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 오는 날에는 여러모로 더 힘든 장애인들

'내일 비오면 우짜노?'

어젯밤(23일) 상래 형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나는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다음날 '비눗방울'(장애인과 장애인목욕도우미들의 공동체)과 후원인들이 아쿠아리움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이 실내인데도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장애인들은 우산을 들고 전동 휠체어를 운전하기가 어렵다. 우산을 든다 하더라도 앞 쪽 발은 보통 다 젖는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비가 오면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 굳이 하려면 두리발(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장애인들이 영도, 다대포, 금곡 등 주로 부산의 외곽지역에 살다보니 택시비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두리발에는 전동 휠체어가 한대 밖에 안 들어가기 때문에 함께 타서 싸지는 택시의 묘미도 살리기 힘들었다. 회비가 5,000원인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생겼다. 게다가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비오는 날에는 장애인의 휠체어가 거슬리기 만해도 몇몇 어르신들이 '집에 있지 말라 기어 나오노?'라며 역정을 내시기도 한다. 비오는 날, 더운 날 등은 장애인들이 억울한 화풀이를 많이 당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택시비는 어떻게든 할 테니 두리발 꼭 타고 오시라고, 비오는 날 한번 가보자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고 잠을 잤다.

카펫이 휠체어 바퀴에 엉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다음날(24) 아침 차를 가진 후원인과 나와 다른 비누방울이 1명이 수동 휠체어를 타시는 민성형을 모시러갔다. 해운대에 도착할 때쯤에는 거의 호우 수준으로 내렸다. 비 때문에, 휠체어는 다 젖었고, 민성형을 안고 차와 휠체어를 오갔던 우리들도 다 젖었다.

아쿠아리움 앞에는 두리발을 타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비를 맞았을 장애인들이 주최자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택시비가 1만 원밖에 안 나왔단다. 2만 원 예상하고 있었는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아서 아쿠아리움에 들어가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아서 아쿠아리움에 들어가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장애인 복지카드를 걷어서 표를 끊고 아쿠아리움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입구가 너무 좁은 데다 물기를 흡수하기 위해 깔아놓은 카펫이 휠체어 바퀴에 엉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엘리베이터도 너무 좁아서 전동 휠체어 1대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7명의 장애인과 7명의 비장애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장애인들끼리 놀러오기 참 힘들다.

12시에 상어 밥 먹는 쇼를 보고 싶었던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이나 상어나 12시면 배 고파지는 건 똑같은가 보다. 

상어 수조 앞에서 좌절 그러나 마음은 흐뭇

다행히 시작 전에 우리는 상어가 있는 수조에 도착했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빼곡히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들은 쇼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의자는 계단식으로 돼있었다. 마음 상한 내게 계속 안 좋은 것만 눈에 들어왔다. 바다표범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었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는 황당하게도 버튼이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까봐 버튼을 안 달아놓은 것이다.

상어가 밥먹는 쇼가 벌어졌던 메인석. 계단과 빽빽한 의자 탓에 장애인들은 볼 수 없었다.
 상어가 밥먹는 쇼가 벌어졌던 메인석. 계단과 빽빽한 의자 탓에 장애인들은 볼 수 없었다.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후원인의 5살짜리 귀여운 아이 덕분에 즐거운 나들이었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지닌 아이였는데, 요녀석이 부귀형 전동휠체어를 졸졸 따라다니더니, 무릎위에 앉아서 전동휠체어를 타려고 하는 것이다. 말리려고 했는데, 부귀 형이 괜찮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셨다. 아이도 부귀형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도 흐뭇해졌다.

한편, 처음 장애인들을 만난 후원인들의 모습도 꽤나 귀여우셨다. 손으로 밀어받자 소용없는 전동휠체어를 밀려고 애쓰시다가, 그게 여의치 않으니 전동휠체어를 잡고 따라다니셨다.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하시기도 하셨다.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으셨나보다.

아쿠아리움 수족관에서 본 상어
 아쿠아리움 수족관에서 본 상어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받는 존재 아닙니다

그러나 비누방울의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주체로서 평등하게 만나는 것이다. 공동체의 성원 중 누구는 도움을 주고 누구는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어떤 누구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반대로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사전에 했어야 하나? 라고 생각했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한다! 라는 걸 말하고 만나는 경우는 보편적이지 않다.

비누방울 회원들이 신기해하며 관람하고 있다.
▲ 즐거운 관람 비누방울 회원들이 신기해하며 관람하고 있다.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대부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가진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차별과 편견을 가진 비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전에 이런 것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아닐까? 라는 고민에 이르렀다.

그래 부딪히는 거다. 비누방울에서 맺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한 관계가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되고 세상의 관계가 된다면, 우리사회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 주는 오랜만에 다시 목욕이다. 매주 오겠다고 해서 할인해줬는데 안 와서 삐지신 건 아닌지 걱정이다.


태그:#장애인, #비누방울, #부산대학교, #아쿠아리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이 기자의 최신기사'최저임금 1만 원'을 폐기하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