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5일) 하루 사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두 가지 다 1만원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또 생각해보니, 두 가지 다 입맛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씁쓸한 면도 있었고 흐믓한 면도 있었지요.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5월 이야기 한 소절을 또 불러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저 사이에서 돌고 돈 1만원
아침부터 집안에 작은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요즘 집에 큰돈 들어갈 일이 많아서인지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지 않았던가 봅니다. 내심 용돈을 바라며 어머니 옆을 서성이고 눈에 띄는 곳에 앉으셔서 어머니만 쳐다보시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묻습니다.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니… 그게… 뭐…"
"돈? 나 요즘 돈 없어요."
"없다구? 아… 그렇군."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또 쳐다보십니다.
"자, 1만원. 더 이상은 안 되요"
"……."
"왜요, 더 필요해요? 나 돈 진짜 없어요. 그냥 그걸고 살아봐."
"……."
"차라리 지금 있는 돈을 써 봐. 만날 달라 소리만 하지말고."
그 때 제가 끼어들었죠.
"여기요. 1만원. 어머니 쓰세요."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쏘아붙입니다.
"거 봐요. 주니까 생기잖아."
오랜 경비 일을 그만 두시고 이제는 집안에서 쉬기만 하시는 아버지는 용돈에 매우 큰 의미를 두십니다. 1만원이든 1000원이든 받으면 '좋아라' 하시죠. 그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되지 못해서 탈이긴 해도요. 오늘도 그랬었죠. 얼마든지 달라, 외치고 싶었을 아버지 마음을 오늘은 제가 어머니를 통해 채워드린 셈입니다.
하여튼, 한 분은 용돈 문제로, 한 분은 큰돈 들어갈 집안일 걱정에 벌어지던 실랑이는 제때 끼어든 제 덕분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드린 1만원을 들고 병원에 가셨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유유히 집을 나가셨습니다. 자칫 적잖은 다툼이 될 수도 있는 일은 잘 마무리되었고 그렇게 하루는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어머니께 드린 1만원은 병원비 대신 불고기로...
해가 지고 날이 다 지나갔습니다. 평소 같으면 일찍 오셨을 아버지는 오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루에선 무언가 지글지글 볶는 소리가 났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고기를 양념해서 볶고 계셨던 거죠. 불고기요.
누구 못지않게 손맛이 좋으신 어머니 덕분에 맛있는 저녁밥상을 받았습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이거 맛있네요."
"음, 그래?"
"이런 게 집에 있었나요?"
"아니, 사 왔지."
아차, 그럼 병원치료비로 쓰실 1만원을 결국 여기에 쓰셨나봅니다. 또 물었습니다.
"양념은요? 양념 되어 있는 걸로 사놓으셨던 거예요?"
"무슨 소리니, 내가 했지. 이 정도해서 밖에서 먹으려면 몇 만원 할 걸?"
"그렇겠네요."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내가 요즘 입맛이 사나봐. 보약 먹고 더 그런 것 같네"
그 보약, 대부분 저와 아버지가 먹어치웁니다. 동생은 자주 안 먹고요.
결국, 모든 게 드러났습니다. 1만원은 결국 제 입으로 다시 돌아왔고 맛있는 양념까지 덤으로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 한 끼 뚝딱 다 해치우도록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1만원의 잔치, 결국 술 한 잔에 유유히 사라지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 전화 받으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흔들리듯 들렸습니다. 그때 동시에 마루에서 어머니께서 전화로 누구와 통화를 하셨습니다.
"뭐해요? 어디냐구? 빨리 와요. 술 먹지 말고."
"알았어요. 간다구, 간다구, 간다구."
집 앞에 이미 다 와서 어머니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는 같은 소리를 혼자서 반복하시고 계셨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막상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 모습은 거의 인사불성 수준. 저녁밥은커녕 아무것도 더 이상 드실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대로 안방으로 직행하셨죠.
어머니는 맛있는 저녁밥 먹고 좋던 기분 다 망치시고 혼자서 텔레비전을 째려보셨습니다. 아버지의 중얼거림은 배경음악(?)이 되어버렸고요. 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말이죠.
가만 생각해보니, 하루 사이에 10000원 두 장에 얽힌 일이 많더군요. 주고받는 기쁨도 누렸고, 주고받는 사랑도 나누었고, 또 되돌아오지 않는 한 잔 술의 쓰린 뒷맛도 보았습니다. 1만원짜리 두 장으로요.
입맛이 살아난다고 넌지시 눈치 주신 어머니. 술맛에 입맛을 빼앗긴 채 평소 다짐도 내버리고 빈손으로 집에 오신 아버지. 저는 그렇게 1만원짜리 두 장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분 이야기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어떤 입맛을 더 챙겨야 할지는 더욱 분명해졌지요. 부모님 건강을 챙기는 일 중에는 이렇게 입맛을 살피는 것도 포함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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