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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들이 다채롭다.

 

서울시극단은 김은국 원작, 정진수 연출의 <순교자>(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5.14~6.1)를 무대에 올렸고, 국립극단은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살아 온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지난 100년을 뒤돌아보는 <백년언약>(오태석 작·연출, 5.28~6.1, 국립극장)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로 창단 39년을 맞이하는 산울림 극단은 <해외문제작 시리즈>와 <한국 연출가 대행진>을 통해 한국 연극 100년의 의미를 짚어본다. 그 중 해외 문제작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트릿>이 지난 6일 무대에 올랐다.

 

“당신은 대접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취급당하고 있습니까?”

 

앤과 패트릭이 앤의 아파트에서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데이브가 들이닥친다. 데이브는 들어오자마자 패트릭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며 화를 내고, 앤은 경찰에게 전화하기조차 두려워한다.

 

앤과 데이브는 지난 2년 6개월간 연인 관계였고, 데이브가 장기 해외출장을 간 사이 앤은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데이브와의 결별을 감행했던 것이다. 패트릭은 앤의 직장 동료로 현재 앤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데이브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앤에게 해명을 요구하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막을 몰랐던 패트릭을 자기편으로 만들려하는데... (산울림 발췌)

 

앤(김지성 분)은 매력적이고 지적인 젊은 여성의 표본이다. 그녀는 반듯한 직장과 신문사 임원인 애인(패트릭, 서태화 분)을 두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과거의 연인이었던 데이브(최광일 분)의 폭력성과 독선에 지쳐 있던 앤은 자상하고 따뜻한 패트릭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들의 행복은 데이브의 기습에 무너진다. 패트릭과 데이브 사이에서 갈등하던 앤은 홀로서기에 나서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위태롭기만 하다.

 

어느 새 데이브의 폭력성과 독선에 길들여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앤.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집을 뛰쳐나갔던 130년 전 노라의 선택과 비교된다.

 

 

객석의 '노라'와 '앤'들을 위하여

 

원작자 크리스토퍼 햄튼은 <위험한 관계><토탈 이클립스> <칼링톤> <어톤먼트> 등을 쓰고 각색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들을 수상한 작가다.

 

그가 입센의 <인형의 집>을 각색하다 영감을 받아 쓴  작품 <트릿>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두 발로 직립보행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현대여성의 딜레마를 직설적으로 꼬집는다.

 

관람 포인트

우유부단하고 소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서태화와 거칠면서도 능글맞은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 최광일. 그리고 둘 사이에서 흔들리는 현대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묘사한 김지성. 세 배우의 연기 조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감각적인 대사들의 향연. 그리고 막의 사이마다 주인공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울려 퍼지는 올드팝의 선율은 극의 몰입을 돕는다. 혹, 젊은 여성이라면 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대비해 본다면 색다른 감상이 될 것이다.

연출가(박혜선)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할 정도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면서도 사랑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현대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 평가를 대변하듯 객석의 대부분을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

 

노라가 자아를 찾아 집을 나선 지 130년이다. 햄튼의 원작이 쓰여진 후로도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130년 전의 노라와 30년 전의 앤. 그리고 현재의 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연극이 끝난 후, 극장을 나서는 객석의 숱한 '노라'와 '앤'들이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지 사뭇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6월 8일까지 서울 산울림 소극장.일반 30,000원 대학생, 경로, 장애인 20,000원 . 문의) 02-334-5915.


태그:#트릿,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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