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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세계 아동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분마다 10명씩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는 60억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있음에도 그렇다.

 

또한 착취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어린이는 무려 2억 4600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시아 및 동유럽 극빈층 소년들은 '우편배달 신부'라는 이름으로 성 매매 대상이 된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성산업에 내몰린 소녀는 동남아시아에서만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어린이는 600만여 명, 10년간 전사한 소년병은 20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만 본다면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통계는 하나의 숫자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사람들은 그 실상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금세 잊는다. 야속하게도 그렇다. 통계에는 그러한 약점이 있다.

 

온 가족 4명이 깬 돌을 팔아 번 돈이 1500원

 

그러나 통계의 어느 부분을 들려준다면 어떤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실태를 보여준다면 어떤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가 그런 책 중 하나다. '그들'을 직접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소녀 루빠.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물로 배를 채운 뒤 돌을 깬다. 오른손엔 망치를, 왼손에 고리를 들고 하루 종일 돌을 깨고 있다. 돌을 깨는 것이 아이의 돈벌이다. 가족 모두가 그렇다. 온 가족 4명이 깬 돌을 팔면 버는 돈은 우리 돈으로 1500원도 채 안 된다. '가난하다'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루빠가 이미 체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빠는 "나는 돌 깨는 것밖에 몰라요. 글씨도 읽을 줄 몰라요.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운명'이란다. 이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

 

취재진의 도움으로 루빠는 학교에 가보게 된다. 이미 방학을 맞이한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소녀는 교실에 앉아 말없이 칠판을 바라본다. 한참 후 루빠는 말한다. "돌 깨고 싶지 않아요. 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그 말을 하면서 루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네팔의 수도에서 만난 순버하둘은 어떤가. 아이는 버스의 소년 차장이다. 고향을 떠나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목청을 높인다. 딱한 모습이지만 이것도 성공한 편에 속한다. 취직하기 전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구해 먹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웠다. 돌아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곳 또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순버하둘은 웃는다. 하루 14시간씩 열심히 일하면서도 웃는다. 슬프지만, 아주 맑은 웃음이다. 그 아이가 가족과 함께 웃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살 시도 후 남은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뿐

 

인도에서 만난 문니스와리. 이제 열두 살인 아이는 자살하려고 했다. 열두 살에 무엇을 안다고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왜 그랬냐는 물음에 "일이 너무 힘들어서, 홧김에…"라고 답한다.

 

문니스와리는 성냥개비에 쓰일 나뭇가지를 열에 맞춰 목재틀에 끼우는 작업을 했다. 창고 같은 곳에서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서 일한다. 조명도 없다. 햇빛에 의지해서 일한다. 문니스와리는 그렇게 3년을 일하다가 성냥갑을 붙이는데 쓰는, 독성 물질이 들어간 풀을 먹은 것이다. 달아나려고 그랬던 것이다.

 

어찌하여 목숨을 살렸건만 기다리는 건 암담한 것 뿐이다. 입원비와 치료비 등으로 1만 2000루피(약 27만 6천원)의 빚이 생겼기 때문이다. 문니스와리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이 20루피(약 460원)니 그 부담이 오죽할까. 기뻐해야 하는데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 외에도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가련하고 안쓰럽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이들이 눈물을 거두고 웃게 하는 것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작은 '나눔'이면 족하리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아픈 이야기를 건네는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천사를 웃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인가. 첫 만남은 슬펐지만 천사의 눈물을 닦는 방법까지 알려주니 이별이 슬프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슴이 벅차다. 이 땅에서 천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까.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박종인 외 지음, 시공사(2008)


태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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