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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 21일은 '부부의날'입니다. 부부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날짜도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는 뜻에서 21일로 정했다고도 합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가정의 시작은 부부가 아닐까요? 부부의날을 통해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고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이 부부가 사는 법'을 주제로 몇 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신혼 때 얼마나 싸웠는지 평생 싸울 것 다 싸운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싸웠는지, 참… '에너지도 넘쳤다' 싶다. 지금은 기운이 달려서도 그렇게 못 한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싸웠을까?

그때는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이 되지 않았다. 내 방식으로 상대방을 바꿔서 살고 싶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으므로. 나와 생각이 다른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역시 '나이도 어린 것이, 여자가' 하는 의식에서 자기 뜻대로 내가 살아 주길 바란 것 같다.

일명, '주도권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서로 지기 싫어서, 부부가 될 준비가 전혀 안 된 우리는 자주 싸웠다. 싸울 당시는 "내가 미쳤지, 왜 결혼했나?" 후회를 수없이 했다.

"뭣이라, 이 여자가 지금이 몇 신 줄 아나!"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그날도 여느 날처럼 싸웠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을 잊을 수는 없다. 도저히 숨이 막혀서 그와 한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숨 좀 쉬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시각은 밤이 늦었는데 모르겠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나 지금 좀 나갈란다."
"뭣이라, 이 여자가 지금이 몇 신 줄 아나, 11시가 넘었다."
"몰라, 집에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나가는 건 마음대로 나가도,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 못 들어올 줄 알아라."

나가지 말라고 팔을 잡고 엄포를 놓는 남편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무작정 나와 거리를 걸으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동네 한 바퀴 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집으로는 자존심이 상해 못 가겠고, 주머니에는 그저 1~2만원이 들어 있었다.

홧김에 지갑도 안 가지고 그냥 나왔다. 호주머니에 그나마 몇푼 있는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10년 전이야 요즘처럼 찜질방이 성행했던 것도 아니고, '사람 많은 곳'을 생각하니 집에서 가까운 동대구역이 떠올랐다.

'그려, 거기에 가면 사람이 꽤 있어 이 밤 지새울 수 있을 겨' 그러면서 남편이 출근한 다음에 들어갈 생각으로, 하룻밤 역에서 보낼 생각을 하고 택시를 잡았다. 늦은 시간에 젊은 여자 혼자라 기사아저씨가 백미러로 쳐다보는 시선이 영 못마땅했다. 기어이, "새벽 기차 타시나 봐요" 하고 묻는 바람에 얼 덜 결에 "아, 예"하면서 내린 기억이 난다. 기본요금이 나오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밤길 무서워 택시를 탔는데,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역 대합실에 가서 의자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신문을 봐도, 우동 한 그릇을 천천히 먹어도, 시계는 왜 그리 더디 가던지…. 역에는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 안전하기는 하였으나, 기차가 도착해 개찰구가 몇 번 지나가도 꼼짝 않는 젊은 여자를 점점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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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나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간이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고, 근무하는 아저씨는 자면 안 된다고 하는 얘기가 들렸다. 여기도 아침까지 있기는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

정말 시간은 더디 갔다. 도저히 못 견뎌 나왔지만 나와 봐도 별 수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 친정도 있고, 형제들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모두 고개가 저어졌다. 기차를 타도 돈이 부족하다. 신용카드는 고사하고, 그 흔한 현금카드나 몸에 금목걸이 하나 걸친 게 없었다. 결국 기차를 타지 못하고, 역에서 나와 집까지 걸어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ㄱ'자 복도식이라, 꺾어진 복도 끝에서 우리 집 현관문이 보였다. 남편이 현관문을 나오더니 밖으로 나간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찾으러 나간 것 같다. 처음에는 화가 났겠지만, 점점 걱정이 되었는지….

지금 들어가면 아무래도 화는 낼 것 같지 않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그냥 거기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락날락 몇 번 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아이고, 집 밖에 나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러다 남편이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하겠다 싶고, 나도 지쳐서 초인종을 누르니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곤, 전화를 하더니 "장모님 집사람 들어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다. 남편이 걱정돼서 친정에 언니네 오빠네 여기저기 전화를 한 통에 나의 가출사건은 다 알려진 상태였다. 

생각도 못했는데, 웬 망신살? 하긴 그땐 휴대폰이 없었으니. 아니, 전화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 후 한동안 지겹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부부가 일심동체라고? 아니다, '이심이체'다

중년부부의 다정스러운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
 중년부부의 다정스러운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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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결혼 10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었다. 무턱대고 나간 가출은 자신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들다. 만약 앞으로 떠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미리 방도 잡아 놓고, 자금도 넉넉히 해서 며칠 여행을 다녀올 것 같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한다. 하지만, 되도록 안 싸우는 것이 최선이다. 싸움에 기술이 필요하지만, 사람 감정이라는 것이 잘못하면 막말을 하게 돼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그 싸우는 동안 남편은 살이 쏙 빠졌고, 나는 살이 불었다. 신혼 초 깨는 못 볶을망정 이 무슨 낭비인가?

부부가 일심동체라고? 아니다. '이심이체'다. 억지로 둘이 하나가 되려면 한쪽의 희생을 요구한다. 과거야 여자들이 남편의 뜻을 따라 참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러기가 어렵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동화가 되어 가면 모를까, 처음부터 상대편을 바꾸려고 들면 싸우기 마련이다.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안 바뀐다. 나도 남편도. 단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싸움은 많이 줄었다. 일정부분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포기하는 부분도 있고, '이건 내가 양보, 저건 당신이 양보' 적당히 타협을 하며 살 뿐이다. 세월에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편안한 친구처럼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태그:#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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