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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다는 게 고등학생 겁주기입니까?"

"너무 나이 어리다고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가?"

"경찰서 구내식당에 벌써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나…"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조용하던 지역 중소도시가 수입 쇠고기 파문으로 시끄럽고 사나워졌다.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신고를 한 고등학생의 학교를 찾아가 집회신고 배경 등을 캐물은 것이 드러나자 전주시의 해당 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는 비난의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전주덕진경찰서 소속 한 형사가 전주 시내 고등학교를 찾아가 촛불집회 신고를 낸 이 학교 3학년 학생을 상대로 집회신고 배경 등을 조사했다. 형사가 학생주임교사를 통해 학생을 학교 상담실로 불러낸 뒤 학생이 전북지역 대표로 있는 인터넷 카페 모임 정책반대시민연대의 결성 시기와 배경, 회원 수 등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경찰관의 조사가 수업 시간에 이뤄졌느냐, 쉬는 시간에 이뤄졌느냐 하는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전교조와 시민단체들이 나서 사과와 책임을 묻는 등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까지 연일 술렁이고 있다. 누가 이토록 이들을 분노와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는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문이 엉뚱한 양상으로 번져 잔잔한 지역민심까지 갈라놓고 있다.  

 

지역언론, 진실보다 사실전달에 급급... 아예 발 뺀 곳도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신고 고교생 건을 일제히 사회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전북일보>는 16일 '경찰, 촛불집회신고 고교생 학교서 추궁'이란 제목의 사회면 머릿기사를 통해 "학교를 찾아간 경찰이 소속된 전북경찰청과 전주덕진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항의 글이 잇따르고 있고, 경찰의 이번 행태를 질타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도 연이어 발표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학생이 당시 한국지리 수업을 받고 있던 중 불려나온 것으로 말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고 <전북일보>는 이 기사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집회신고가 접수됐는데 처음 보는 단체이고 신고자가 고등학생이어서 확인과 함께 집회 협의를 위해 찾아갔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며 이날 오전 10시 40분에 학교에 도착해 학생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종소리가 들린 뒤 2~3분 뒤 학생을 만난 것으로 수업 중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라고 반론도 반영했다.

 

<새전북신문>도 이건을 사회면 머릿기사로 비중 있게 다뤘다. '수업 중 담임에 끌려나가 경찰조사'란 제목이 눈에 띈다. 이 기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위해 집회신고를 한 전주 W고등학교 학생이 수업 중 끌려 나가 경찰 조사를 받아 논란을 빚고 있다"며 "특히 해당 학교측이 이같은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사실도 드러나 비난여론을 부채질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같은 사실은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며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경찰이 집회 신고 학생을 조사한 점과 수업 중 학생을 불러내 학습권을 침해한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사의 강압적인 행동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CBS노컷뉴스 보도 후 진실공방 가열, 그러나... 

 

경찰이 촛불시위 집회 신고를 낸 고3 학생을 불러내 무리하게 조사했다는 <CBS 노컷뉴스> 보도와 관련해 경찰이 해당 경찰관에 대해 경위조사에 착수하면서 진실공방 파문은 커졌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경찰관이 학생을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조사하는 등 과잉수사 정황이 드러나면 처벌한다는 방침이지만 파문은 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신고를 한 고교생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건이 알려지자 전북지역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내고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1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는 성명을 통해 "도교육청은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탄압에 앞장 선 해당 고등학교에 대해 즉각적인 감사에 착수하라"고 말했다.

 

전북여성단체연합도 이날 성명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경찰은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전북평화와 인권연대는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방어하기 힘든 학생을 경찰이 조사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학교 역시 수업권 침해까지 하면서 경찰 조사에 응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전북도민일보>는 이날 사회면 '조사시간 쉬는 시간-수업 중 주장 엇갈려'란 제목의 기사에서 진실공방을 다뤘으나 진실은 찾지 못했다. 이 기사는 "15일 해당 전주 모 고등학교 교감과 학생주임 등 학교 측은 학생이 경찰에 불려갔던 지난 6일 오전 10시 40분께 형사가 학교를 찾아와 "학생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요청해 30분 후인 11시 10분 수업을 마친 쉬는 시간에 학생을 상담실로 인도, 형사와의 면담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학생이 '쉬는 시간이 아닌 수업이 끝날 무렵 불려나갔다'며 학교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또 "누리꾼들은 해당 경찰관의 소속 경찰서와 학생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인터넷에선 해당 경찰관과 담당교사 해임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상관조정기능 아쉬운 지역 저널리즘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 등 시민들은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헛갈린다는 반응이다. 양비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지역언론의 기계적인 균형과 환경감시기능 외에 상관조정 기능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날 그 많은 지역신문 지면의 사설과 논평 등에선 상관조정기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사실보다 사실에 은폐될 수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임을 망각한 것일까. 한 언론사에 의해 뒤 늦게 밝혀진 사실의 진실공방에서 아예 발을 뺀 언론들도 눈에 띈다.    

 

5·18 민주화운동 28주년 기념일 불과 이틀 앞둔 광주·전남지역도 쇠고기 수입 파문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남일보>는 16일 "반발 뻔한데 美 쇠고기 홍보하라니…"란 제목의 기사는 정부의 홍보요청에 일부 지자체가 외면하고 있고 심지어 공무원도 '잘못된 요구'라며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이 기사는 "행정안전부는 지난 7일 광주시에 보낸 공문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관련 교육자료'를 각 자치단체 홈페이지 등에 게시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며 "행안부가 첨부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교육자료는 한미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농림수산식품부가 만든 130여 쪽 분량으로 △ 광우병 괴담 10문 10답 △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의결과 및 대책 △ 미국산 쇠고기 관련 문답자료 △ 보도자료 △ 담화문 등이 담겨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문을 전달받은 일선 자치구중 일부는 행안부가 보낸 교육 자료를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지 않는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칫 정부의 입장을 담은 교육 자료가 주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광주 5·18 국민대회?

 

이 기사는 "공문을 접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홍보 요청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일고 있기도 하다"며 "일부 구의 경우 아예 관련 부서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부서에 게시 요청을 하지 않기도 했다"고 공직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가뜩이나 '국민 생명권을 위협하는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협상 무효'를 촉구하는 '광주·전남 518인 선언' 기자회견이 지난 14일 광주 YMCA에서 열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곳이다.

 

"미 쇠고기 수입은 국민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내 축산업 붕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는 농민들의 분노를 일선 공무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일까. 이틀 후에 열린 5·18 행사를 걱정하는 사설도 등장했다.

 

<무등일보>는 16일 사설 '걱정스러운 5·18 국민대회'에서 "28주년 전야제와 기념식이 열리는 17·18일에 농민회를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때맞춰 집회와 행사를 갖는다"며 이렇게 우려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사태와 FTA 비준반대, 한반도 대운하 등 최근 사회적 현안에 대한 항의 집회다. 여기에 전국의 대학생들도 17일 조선대에서 한총련 선포대회 및 출범식을 개최하고 18일 5·18묘지를 참배한뒤 오후에는 국민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격렬한 시위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광주드림> 사설에서 돋보인 상관조정기능

 

그러면서 이 사설은 "군부독재 시절처럼 5월 행사장 곳곳이 충돌의 장이 돼서는 안된다"며 "광주의 5월 정신은 이미 전국화와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고 걱정했다.

 

그런가 하면 이날 <광주드림>은 사설 '누가 충돌 빌미 제공 하는가'란 사설에서 "경찰 최고 책임자는 '5·18 기념행사에서의 시위·집회가 불법행위로 변질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며 "나아가 '2003년에도 일부 불법이 있었던 만큼 이를 감안해 대비하겠다'고 까지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설은 "경찰청장이 나서 '불법행동' '강경대응' 등을 운운한 것은 되레 이들을 자극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며 "자극에 의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관련 단체는 물론이거니와 경찰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5·18 기념일을 전후해 광주에서는 많은 집회가 예정돼있다. 경찰도 평화적 집회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장해야 하며 어떤 경우라도 과잉대응으로 물리적 충돌을 유발해선 안 된다"는 이 사설은 이날 가장 돋보인 상광조정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저널리즘은 단순히 이름과 날짜를 틀리지 않기 위해 사실에만 집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 본령은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다. 사실 때문에 왜곡되거나 가려진 진실이 많다는 점을 되뇌이게 하는 16일 아침이다.


태그:#전주덕진경찰서, #수입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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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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