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보니 강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4대 종단의 성직자들이 팀을 짜 강을 따라 순례한다. 그냥 말 그대로 강을 따라 걷는 것이다. 처음엔 대운하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강을 따라 걸어보니 나와 사람들에게 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서로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입을 모아 "강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물이 먼저고 사람은 나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은 심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인류의 4대 문명 발생지가 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없다. 성경 속에서 예수가 "사람 때문에 안식일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치 사람들은 사람이 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기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를 볼 때 강이 근본이고 그곳에서 인간의 문명이 나온다. 대운하는 인간 문명의 근본인 강을 거스르는 정책이다.
"물과 문명은 선택의 문제."
사람을 중심으로 물과 문명 둘 다 건강하면 좋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식인 문명을 선택한다. 그러나 개개인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커져서 부모를 까맣게 잊다보면 그때 위기가 시작된다. 인간이 지나치게 문명만을 추구하다보니 천지가 썩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강이 더러워지고, 마실 물이 탁해졌다. 대운하 정책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너를 낳은 뿌리냐, 네가 만든 가지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강물이냐, 편리한 생활이냐."
대운하정책은 우리들에게 더 잘 먹고, 더 편리한 집에서 살기를 고집하겠느냐. 아니면 이걸 포기하고 강물을 살리겠느냐고 묻고 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새만금 때부터 이러한 질문이 계속돼왔다.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듯 대운하도 새만금의 연장선이다. 예전엔 천지의 자연을 무생물이 아닌 인간과 똑같은 인격체로 봤다. 물 한 그릇을 먹어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운하, 우리에겐 절박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아프리카의 아이들에 비해 우린 너무 잘 먹고 있다. 이번에 잘못 선택하면 새만금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끝끝내 정신을 못 차리다보면 재앙을 각오해야 한다. 그만큼 대운하 정책은 우리에겐 절박한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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