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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이 유인봉으로 들어갔다.
▲ 분봉 성공. 벌들이 유인봉으로 들어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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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7일) 영월에 살면서 시 작업을 하고 있는 유승도 시인 집에 갔었습니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평창 도암면에 살고 있는 소설가 김도연을 꼬여냈고, 홍천에 사는 이종득 소설가도 오게했습니다. 춘천에 있는 공선옥 소설가는 영천으로 가야한다기에 다음번에 만나기로 했지요.

정선과 평창, 홍천에 살고 있는 소설가 셋이서 영월 예밀리에 살고 있는 유승도 시인 집에 놀러간 것은 농사꾼 시인이 농사철에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시인은 시를 건져 올리듯 분봉을 합니다

지난해 연말 시인의 집을 찾았으니 반년 만에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바람 좋은 오후, 유승도 시인의 집에 도착하니 그는 마침 벌통의 벌을 분봉하고 있었습니다. 분봉하는 모습은 말로만 들었지 가까이에서 지켜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시인과 시인의 아내는 유인봉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여왕벌이 유인봉으로 들어가기만 기다렸습니다.

"벌이 쏘지 않아요?"

시인과 시인의 아내는 얼굴도 가리지 않고 분봉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벌 키우는 선수가 되었던 것일까요.

"향수를 뿌리거나 화장을 하면 달려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쏘지 않아요."

내심 벌에 쏘이면 어쩌나 싶어 주춤거리는 촌놈들에게 시인은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벌통 가까이 다가가도 과연 벌들은 제 스스로 날기만 할 뿐 낯선 방문자들에게 날아 들지는 않았습니다.

벌통을 나온 벌들이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날아 올랐습니다. 유인봉은 근처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척후병 벌들이 여기저기 탐색을 하더니 한두 마리씩 유인봉으로 날아들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분봉이 성공할 듯 싶은데…."

시인이 유인봉으로 날아드는 벌들을 보며 말합니다.

"분봉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나요?"
"실패한 적이 더 많지요. 지난 번엔 몇 시간이 지켜보았는데도 결국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어요."

시인은 벌들의 심사가 제각각이라 하네요. 애써 키운 벌들이 다른 사람이 놓아 둔 벌통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벌을 잃어 버리게 되는 거랍니다. 올해 몇 번 시도 했는데 단 한 번 성공했고, 오늘이 두 번째 성공 가능성을 보이고 있답니다.

벌들이 분봉을 하기 위해 벌통을 나선다.
▲ 벌통. 벌들이 분봉을 하기 위해 벌통을 나선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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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유인봉을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다.
▲ 성공이야. 시인이 유인봉을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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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이 유인봉으로 날아들기 시작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하늘을 덮고 있던 벌들이 거짓말처럼 한 곳으로 모였습니다. 분봉에 성공을 한 것입니다. 벌들도 손님들이 온 것을 알고 주인의 기분을 맞춰주려나 봅니다.

시인의 집에 가면 누구나 시가 됩니다

유승도 시인이 유인봉을 조심스럽게 내리더니 비어있는 벌통에 올려 놓습니다. 재산 하나가 늘어나는 순간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유승도 시인은 그동안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목에 줄을 걸 때까지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그러지 마라 곧 너를 잡아 삶아 먹을 텐데 그러면
네 고기 맛이 어찌 좋겠냐
가만히 있거라 꼭 그렇게 살갑게 다가오려면 아예 내게 덤벼들어라
그래서 줄을 놓게 하여 저 산속 깊이 들어가 살아라
그래도 개는 둥굴게 만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그런다고 너를 살려두진 않을 테니 이제 그만 해라 그리고 잘 가라
그래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 유승도 시 '살랑살랑' 전문

시인의 시어는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라 '날 것' 그대로 입니다. 충남 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산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이유가 그의 시어에 다 들어 있습니다.

분봉을 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한 편의 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분봉을 끝내는 그의 표정도 청명한 하늘빛을 닮아있습니다.

"근데 머리는 왜?"

그제야 그의 머리가 깨끗하게 면도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원하잖아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있는 내 모습과 시인의 모습, 전혀 딴 판입니다. 시인의 모습은 농부라기 보다는 스님처럼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를 '승도스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집은 '승도사'가 될 터이지요.

시인의 아들 현준이는 윗마을에 사는 여자친구와 산자락을 뛰어 다니며 놀기에 바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이를 보고 있자니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그림으로 읽는 느낌이 듭니다.

시인과 시인의 아내가 분봉을 하고 있다.
▲ 부부. 시인과 시인의 아내가 분봉을 하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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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봉을 올려놓고 청테이프로 감아주면 분봉 끝.
▲ 마무리. 유인봉을 올려놓고 청테이프로 감아주면 분봉 끝.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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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봉을 끝내고 준비해간 삽겹살을 구웠습니다. 승도스님과 김도연 소설가가 고기를 굽는데, 앉아서 받아 먹기 미안할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아마추어들이라 그런 것이지요. 어둠이 내릴 즈음엔 근처에 있는 김삿갓계곡으로 갔습니다.

소설로 삶을 마무리 하겠다는 시인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언젠가 추운 겨울에 가보았던 계곡입니다. 그때는 쓸쓸하기만 했는데, 5월의 계곡은 푸르름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닭백숙을 시켜놓고 저물어 가는 계곡을 즐겼습니다.

"이젠 소설을 써 볼 참입니다."

유승도 시인이 이젠 소설을 쓰겠다고 합니다. 소설가 셋이 소설을 쓰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시집 두 권과 산문집 두 권 냈으니 소설을 두 권 내면 인생이 마무리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소설가 셋이 흐흐흐, 웃으며 그러시라고 했지요. 인생이라는 게 어찌 시만 건져 올릴 수 있을까요. 살다보면 소설 같은 삶이 더 많으니 그걸 쓰지 못하면 병 생기는 게 당연하겠지요.

시인이 소설 쓰면 네 사람의 작품을 모아 소설집 한 권 내자며 모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의는 언제라도 즐거운 법이지요. 밤이 깊어 도착한 시인의 집은 시인의 아내가 불을 밝힌 채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요하면서도 편안한 밤입니다.

시인이 만든 벌통. 시 한편을 보는 듯 하다.
▲ 시인의 벌통. 시인이 만든 벌통. 시 한편을 보는 듯 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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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분봉, #유승도시인, #농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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