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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정부 여당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일부 이사들에 대한 사퇴 및 회유 압력이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는 김금수 이사장이 그만두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두 차례나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사장 퇴진에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경위에 어찌 됐든 김금수 이사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친구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KBS 이사회 공략을 위한 길을 열어 주었다.

 

거기에 감사원까지 나섰다. 전방위적 압박이다. 그것은 KBS를 어떻게든 자신들의 손안에 틀어쥐겠다는 권력 핵심부의 노골적인 의사 표명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김종철 <한겨레> 논설위원이 기명칼럼 '아침햇발'을 통해 '언론인 정연주'에게 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김종철 위원은 '언론인 정연주가 할 일'(23일 '아침햇발')이라는 글을 통해 "정권 전체가 정 사장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을 보면 오히려 국민에게는 그가 당분간 자리를 지키는 게 더 나을 듯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연주 사장에게 주문했다. "KBS를 영국의 BBC처럼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중립지대에 남을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완성해 달라"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들러리가 된 방통위부터 바꿔야 한다고.

 

물러설 데 없는 정연주 사장, 정면으로 맞서라

 

맞는 말이다. 정연주 사장은 이제 물러설 데가 없다. 아니, 물러설 수 없게 됐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이제 그저 버틸 수만도 없게 됐다. KBS 이사회부터 이제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손안에 들어간 형국이다.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나아가야 한다. 그를 퇴진시키고 KBS를 장악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서 그는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

 

정연주 사장은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이자 국가기간방송의 수장으로서 이제는 '발언'에 나서야 한다. 국민과 시청자 앞에 모든 것을 걸고 말해야 할 때가 됐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이 바로 정연주 KBS 사장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인지, 어찌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정연주 사장은 이제 국민과 시청자 앞에 그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과연 그런 발언을 서슴치않는 사람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이자 정치적 참모 역할을 한 사람이 과연 방송통신위원장을 해도 되는 것인지 국가기간방송의 수장으로서 말할 때가 됐다.

 

정연주 사장은 KBS의 경영 실태에 대해서도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그 진상을 밝히고 이해를 구할 것을 이해를 구하고, 혁신이 필요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KBS 노조가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경영상의 문제를 들어서다. 감사원이 감사 청구를 받아들인 것 또한 적자 경영과 방만한 경영 실태를 명분으로 한 것이다.

 

정연주 사장은 KBS에서 경영의 합리화와 조직의 쇄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정직하게 발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KBS 공영성의 기반을 확실하게 하면서도 KBS의 경영과 조직을 쇄신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위해서 국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또 KBS 구성원과 노조 등이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것들은 또 무엇인지를 널리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정연주 KBS 사장 혼자 걸머질 일은 결코 아니다.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위상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KBS 사람들 또한 더 이상 '정연주'라는 표적 뒤에 숨거나 비켜서서 남 일 보듯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KBS 사람들은 집권세력과 일부 신문들이 문제 삼고 있는 KBS 보도나 프로그램이 과연 정연주 사장 때문인지 하는 점 등에 대해서 정직하고 분명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왔다.

 

KBS의 적자나 방만한 경영의 문제가 있다면 이 역시 정연주 사장과 경영진만의 문제 때문이며, 그들만이 책임져야 할 일인지 등에 대해서도 정직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정 사장과 KBS 사람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20년 향배가 결정

 

KBS 이사회가 그나마 독립적으로 KBS 사장을 선출한 것은 1988년 서영훈 사장 때가 처음이었다. 87년 민주화운동이 KBS에 가져다 준 민주화의 과실이었다. 하지만 KBS는 이를 지켜낼 수 없었다. 90년 노태우 정권은 이른바 '법정수당지급사건'이란 것을 쟁점화해 서영훈 사장을 쫒아낸다. 그런 다음에 정권은 서기원 <서울신문> 사장을 그 자리에 앉혀 KBS를 장악하고자 했다. 37일간의 제작거부투쟁으로 이어지는 KBS '4월투쟁'은 당시 그렇게 시작됐다.

 

서영훈 전 KBS 사장은 지난 98년 KBS노조 10주년 기념호에서 당시 KBS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사장으로 취임 한 뒤 우리에게 닥쳐온 과제들은 대단히 무겁고 어렵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첫째 인사, 둘째 기구개편, 셋째 방송프로그램의 개선과 개편 등인데 오랫동안 정부의 직간접적인 영향 하에 밀착되고 안주하였던 KBS인지라 새 시대의 민주화 요구에 맞추어 바로 잡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로부터 근 18년이 지난 지금, KBS는 또 한 번 KBS의 독립성과 그 위상과 관련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정연주 사장과 KBS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KBS의 앞으로 20년의 향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연주#KBS#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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