 초반 전투에서는 중고딩들의 어택 파워가 이 대통령의 디펜스 파워를 압도했다. 라이프 포인트가 급격히 감소한 대통령은 검찰·경찰·교사 등의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반격에 나섰다. 여기서 중고딩들의 디펜스 파워가 밀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성인 유권자들이 떨쳐 일어났다. 15일의 정부 고시를 앞둔 현재 오프라인 배틀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감싸여 있다.
왜 한국인가? - 사이버 시민운동의 선구적 전통
왜 10대들이 사이버 민란과 오프라인의 맞짱대결을 주도하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다. 정부에 의한 국민과의 소통의 봉쇄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10대 중고딩들의 반란에 대한 정부 대응의 실패라는 이차적인 문제이지 근원은 아니다.
오히려 소통의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네티즌들의 수평적인 소통일 것이다. 정부는 광우병 괴담론 및 색깔론을 유포하여 국민들의 비판을 원천봉쇄하려 하였으나, 21세기 한국에서 더 이상 정부의 수직적인 정보의 통제와 공작은 성공할 수가 없다.
10대 중고딩들이 대통령과의 사이버 배틀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21세기 IT 강국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했다. 8년 전 총선에서의 낙선운동. 5년 전 대선에서의 노사모 운동. 이런 사이버 시민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을 선도했던 한국이, 21세기에 들어 사이버 시민운동의 세계적인 선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쇠고기인가? - 색깔론으로 생활과 과학을 덧칠할 수 없어
허나 이는 인프라와 문화적 요인일 뿐이다. 수평적인 정보공유는 10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정치’의 등장을 말한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당장 학교급식에 오를 거라는 위기의식이 10대들을 생활정치의 주역으로 부각시켰다는 설명이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왜 10대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식품위생문제는 주부들에게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예를 보더라도 생활정치의 주역들은 대부분 주부들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갖는 생활성과 함께 과학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문제가 사이버 민란의 기폭제가 된 것은, 일차적으로 생활에 밀접한 요소이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갖는 과학성은 두 가지 의미에서 폭발력을 극대화시켰다.
첫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단순 명쾌한 과학적 담론을 형성했다. 네티즌은 생활적인 요소로 인해 위협을 가까이 느끼게 되었고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광우병 문제는 대단히 과학적인 영역이다.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할 소지가 거의 없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여 네티즌들은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때문에 그동안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잠재적인 비판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협상의 타결을 기점으로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부 여당과 어용언론은 과거의 패턴대로 정치적인 색깔론과 괴담 선동론 등 메카시즘적인 원천봉쇄를 기도했다. 허나 과학적 담론에 대한 색깔론 공세는 자멸의 길을 재촉했을 뿐이다.
둘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기폭제에 불과했다. 네티즌들은 과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전 방위적으로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대운하, 영리의료보험 허용 등의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서 불신을 증폭시키게 된 것이다. 이는 촛불문화제에 모인 중고딩들의 호소를 들으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쇠고기의 생활성과 과학성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연쇄적인 폭발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향후의 정국을 전망할 때도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왜 10대인가? - 중고딩에게만 보이는 벌거숭이 대통령
허나 이 역시 왜 10대인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성인유권자들이 사상 최대의 득표차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때, 절대적인 지지로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의원직을 안겨줄 때 이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런데 4월 17일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협상의 타결을 기점으로 이들의 대정부 비판은 온라인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국민여론을 선도했다.
놀만한 곳이 없어서, 아니면 좌빨들에게 선동되어서 그랬을까? 대선과 총선을 치를 때, 대다수 국민들은 임금님이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믿었다. 경제라는 찬란한 금빛 외투를 걸치고 있다고. 가슴에는 747, 등에는 선진화 일류국가라는 구호가 적힌 황금외투를. 그러나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눈을 뜬 10대 중고딩들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임금님은 발가벗은 알몸이란 것을. 그것도 아주 추악한 알몸이었다.
한국의 IT인프라, 시민운동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생활문제와 논술고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움직인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10대의 순수한 열정이 아닐까? 결국 왜 10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10대이기 때문에 10대다’라는 우문우답의 순환논법이 되고 말았지만, 성인유권자들의 탐욕스런 욕망을 깨우친 것은 10대의 순수한 열정이라는 대답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왜 10대 여학생인가, 이 문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폭설을 방치하면 길이 막히고 집이 무너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에 민주화운동자들을 일컬어 70년대 놀고먹던 사람들이라 칭한 바가 있다. 요즈음 분노하는 10대 중고딩들의 외침 역시 이 대통령에겐 쓸모없고 거치적거리는 폭설로 밖에 인식이 안 돼는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폭설이 그치기를 기다린다고 표명하고서 뒤에서는 메카시즘과 공안정국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 명쾌한 과학적 담론인 쇠고기 문제에는 이런 방식은 원천적으로 먹히지 않는다. 탄압이 강하면 반발을 높일 뿐이다. 대통령은 10대 중고딩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현명한 해법을 찾길 바란다.
“나는 양치기 대통령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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