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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홍준표 의원이 청주지검 평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얘기다.

 

홍 의원 아내의 눈에, 위로는 검찰 간부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아래로는 강력범들과 '씨름'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안쓰럽게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홍 의원에게 "장래가 안 보이는 검사를 계속 하느니 차라리 변호사 개업해서 돈이라도 모으자"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는 집에 돌아온 남편을 싱글벙글 웃으며 반갑게 맞았다. 홍 의원의 아내는 그날 대전의 유명 역술인 박모(작고)씨를 찾아가 남편의 사주를 봤다고 한다.

 

홍 의원이 "허구헌 날 '살기 힘들다'고 하더니 뭐 그리 좋은 얘기 좀 들었냐"고 묻자 아내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그 분이 그러는데 당신이 1인자는 몰라도 2인자까지는 할 수 있대요."

 

홍 의원은 "점쟁이 말을 어떻게 믿나"라고 웃어넘겼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그는 "지금은 내가 비록 선배들에게 미움 받더라도 대검차장까지는 할 수 있나보다"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특수부 검사의 외길을 내달렸다.

 

<모래시계>로 만들어진 특수부 검사 시절 일화... 정계 진출로 이어져

 

1988년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할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 기환씨가 연루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했다가 권력층의 미움을 받아 91년 광주지검으로 좌천됐다. 그는 광주에 내려가서는 지역 건설현장의 이권을 독차지해온 PJ파 소탕에 나섰고, 92년 서울중앙지검으로 복귀해서는 박철언·이건개 등 구정권 실세들을 구속하는 개가를 올렸다.

 

물불 가리지 않는 강직한 검사의 얘기는 TV드라마 '모래시계'로 극화됐고, 그는 96년 국회에 입성했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국회의원만 4번이나 당선됐지만, 그는 비주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하소연을 직접 들어보자.

 

"2002년 대선 때는 정책위의장의 말이 너무 서툴다며 'TV토론 땜방'하라고 정책본부장을 시키더라. 이듬해에는 최병렬 대표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니까 나를 전략기획본부장에 임명했다. 박근혜 의원이 당대표가 되니까 이번에는 당헌·당규 뜯어고치라고 혁신위원장을 시키더라.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후에는 폼 나는 자리 하나 받는 줄 알았는데, 당에서는 클린정치위원장이라는 걸 만들었다. BBK 사건 뒤치다거리나 하라는 거다."

 

홍 의원은 "위급한 상황이 터지면 사람 써먹고, 상황 종료되면 당은 나 몰라라 한다"며 "96년 나랑 같이 국회에 들어온 (민주당) 의원들은 당의장도 하고 장관도 하는데 홍준표는 한나라당의 영원한 '특무상사'로 통한다"고 푸념했다.

 

그와 함께 '한나라당 비주류 3인방'으로 불리던 김문수 의원이 경기도지사가 되고, 이재오 의원이 '실세' 최고위원으로 승승장구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푸념이 전혀 엉터리는 것은 아니다.

 

당내에서 매번 겉도는 모습을 어떻게든 떨쳐보려고 2006년에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에는 대선후보 경선에 연달아 출마했다. 특히 서울시장 경선 초반에는 맹형규 의원과 함께 당내에서 2강 구도를 형성했는데, 뒤늦게 민주당 강금실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른 '오세훈 바람'이 불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지금도 그는 "오 시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급부상한 데에는 <조선일보>의 의도성 짙은 여론조사가 한 몫 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그토록 '안티조선'을 했는지 그 심정을 알겠더라"고 말한다.

 

여당 단독국회 이끌 수 있는 '파워' 원내대표... 대통령과의 친분도 강점

 

이처럼 음지로만 돌던 홍 의원이 22일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무투표 당선됐다.

 

그것도 국회 과반수를 확보한 여당의 원내대책을 좌지우지하는 '파워' 원내대표다. 과반수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여당 단독의 국회 본회의가 가능하다.

 

96년 총선 이래 이명박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것도 그의 강점이다. 홍 의원이 작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지역별 순회 연설회 때마다 이 후보를 공격하고 자리에 돌아오면, 이 후보는 "네가 내 옆구리를 칼로 너무 세게 쑤셔놔서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을 떨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에도 네 명의 한나라당 경선주자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를 불러 정국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대통령의 후보·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이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것도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어쨌든 홍 의원은 그토록 꼬이기만 하던 정치 이력을 훌훌 털고 여당 대표 다음가는 한나라당의 '2인자'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가 당면 과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최우선 관심사가 되겠지만, 20여년 전 그의 아내가 역술인으로부터 들었다는 '2인자' 예언이 어느 선까지 들어맞을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태그:#홍준표, #원내대표,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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