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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에 새겨진 통 큰 낙서의 흔적

 

뜨거운 날씨로 아침 일찍 관광에 나서야 한다며 6시 반에 숙소를 나섰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주장하는 앙코르와트(1113년~1150년). 아마 캄보디아 관광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앙코르와트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전날 지나갔던 도로를 따라가다가 커다란 저수지와 같은 해자를 따라 돌아간다. 아직 사원은 보이지 않는데도 커다란 해자가 앙코르와트의 일부라는 사실만으로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버스는 해자를 돌아 앙코르와트의 입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사자 네 마리가 세 방향으로 지키고 있다. 같은 사자인줄 알았는데 뒷모습을 보니 밑 부분이 조금 다르다. 암수를 쌍으로 만든 치밀함이 느껴진다.

 

입구를 지키는 사자를 보다가 잠깐 웃음이 나온다. 세계적인 유적지 앙코르와트 입구에 알파벳(?)으로 글자를 새긴 통 큰 낙서를 보았다. 가끔 외국 관광지에 한글로 된 낙서가 비난을 받곤 하는데 여기에 비하면 그저 애교 정도로 보아 넘겨야 겠다. 낙서는 전 세계 공통적인 유희인지도 모르겠다.

 

해자를 건너 천계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환생 한다고?

 

해자를 건너는 다리(?)는 나가(뱀 모양)가 난간을 치고 있다. 긴 뱀의 형상을 이용해 안전시설을 만든 크메르인들의 예술성이 돋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난다. 좌우로 긴 담을 쌓아 바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다. 돌을 다듬어 창살을 만들고 벽마다 압살라(천상의 무희)를 조각한 아름다운 담이다. 문이 세 개 있는데 왕이 다녔다는 가운데 문으로 들어섰다.

 

팔이 여러 개 달린 조각상이 방긋 웃고 있다. 문을 나오니 저 멀리 앙코르와트 사원의 뾰족 솟아있는 탑이 보인다. 중앙 통로를 따라 탑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해자를 건너면 인간 세상을 벗어난 천계(天界)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 하늘나라를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커다란 야자나무가 머쓱하게 보인다.

 

계단을 올라 신전으로 들어서니 긴 회랑이 펼쳐진다. 회랑에는 부조를 새겨 놓았다. 힌두 설화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크메르 왕조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으로도 기록을 해 놓았다.

 

부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검은 손때가 잔뜩 묻었다. 재형이는 무척 만지고 싶어 한다. 안내인은 만지지 못하게 한다. 부도가 사암이라 만지면 훼손된다고 한다. 하지만 검은 손때는 자꾸 만지고 싶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아마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도 만져 보았을 것이다.

 

 

회랑을 따라 힌두교 신화를 들으면서 걸어간다. 힌두교로부터 불교가 나온 과정 등도 설명을 한다. 그래서일까? 앙코르와트는 원래 힌두교 신전이었는데, 태국(참족)과 전쟁에서 패배를 겪으면서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회랑을 따라 반 바퀴를 돌아 2층으로 올라갔다. 탑으로 올라가는 3층은 유네스코에서 유적물 보호를 위해 관람을 금지하라는 요청에 따라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그리고 복원 작업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쉽다. 더듬더듬 하늘로 올라가 사방을 내려다보는 장관을 보고 싶은데….

 

 

앙코르와트를 나오면서 재형이는 같은 또래 정도의 여자애가 기념품을 사달라고 하는 모습에 관심을 보인다. 앙코르 유적을 새긴 작은 네모 조각. 한 개를 내보이며 "원 달러"라고 한다. 재형이가 손을 저으니 세 개 2달러로 흥정을 해온다. 재형이는 매우 만족해 하면서 달라고 한다. 애들에게는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각자 삼 만원을 달러로 환전해 주었다.

 

크메르 왕국의 심장 앙코르 톰

 

앙코르 최대 유적을 감상하고 나니 마음이 허탈하다. 환생을 해서 그럴까? 조금 이동하여 내려놓은 곳은 크메르 왕국의 수도인 앙코르톰(12C~13C)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서울 성곽으로 둘러진 사대문 안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평지에 자리잡은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해자를 만들고 높은 담을 쌓았다. 난공불락의 요새다. 하지만 공격하는 자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성은 없는가 보다. 참족의 침입에 의해 함락되었다고 한다.

 

해자를 건너가면 사면에 얼굴상을 새긴 앙코르톰 남문이다. 아래로 차가 다닐 정도의 문이 있다. 성문 위로 커다란 얼굴상을 새겨 놓은 게 특이하기만 하다. 다시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앙코르 톰 내부로 들어간다. 주변으로 다시 시골길 같은 분위기다. 왕국의 심장답게 성안은 넓기만 하다. 버스는 성 심장부인 바이욘 사원에 내려놓는다.

 

바이욘 사원 입구는 부서져 있으며, 한창 복원을 진행 중이다. 벽면을 따라 조각된 부조에 대한 설명을 따라 걸어간다. 하도 많은 부도를 보았더니 이제는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다. 부도를 따라가다 중앙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니 탑들이 솟아있고 사면으로 커다란 미소가 흘러나오고 있다. 묘한 웃음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모습에서 남국의 정열적인 통쾌한 미소가 배어 나오고 있다.

 

사원을 내려와서 또 다른 사원의 부서진 잔해 속을 걸어간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는데도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나무 그늘 아래 늘어선 상가에서 재형이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코코넛을 먹었다. 한 모금 하더니 생각했던 맛과 달라 바로 포기한다. 단 맛을 상상했는데 그냥 싱거운 물이다. 시원한 맛에 먹는가 보다.

 

한때 위세가 당당하던 왕궁은 한창 복원 중이다. 광장에 정열해 있는 용감한 군사들을 내려 보았을 코끼리 테라스로 내려서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동쪽으로 난 승리의문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따쁘롬으로 향했다.

 

거대한 문어가 꿈틀거리는 따쁘롬

 

 

따쁘롬(1186년)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 아직 복원하지 않는 사원이라고 한다. 그런 상상 때문에 <툼레이더>라는 영화가 탄생되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앙코르톰을 들어설 때와 같은 문을 지나 숲길을 한참 걸어간다. 직선으로 난 길의 끝에는 나무에 쓰러진 사원이 보인다. 사원은 미로같이 구불거리며 따라 간다. 영화 속에서 작은 문으로 달아나는 소녀의 뒷모습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원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은 사원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고개를 들어야만 나무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거대한 나무는 마치 문어처럼 사원을 감고 있다. 그 안에서 숨이 막혀 부서져 내리고 있는 사원을 보면서 영원한 것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씨엡립 밤거리 풍경 속에는 홍등가도 있다는데

 

한낮의 기온은 계속 올라간다. 점심식사 후 쉬었다가 일몰관광에 나섰다. 씨엡립에서 제일 높다는 바껭산(67m). 산정에는 쁘놈바껭(9C~10C) 사원이 있다. 아주 가파른 사원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 바로 캄캄해진다 더니 땅거미가 순식간에 덮친다. 아름다운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사방을 둘러 평평한 지구를 보았다.

 

 

저녁은 캄보디아 전통 공연을 하는 식당에서 하고 야경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일명 툭툭이를 타고 시내 번화가에 내렸다. 따뜻한 나라답게 야외에서 술과 차를 즐기게끔 벌려 놓고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안내인에게 혹시 홍등가는 없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있다고 한다. 나도 물어보면서 멋쩍었는데, 이 작은 도시에도 있을 건 다 있는가 보다. 가벼운 맥주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과일의 왕이라는 두리안의 야릇한 맛

 

남국에 왔는데 과일의 왕이라는 두리안이 생각났다.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오늘 아니면 먹어보기 힘들 것 같다. 숙소를 다시 나왔다. 호텔 입구에서 여행 중 동행하던 현지인을 만났다. 혹시 가격이나 알고 가자고 물었다.

 

"두리안, 하우 머치?"

"원 오아 투 달러."

 

가격도 알았겠다, 과일가게에 들어가서 두리안 가격을 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한 개 원 달러이며 조금 좋은 건 투 달러라고 한다. 익히 악명을 들어서 인지라 그나마 잘 익은 것은 냄새가 덜 할 거라는 생각으로 "딜리셔스"라고 하니, 한참 생각하다가 계산기에 6자를 친다. "익스펜시브"하자 계산기에 5자를 치며 이하로는 안 된다는 표시를 한다.

 

"오 달러. 오케이."

 

두리안 더미를 헤치더니 제일 밑에 곧 벌어질 것 같은 놈을 골라 큰 칼로 쪼갠다. 안에서 다시 여러 개의 알맹이를 꺼내고 접시에 내어 놓는다. 냄새부터 심상치 않다. 하나를 입에 넣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아내는 삭은 바나나 맛 같다며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결국 그대로 두고 자리를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과일의 왕(?)이다.

덧붙이는 글 | 5월 5일부터 9일까지 캄보디아 씨엠립에 다녀왔습니다. 


#캄보디아#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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