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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서 카메라를 빼놓고 가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마음속에 어떤 심각한 폭풍우가 몰아쳐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이 아니라면. 혼자든 여럿이든 이 땅이든 바다 밖이든 카메라는 여행자의 필수 품목 1호다. 일상적으로는 종이와 펜이 기록의 도구이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카메라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가는 곳, 먹는 것, 보는 것, 여행자는 쓰지 않고 찍으면서 기록한다.

 

여행에서 사진 찍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수렴된다. 하나는 인물(본인) 중심으로 찍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런 사진을 찍는다. 에펠탑, 모나리자, 콜로세움. 유명한 장소를 찍은 사진의 상하좌우 어딘가에는 반드시 여행자가 끼어 있다.

 

여행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찍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유독 자신을 찍는 데 집착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이런 사진은 자연스레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방문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라가게 된다. 여행의 기록이자 '증명'의 차원에서 아주 실용적인 사진이다. 반면 여행자 자신은 프레임 안에 잘 들어가지 않고 보이는 대상을 찍는 유형이 있다. 산, 바다, 다리, 성당, 왕궁, 정원……. 여행자는 자신이 보는 것을 스케치하듯 카메라에 담는다.

 

나는 후자의 경우다. 사진 찍는 걸 특별히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사진 찍히는 게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일단 사진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발이 잘 받지 않을 뿐더러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평소 불만스러웠던 얼굴의 특징이 다시 한 번 각인돼 금세 얼굴이 미워진다.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카메라는 시선이다. 카메라를 어떤 대상에 들이대는 건 몰랐던 것, 어두웠던 것을 밝게 드러내는 행위다. 방송 뉴스에서 범죄 현장을 기습해 카메라를 비추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렌즈를 가리는 것이다.

 

시선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다. 보고 있는 자가 보이는 자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사사로운 여행이나 일상의 인간관계에서까지 이런 걸 적용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선 나를 향하는 카메라가 적잖이 거슬린다. 게다가 사람의 눈은 뇌라는 불완전한 기억장치에 의존해 쉽게 지워질 수 있지만  카메라가 기록한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 그게 두렵다.

 

지난 4월 한달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음악이나 미술, 하물며 요리 같은 데도 특별히 관심이 없는 나에게 한 달간의 유럽 여행 기간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준 건 카메라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여유로운 위치에 서서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물론 내 시선 속에 나는 등장하지 않았다. 자연, 건축물, 사람들을 지칠 때까지 살펴보고 관찰했다.

 

사실 우리의 여행 문화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다 보니 한 번에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다. 유럽 같은 경우 방문국가의 개수를 늘리는 데 안간힘을 쓴다. 이동 시간이 길어지고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다. 카메라는 이동하려는 몸을 잡아당긴다. 조금 더 보고 가라고. 사진을 찍으려면 잠시 멈춰야 하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잠시 생각을 해야 한다.

 

주요 유적지 앞에서 급하게 사진 찍고 '다음 코스로' 하는 여행은 비싼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작품 하나 건지자는 열의만 있다면 차를 타기보다는 걷고, 오늘 떠날 거 내일로 미루며 시간을 잡을 수 있다. 확실히 카메라는 여행의 좋은 친구다.

 

나 같은 아마추어들이 여행사진을 찍으면 어떤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동안 익히 봐왔던 사진들을 떠올리며 여행지에서 그런 장면들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아마추어의 숙명이다. 창조적인 사진을 만들려면 모방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성당이나 미술관, 각종 유적지의 건물 사진 아니면 산과 바다, 초원 같은 풍경 사진, 아니면 꽃이나 풀을 접사 촬영하거나 현지인들의 모습을 담는 인물사진이다. 특히 인물 사진에는 여행자가 상상하는 현지인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유럽이라면 벤치에서 책 읽는 할머니(이번 기사 처음에 실린 사진 같은 것)나 사랑을 표현하는 노부부,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이들 따위의 사진이겠고, 동남아시아나 중남미는 여행자의 눈에 신기하고 순수할 것 같은 원주민 사진들일 테다.

 

그렇지만, 틀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인물사진은 여행사진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게 아닐까 싶다. 건물이나 풍경사진은 누구나 그 자리에서 찍을 수 있고 똑같은 그림이 나온다. 자연이나 건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찍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피사체가 등장한다. 찍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 다양한 인물 연출을 할 수도 있다. 반면 인물사진은 위험하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여행자의 편견이 개입될 소지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현지인들의 사진은 대체로 어린 아이이거나 노인들, 엄마와 아기 모습 따위가 많다. 그 사진들 속에서 어떤 '순수함'을 찾으려는 여행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 여행자 앞에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 찍을 때마다 동전을 받는 현지인들은 여행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기대했던 순수함이 사라져서 아쉬운가. 그냥 '합리적인 사람들이군'하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나는 인물 촬영을 하면서 최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설사 재미없고 무의미한 사진이 되더라도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 일상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그냥 편안하게 사람 구경하듯이, 스케치하듯이.

 

여행 기간 나는 인물 촬영과 함께 접사 촬영의 재미에도 푹 빠져 있었다. 어쩌면 접사 촬영은 여행사진의 '본분'에 위배되는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여행사진은 내가 그곳에 갔다는 '증명'의 목적이 강하지만 접사촬영은 장소나 배경이 사진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여행지의 특징을 사진에 실을 수 없다. 대신 접사 촬영은 우리가 익숙한 시선의 이동 중에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포착하는 힘이 있다. 접사를 찍으려면 조금 더 낮은 시선으로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여행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을 줄이면 여행지에서의 사진 찍기는 더 즐거워진다. 사진을 잘 찍으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외려 사진 찍는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진은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견하려면 충분히 시간을 갖고 보고 느끼는 과정이 필요한데 눈에 보이는 것을 프레임에 담으려고만 애쓰면 정작 내 마음속에 담기는 건 없다. 우린 사진작가가 아니므로 어차피 뛰어나게 잘 찍을 수도 없다. 그냥 편안하게 사진을 놀이로, 기록의 도구로 생각한다면 둘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태그:#여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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