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기꽃
▲ 복분자 술을 빚는 딸기꽃
ⓒ 김찬순

관련사진보기


속어에 '술꾼에게는 술병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오늘 아침 새벽 산책길(청사포 숲길)에서 복분자 술을 빚는 산딸기밭을 만났다. 깊은 산중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산딸기가 아닌가. 어둠 속에 환한 꽃등처럼 보였다. 나는 술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니 술을 빚는 산딸기 밭을 발견하고,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까. 술을 빚을 수 있는, 산딸기 밭을 만났다고 이야기하기가 아까운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는 깊은 산마을에 살았다. 그곳 아이들은 뱀딸기와 산딸기를 따서 소꿉놀이를 했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 산딸기를 따와 제주를 빚으셨다.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은 그 제주로 제사를 드리고 나면 아버지께서는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한 잔 주시며 덕담을 들려주셨다. 그 아버지에게 술에 대한 예법도 배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술에 관한 나도 어느 정도 경지가 있다고 감히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적 소꼽 놀이 생각나다
▲ 뱀 딸기 어릴 적 소꼽 놀이 생각나다
ⓒ 김찬순

관련사진보기


중국에서 술이 최초로 만들어진 때는 우왕 시절이라고 한다. 우왕의 한 사람이 술을 만들어 우왕에게 받쳤더니 왕이 이를 마셔보고 취기가 돌자 이것을 일반 백성들이 먹으면 큰일 나겠다고 해서, 술을 만든 그 사람을 멀리 귀양 보냈다고 한다.

사람하고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 사회에서도 술을 빚어 먹었다는 연구 보고를 한 학자가 있다. 그러니까 원숭이들이 머루나 다래 같은 과일을 씹어서, 깨끗한 바위 틈에 내뱉고, 그 위에 나뭇잎을 덮어서, 술당번들까지 지켜서 술이 익으면 이를 먹고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학자는 3년이나 원숭이와 생활하면서 이러한 연구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학자 이름은 지금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머루나 다래의 과일을 씹은 침 속의 당분을 이용해서 술을 담았다는 원숭이들의 생각이 너무 과학적이라서, 그 글의 인상이 오래 뇌리에 남은 것 같다.

고향 언덕에서 함께 뱀딸기 따서 소꼽놀이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
▲ 그리운 고향 언덕에서 함께 뱀딸기 따서 소꼽놀이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
ⓒ 김찬순

관련사진보기


술이라는 것, 잘만 마시면 '백약지상'이 된다. 그러나 잘못 마시면 패가 망신한다는 술. 옛부터 술은 어른 밑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께서 음복으로 우리 형제에게 술을 배워준 것이 평생 가는지 나는 지금도 술에 취하면 주정은 하지 않는다.

술은 누군가 '생명의 물'이라고 일렀고, 술은 이렇게 신과 사람의 관계를 매개하는 제물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우리 집은 형제가 셋이다. 형님 모두 술을 좋아한다. 형님들도 술을 음복을 통해 배워서, 술에 과하게 취해도, 공자의 말씀처럼 난(亂)의 정도에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 형제 모두 술이 어느 정도 취하면 그대로 잠이 드는 쪽이다. 그런데 술을 먹고 그대로 잠이 들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술에 취해 이 소리 저 소리 떠드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술을 먹으면 뇌세포가 마취 되어서, 세상이 장기쪽만 하게 보인다고 한다. 간이 커지고 담보가 커지는것이 술의 작용이 아니라, 주신 속에 숨은 악마 탓이라는 신화의 이야기다. 술은 이래도 저래도 적당히 먹어야 옳은 것이다.

만나니 아버지 그립다
▲ 산딸기밭 만나니 아버지 그립다
ⓒ 김찬순

관련사진보기


오늘 아침은 술을 빚을 수 있는 산딸기 꽃밭을 만나서, 이른 새벽 해장술을 한잔 했다. 실은 지난밤에 모처럼 반가운 처수가 복분자 술을 가지고 우리 집에 오셨다. 그러나 처수는 원래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고, 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복분자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처수 앞에서 복분자 술 한병을 거의 혼자 마셨다.

술은 혼자 마셔도 좋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있어야 좋긴 하다. '법화경'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새벽 해장술에 아직도 기분이 얼얼하게 좋다.

산딸기로 빚는 복분자 술은 피로회복 등 사람의 힘을 돋우는 기운이 있다 해서 너무 혈기가 왕성한 사람에게는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저녁 귀갓길에는 고향 친구를 불러, 술찌꺼기 술을 부엌에서 훔쳐와서 뒷동산에서 함께 마시며 떠들던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오랜만에 술 한잔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소시적 뱀딸기를 치마폭에 가득 따서 깨어진 사기 그릇에 담아 놓고 "여보 ! 진지 드세요"하고 정성껏 흙밥에 뱀딸기를 귀한 반찬이라고 담아 내던 그 두 갈래 머리 땋은 여아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세월은 어느새 얼굴에 깊은 주름을 잡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 봄 동산 언덕 위에 놀고 있는 모양이다. 그 사이 산딸기 꽃이 열매로 맺어, 술을 빚고, 그 술의 은은한 향기가 멀리 있는 술 친구를 부르는 모양인가…

지나니 벌써 술에 취한 듯.
▲ 야생 딸기밭 지나니 벌써 술에 취한 듯.
ⓒ 김찬순

관련사진보기


서로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산꽃이 지네.
한잔 한잔 또 한잔
나는 취해 자고 싶네 자네 잠시 떠나게
내일 아침 생각 있거든 거문고 들고 오게
'이태백'-산중유인대작'


태그:#딸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