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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을 떴다. 머릿속이 깨끗했고 기분이 맑았다. 매일 아침마다 생각나는 회사일 스트레스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이곳은 십년 넘게 내 마음 속 여행의 이상향으로 남아있던 스위스의 인터라켄(Interlaken)이었고, 호텔의 창문을 통해 알프스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간밤 아주 늦은 시간에 인터라켄 서역에 도착했고 몹시 피곤했었다. 호텔 앞 바에서 몇 사람만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밤 시간의 인터라켄은 조용했었다. 유럽 최고의 대도시 파리에 있다가 밤에 만난 알프스의 산 아래 동네는 아늑하기만 했다.

 

인터라켄은 어느 계절에 가장 아름다울까?

 

 

나는 아직 인터라켄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산책길에 세면을 하고 나갈지 잠시 생각하다가 면도만 하고 호텔을 나섰다. 샤워는 아내가 화장을 하는 시간에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방이 있는 2층에서 내려와 호텔 로비의 문을 열고 나섰다. 호텔 2층 베란다에는 붉은 바탕에 십자가 문양의 스위스 국기와 함께 베른주(州)의 주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베른주를 상징하는 곰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아!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내 기억 속 눈 쌓인 겨울의 인터라켄은 간 곳이 없고, 여름날 아침의 따스한 햇살이 넓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인터라켄은 어느 계절이 더 좋은지를 생각해 보았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인터라켄은 아름다운 것 같았다. 겨울의 인터라켄은 온통 백색으로 뒤덮인 눈의 나라였고, 여름의 인터라켄은 초록색 초원 위에 설산이 어울리는 풍광을 선사하고 있었다.

 

 

인터라켄 서역과 동역을 연결하는 회에(Hoheweg) 거리는 아레(Aare)강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거리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조금 걸어갔다. 눈앞에 바로 아레강이 보였고 아레강에는 알프스의 빙하 녹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브리엔츠(Brienz) 호수를 통과한 아레강은 툰(Thun) 호수를 향해 거센 물살을 움직이고 있었고, 석회질을 품은 강물은 푸른색 위에 회색을 덧칠하고 있었다.

 

원래 인터라켄이라는 도시 이름도 '호수의 사이'라는 뜻이고 그 호수는 바로 툰호와 브리엔츠호를 말하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긴 강인 아레강은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을 관통하고 국경에서 라인 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인터라켄의 아레강은 브리엔츠 호수 쪽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브리엔츠 호수가 있는 동쪽 산위로 아침 해가 눈부셨다. 세상은 밝기만 했다.

 

원래 알프스를 오르는 등산 기지로 발전했던 인터라켄은 현재도 알프스 융프라우를 오르려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회에 거리에는 호텔과 카지노 외에도 퀼트 가게, 전통옷 가게, 스위스 칼 가게, 목각인형 가게, 스위스 록 크리스탈(Rock Crystal) 가게를 열고 있는 샬렛(Chalet)이 가득 이어진다. 13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빅토리아 융프라우 호텔(Victoria Jungfrau)도 아침 햇살을 받아 거대한 몸체를 빛내고 있었다.

 

아침의 햇볕 사이로 일단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융프라우(Jungfrau)에 올라가기 위해 저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한 모양이다. 이 일본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인터라켄에서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애완견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인터라켄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리를 쉬려고 길가의 벤치에 앉았다가 도로변의 쓰레기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검은 색 쓰레기통의 중간에 흰 줄이 둘러져 있고, 그 위에 'Thank You, Merci, danke'라고 3개 언어가 적혀져 있었다. 독일 민족과 프랑스 민족 등 여러 민족이 어울려서 연방국가를 이룬 스위스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광경이다. 스위스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도 국민들이 단합하면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에 공원(Hohe Matte)의 잔디밭 뒤편으로 만년설을 머리에 인 융프라우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과 달리 여름에는 융프라우에만 만년설이 쌓여 있고, 그 아래에는 회색의 암벽과 초원 지대가 드러나 있었다. 회에 공원 뒤편의 민가와 호텔에서는 창문을 열면 눈 덮인 융프라우가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스위스 사람은 '센스쟁이'?

 

우거진 나무 뒤편으로 알프스를 닮은 교회의 첨탑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교회의 첨탑은 산이 날카로운 이곳 알프스와 아름답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교회 앞에는 일본 오츠(大津)시에서 기증한 '우호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고, 일본 오츠 시장의 이름까지 각인된 비석이 서있었다.
 
나는 일본 정원과 알프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뭉툭한 산과 어울리는 일본의 정원은 이 인터라켄에서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의 평화를 만끽하며 인터라켄 동역(Interlaken Ost)까지 천천히 걸었다. 잠시 다리를 쉬었다가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데 다리가 꽤 피곤했다. 아침 시간이라 회에 거리에는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나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서 돌아갔다. 나는 피곤하게 걸으면서, 많이 걸으려면 역시 신발이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알프스에서 트래킹을 하는 딸을 위해 이곳 인터라켄에서 등산화를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 딸과 함께 신선한 알프스의 유제품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인터라켄 시내로 나왔다.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등산열차를 타는 것은 조금 미루고 어린이용 등산화 파는 가게를 찾아가기로 했다.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시간은 조금 늦어지겠지만 나는 자유 여행자였다.  

 

호텔에서 가까운 신발가게에는 어른들 구두와 운동화만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라켄에 어린이 등산화를 파는 곳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가게 아주머니는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어린이 등산화와 운동화를 파는 가게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인터라켄 여인이 넓은 등산화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이 여주인은 신영이의 발 크기를 대충 보더니 이내 예쁜 등산화를 가지고 왔다. 신영이 발에 그 등산화를 신겨 보더니 조금 더 큰 등산화를 가져왔고 다시 신발을 신기고 능숙하게 운동화 끈도 매준다.

 

이 여주인은 대부분의 스위스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어도 능숙한데다가 눈치도 빠르고 손놀림도 빨랐다. 아내와 나는 이 여자가 참 장사를 잘 한다고 동시에 말했다. 유럽 여행에서 유럽의 각 나라 사람들과 부딪쳐 보면, 유럽 내에서 스위스 사람들만큼 센스 있고 행동이 빠른 사람들도 없다.

 

아내는 내가 몇 년째 신고 있는 헌 운동화도 버리자고 했다. 내 운동화가 뒤축이 많이 닳았고 발뒤꿈치 쪽이 찢어진 곳이 있는 데다가 이 신발 가게의 예쁜 운동화들이 아내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정든 신발을 버리기 아까웠지만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아내는 가격이 불합리하게 비싼 제품만 아니라면 한번 사고 싶은 것을 꼭 사고야 마는 집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화의 착용감은 예상 외로 가벼웠다. 우리는 새로운 신발을 신고 인터라켄 동역을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이 인터라켄의 운동화는 이후 유럽여행의 수많은 도보여행을 지켜 주었다. 나는 이 운동화를 볼 때마다 스위스의 인터라켄과 융프라우가 생각났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인터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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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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