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미친 사람들 이야기
한국 바위 열전 - 집념의 마력, 바위에 미친 행복한 도전자들 | 손재식 지음 | 마운틴북스 | 448쪽 | 2만5000원광고에 즐겨 등장하는 암벽 등반 장면. 피톤과 로프에 목숨을 매달고 베리에이션 루트(더 험준한 바윗길)을 찾아 오버행(바위 경사가 마치 천장처럼 90도 이상으로 드리워진 곳)을 넘어 위태롭게 하늘을 향해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모습이 멋지게 보이고 감탄스럽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나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비록 직접 등산 장비를 챙겨 바위를 타는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더라도 그 광고가, 그 암벽이, 그리고 마침내 그 인간이란 존재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
클라이머이자 산악 사진가인 저자가 한국 암벽 등반의 '메카'인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 바윗길을 처음 연 도전자들과 함께 직접 그 바윗길을 다시 오르면서 바윗길 개척에 얽힌 세세한 이야기를 모으고 그들의 열정과 땀방울을 렌즈에 담았다. 또한 세계 6대륙 정상을 등정한 여성 산악인 김영미씨가 그린 38곳의 바윗길 개념도도 실려 있다. 바윗길 위 어딘가에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조차도 혹시 모를 착각을 방지하기 위해 다시 확인해 그렸다고 한다. 저자가 다채로운 사진과 함께 담담하고 투명한 문장으로 전해주는 각 바윗길 개척사엔 숱한 불의의 사고에도 끝내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의지가 새겨져 있고, 그래서 보통사람들조차 끝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진실일까
아디오스 |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 김현균 옮김 | 창비 | 160쪽 | 9500원중편이 아니라 단편으로도 담아낼 수 있다고 여겨질 만큼 이야기는 단순하다. 결핵에 걸려 산중의 요양도시를 찾은 한 남자.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곳을 찾아와 그를 만나고 또 떠나는 두 여자. 한 여자에겐 한 아이가 딸려 있고, 다른 한 여자는 소녀에 가깝다. 그들은 어떤 관계이고,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가게주인인 '나'와 주변 인물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상상하고,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들려준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며, 당연히 반전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 반전조차 하나의 사실만을 더해줄 뿐 진실의 실체는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그렇기에 줄거리보다 반전이 중요하고, 반전보다 독자를 소설 속 '화자'의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소설의 서술적 방식이 중요하다. 이미 반전에 익숙한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겐 다소 진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 속 '나'처럼 마지막 순간 "살갗 속에서 분노와 굴욕이 번지고 구겨진 알량한 자존심이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게 하지는 않더라도 소설의 틈새를 메우도록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술기법은 매혹적이다.
우루과이에서 태어나 독제체제하에서 투옥되고 결국 스페인 망명길에 올라 마드리드에서 사망한 작가는 1980년 스페인언어권 최고 권위의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다.
빌 코스비의 익살에 웃고, 마이클 조든에 열광하면서도...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 벨 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44쪽 | 1만3000원"그들(백인 미국인들)은 빌 코스비의 익살에 웃고, 콜린 파월에게 경의를 표하고, 윌 스미스를 흉내 내고, 마이클 조든에 열광하면서도 여전히 흑인들은 가난뱅이라고 생각한다." "계급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인종 차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는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 그러나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져가고 계급 갈등은 더 깊어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아무도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문제에 비해 "이 문제는 결코 섹시하거나 귀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미국은 과연 '계급 없는 사회'인가. 인종 문제와 계급 문제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미국은 점점 계급 차별 국가가 되고 있다"면서 빈부 격차 해소와 계급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미국 사회는 머지않아 계급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빈익빈 부익부' '가난의 대물림' 등 저자가 에세이 형식을 빌려 들려주는 미국의 모습은, 타워팰리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판자촌 구룡마을이 공존하는 우리의 닮은꼴이고 미래형이다.
'골리앗의 세상'에서 '다윗의 세상'으로
다윗의 군대, 세상을 정복하다 | 글렌 레이놀즈 지음 | 곽미경 옮김 | 베이스캠프미디어 | 336쪽 | 1만4000원"블로그 혁명의 최종 결과물은 블로거 짐 트리처가 말한 '위디어(we-dia)'의 탄생이다. 지금까지의 뉴스와 보도는 '그들'이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다. 이것이 기존 언론의 심기를 건드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전통 언론은 언제나 독점의 특혜를 누려왔다. 언론업계의 어느 신문 하나만 읽어봐도 업계 전체에 팽배한 이런 '길드의식(guild mentality)'의 일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 탓에 자승자박의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6장 '미디어에서 위디어로'에서)
자기 손으로 맥주를 양조하고, 집 지하 작업실에서 음악CD를 제작하고, 또 하루 방문자가 "25만 명이 넘는 경우도 허다"한 블로그 인스타펀딧(instapundit.com)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 저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기업, 대정부 등 골리앗의 세상에 맞서는 다윗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널리즘과 오락, 국토안보와 테러방지, 그리고 제조업과 과학연구에 이르는 갖가지 분야에서 다윗의 무릿매는 돌멩이가 아니라 인터넷 등 신기술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새 기술을 이용해 어떻게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라는 악의 양대 화신을 무찌르는지 보여주는 현대의 영웅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덧붙여 저자는 '좋은 블로그를 만드는 비결'을 들려주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신속한 피드백'을 꼽고 있다.
예수의 독설은 현재진형형이다
예수의 독설 | 김진호 지음 | 삼인 | 384쪽 | 1만5000원도심의 밤거리를 빨갛게 수놓고 있는 교회 십자가, 대물림을 해야만 신의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대형교회들, 그리고 자신이 행정을 맡은 도시를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신앙 고백한 장로 대통령의 나라, 지금 대한민국에 예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복음'을 들려줄까. 그것은 축복일까 독설일까.
안병무 선생이 설립한 한백교회 담임 목사를 지냈고, 현재는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있는 민중신학자가 예수를 통해 오늘을 읽고 오늘을 통해 다시 예수 읽기를 시도한, 성찰의 기록이다. 특히 오늘과 당시 유대사회를 관통하는 권력, 고통의 장치에 주목한다. 저자가 추진하고 있는 '예수연구 3부작'의 2-1편에 해당하는 책이다.
"비판을 잃은 사회, 그것은 역사 속에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비판을 해체하는 그릇된 담론은 엄청난 파국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러한 담론의 유포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예수의 독설, 그 이유는?'에서). 예술의 독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연의 신비한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여정
자연 관찰 일기 | 클레어 워커 레슬리 / 찰스 E. 로스 지음 | 박현주 옮김 | 검둥소 | 276쪽 | 2만원알아야 사랑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책은 자연 관찰 일기를 쓰고 그리는 법을 안내하는 길잡이 책이다. 하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하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관계 맺고, 이해하고, 그 신비한 매력 속으로 빠져 드는 여정"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훌륭한 생태 환경 교육서이다. 특히, 화가이기도 한 저자들의 눈과 손으로 재탄생한 동식물 그림들이 깊은 사색과 어울려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원서와 비교해보진 못했지만 한국어판 편집도 훌륭하다.
꼭 자연 관찰 일기 쓸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일단 자연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의 다음 추천사를 읽어보기 바란다. "참 부럽다. 이런 책을 읽은 다음 자연으로 뛰어나갈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부럽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구한 날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휘돌아다니던 시절에 이 책이 내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훨씬 더 훌륭한 자연학자가 되어 있을 텐데."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사나요?
바보같은 어른이 되지 않는 법 | 안-마리 토마조 / 오딜 앙블라르 지음 | 심지원 옮김 | 웅진주니어 | 312쪽 | 1만3000원남자 친구가 생기면 바로 키스를 해야 하나요? 여자를 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위행위를 하는 걸 부모님도 아실까요?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사나요?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간이 고통을 받을까요? 테러리스트들은 미친 사람들인가요? 정치가 정말 어딘가에 쓸모가 있나요? 동생이 왜 이렇게 미울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정말 다 배워야 하나요?
목차를 읽으면 책을 펼치지 않고 참기 어려울 것이다. 심각하고, 재밌고, 놀랍고, 비밀스럽고, 또 때로는 난처한, 10대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모아 친구관계, 이성문제, 신체변화, 사회문제, 가족문제, 진로문제, 사춘기 문제 등 7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사소하고 뜬금없는 것부터 철학자들도 쉽게 답하기 힘든 무거운 질문들까지, 그에 대해 그냥 해답을 던져주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간다.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고 상담해왔던 저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지만 인종과 문화의 장벽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