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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다정히 모내기하는 모습
 부부가 다정히 모내기하는 모습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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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만물이 점점 생장하여 누리에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입니다. '부부의 날'과 겹쳐 새롭게 느껴지네요. 부부 사이에도 금슬이 생장하여 웃음과 건강이 넘치는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봅니다.      

농가월령가는 소만을 '4월이라 맹하(孟夏)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보리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맹하'는 초여름을 말하지요.

여름의 문턱이자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하는 5월이 되면, 냉해를 우려해 못자리판 위까지 물을 대주고, 못자리 병충해 방제와 밑거름 고루 갖춰주기 등으로 농부들의 일손이 더욱 바빠집니다.

여덟 번째 절기인 소만이 지나면 모내기가 시작되는데,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날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보리 수확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때를 '보릿고개'라 했지요.  

이때쯤이면 신록이 우거진 산과 들판도 연두색에서 검푸르게 변해갑니다. 들녘 보리밭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잔잔한 물결처럼 넘실대고, 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 대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 뒷산에서도 며칠 전부터 소쩍새가 울기 시작하더군요. 5월 17일 밤에는 어찌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지금은 5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꼽으며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그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5월의 키워드는 '보릿고개'였습니다. 내남없이 양식이 떨어져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였지요.  

모두가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패기 시작한 보리향이 들녘을 풍요롭게 해주듯 자연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3년 전 아내와 해남에 다녀올 때 바람을 타고 오는 들녘의 보리냄새를 녹차 향으로 착각했던 보성의 녹차 밭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감자꽃> 이야기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 정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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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이 지나면 모판의 모를 물이 가득한 논으로 옮겨 심는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4월에 피었던 장다리꽃이 지고 별모양의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아이들이 즐겨 불렀다는 아동문학가 권태응의 <감자꽃>이 떠올라 소개합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감자/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감자꽃>은 일본이 아무리 조선 사람의 성을 없애고 혼을 말살하려고 해도, '일본은 일본, 조선은 조선'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항일시로 알려져 있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권태응(1918년~1951년)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토속적인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재학 중에는 치안유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1년간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감자 꽃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인데요. 이 노래에서처럼 하얀 꽃이 핀 데는 하얀 감자가 달리고, 자주 꽃이 핀 데서는 자주감자가 달린다고 합니다. 아래는 당시 아이들이 <감자꽃>에 후렴을 지어 즐겨 부른 노래입니다.

조선꽃 핀 건 조선감자/ 파 보나마나 조선감자/
왜놈꽃 핀 건 왜놈감자/ 파 보나마나 왜놈감자

아이들이 지은 노래지만 일제 탄압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아이들이 지어 부른 노래와 최근 청계광장 촛불 문화제에서 들리는 10대들의 구호와 노래에서 현실을 개탄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과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분노를 노래로 표출한 당시 어린이들의 민족의식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나리나리 미나리 다리다리 장다리/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래요'를 어렸을 때 부르고 다녔다는 얘기를 어머니(1912년)에게 들은 기억이 있거든요. 장희빈의 모함으로 쫓겨난 인현왕후와 같은 민씨 집안 외동딸로 태어난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권태응의 <감자꽃> 후렴과 인현왕후를 추모하는 노래가 시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에 불렀고 백성들의 저항정신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어머니가 생각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흔적이 지워지지도 않았을 터인데, 일본은 또다시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면서 교과서에도 명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왜곡된 역사와 친일청산 실패 탓이 가장 크다는 생각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고요.

국내에서는 '실용'을 외치면서 일본을 방문해서는 부부동반으로 천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또다시 제기되는 독도 문제가 과거를 잊고 미래지향적인 '소통'이냐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태그:#소만, #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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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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