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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소와 송아지가 숨바꼭질을 하듯 한가로이 놀고 있다.
▲ 엄마소와 아기소 엄마소와 송아지가 숨바꼭질을 하듯 한가로이 놀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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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우리 민족과 희, 노, 애, 락을 같이 해온 보물 같은 존재다. 만일 소가 병이라도 나면 온가족이 걱정을 하고 몇 십리를 밤새 달려가서 약을 구해다 먹여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소먹이를 제일 먼저 챙겨야 했고 외양간 청소도 하루가 멀다하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소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을 만큼 큰 일꾼이었으며 큰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밭에 씨앗을 뿌리려면 밭을 갈아야만 하는데 지금처럼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었기 때문에 소가 필요했다. 소가 없는 농가는 소를 이웃에서 빌려다 밭을 갈아야 했다. 소를 한 번 빌리자면 사람이 이삼일 정도는 일을 해주어야 할 만큼 귀한 존재였다. 더구나 일 년에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아주기 때문에 가정경제에도 큰 보탬이 되어 사람보다도 더 귀중하게 대접을 받았다.

봄이 되어 들판에 풀이 쑥쑥 자라나면 학교를 파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소를 끌고 산과 들로 나갔다. 소에게 싱싱한 풀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강바람이 시원히 불어오는 길 다란 뚝방으로 소를 몰고 나가면 소는 냄새를 요란하게 맡으며 정신없이 풀을 뜯어 먹었다. 마치 며칠을 굶은 소처럼 말이다. 소는 풀을 뜯어 먹을 때 씹지 않고 그냥 넘긴다. 그리고 나중에 천천히 돼새김질하며 씹어 넘기는 특이한 소화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고삐를 끌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소의 옆구리가 어느새 불룩해지고 해는 서산으로 낮게 떨어진다. 친구들과 콧노래를 부르며 어둠을 몰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소는 갑자기 길에다 굵은 똥을 싸며 걸어 간다. 그 검은 똥은 소 엉덩이에서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어머니가 간식으로 부쳐주는 빈대떡 모양으로 퍼지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양을 보고 수수께끼를 하나 만들었나 보다. "걸어 가면서 빈대떡을 부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친구들에게 곧 잘 써먹던 수수께끼였다.

계곡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모습
▲ 풀을 뜯고 있는 소 계곡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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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해가 기울어 선선해지면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 소꼴(소가 먹을 풀)을 가득 베어다 놓으신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전에 풀을 한 아름 안아다 주시고는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풀을 먹고난 소는 감사의 표시을 하듯 눈을 연신 깜박거리며 되새김질을 해댄다. 서로 바라 보는 눈빛이 가족처럼 다정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혹시 소가 산기라도 보이면 외양간에 불을 밤새 켜놓으시고 외양간을 살피신다. 왜냐하면 송아지를 낳을 때 거꾸로 나오거나 잘못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사고가 없도록 도와 줘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뱃속에서 힘들게 갓태어난 송아지는 가만히 있지 않고 서보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하루 정도 지나면 곧잘 서서 움직이는데 술취한 사람처럼 서툰 걸음을 시작한다. 가끔 마당에 나와 걸어 다닐 때가 있는데,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막 걸음을 배운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예전에는 집에 송아지가 태어나면 큰 경사였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산모를 주기 위해 소죽을 끓이고 외양간을 살피시느라 분주했다.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소를 밤 늦게 찾으러 간 적이 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소를 산에 매어 놓은 생각을 잊어버리고 그냥 잠자리에 든 것이다. 이날 아버지께서는 초상집에 갔다 늦게 돌아오셨는데, 외양간을 살펴보니 소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신다.

"다들 뭐하고 있어! 소가 외양간에 없잖아!"

아버지의 호령에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를 산에 매어놓고 끌고 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거 큰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리며 마음이 다급해진다. 잠시 후 바깥으로 뛰어나가 나도 모르게 사실을 고하고 말았다.

"소가 산에 있는데요."
"뭐! 소가 산에 있어?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산에 매어 놓고 깜박 했어요."
"뭐 이런…."

아버지는 빗자루를 드는 대신 나를 앞세워 산으로 달려가셨다. 모든 식구들이 놀라 한밤중에 산으로 올라갔다. 산은 지금처럼 우거지지 않았지만 소는 비교적 숲이 우거진 산 꼭대기쯤에 매어 두었다. 자주 가는 곳이라 어둠속에서도 찾아가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소가 그 자리에 잘 있어 줄지 몹시 걱정되었다. 아마 이때가 밤 12시쯤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소가 무사히 그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애원하면서 숨가쁘게 올라갔다. 그러나 소가 매어진 그 곳에 가까이 갔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있을까봐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별의 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데 소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어슴프레 보인다. 천만다행이다 싶어 소 앞으로 반갑게 다가갔다, 순간 소는 땅이 꺼질 듯한 숨을 길게 몰아 내쉰다. 어찌나 숨소리가 크던지 모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힘자랑을 하듯 강한 인상을 풍기는 소의 모습
▲ 늠늠한 소 힘자랑을 하듯 강한 인상을 풍기는 소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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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눈을 가진 덩치가 큰 소도 깜깜한 산속이 몹시 무서웠는가 보다. 숨을 억지로 죽이고 있다가 주인을 만나자 안도의 숨을 내쉰 것이다.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이때처럼 소가 반갑고 소중하게 느낀 적은 없다. 마치 잃었던 가족을 다시 찾은 것처럼 감격스럽고 기쁘기 그지 없었다.

소는 가족과 많은 일을 함께 겪다 보니 서로 눈빛만 보아도 통한다. 그래서 소에게 일일이 따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 가령 가족이 일을 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밭으로 갈 때면 주인이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가고자 하는 일터로 잘 찾아간다.

어떤 소는 주인이 마차에 누워서 콧노래를 부르고만 있어도 주인이 원하는 목적지로 정확히 데려다 주곤한다. 심지어 강을 건너야 하는 경우에도 주인을 마차에 태우고 강을 말없이 건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충성스럽고 착하기만 하다.

이렇듯 소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여 힘든 일을 하고 예쁜 송아지까지 낳아주니 주인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를 보살피는데 게으름을 피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사람이 매일 쌀로 밥을 해 먹듯이 말린 볏짚과 시래기(무잎 말린 것)를 작두로 잘게 썰어 날마다 소죽(소밥)을 끓여 먹이곤 했다. 또한 소죽을 끓일 때 등겨(방앗간에서 벼를 찧을때 나오는 부산물)를 한 바가지씩 넣어 주곤 하였는데 이로 인해 집안이 구수한 냄새로 진동을 했다.

요즈음은 들에서 풀을 뜯는 소를 만나기가 싶지 않다. 더욱이 밭에서 쟁기로 밭을 갈거나 마차로 짐을 실어 나르는 풍경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아주 오지의 산골에나 가야 가끔 볼 수 있는 추억의 풍경이 되었다. 마침 금산군 제원면을 지나다가 하천에서 옛날처럼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소와 아이들의 모습
▲ 소와 아이들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소와 아이들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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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반가워 그곳에 앉아 한참을 바라 보았는데, 소들도 내마음을 아는지 옛날의 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어릴 적 강가에서 우리집 소를 만난 듯 가족같이 편안하고 즐거울 뿐이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아버지가 들려 주시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예전에는 소를 팔고 사기 위해서는 오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을 이십여리 이상 찾아가야만 했다.

"소장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오는디, 갑짜기 소가 멈추어서서 꿈적도 않더라고! 그래서 앞을 쳐다보니 호랑이 한마리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 있는 게 아녀! 순간 소는 새끼를 뒷다리 사이에 감추고는 꼼짝을 하지 않고 서 있더라고. 그래서 얼른 소의 고삐를 풀어 주고 주변의 나무에 올라가서 지켜보았지.

호랑이는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소 등 위를 펄쩍뛰어 넘더라고. 근디 소는 정신을 잃었는지 꿈쩍도 않고 그냥 서있는겨. 소가 몹시 걱정도 되었지만 어쩔 수가 있어야지. 호랑이는 다급한 마음에 소의 등을 더 세게 훌쩍 훌쩍 뛰어넘으며 으르렁대더니. 힘이 부치는지 잠시 주춤하데.

근데 갑자기 소가 미친듯이 달려가 호랑이를 들이 받는 게 아녀! 글쎄! 그 광경이 너무 통쾌하여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지. 글세 소가 미련한 줄만 알았는데 대단한 놈이더라고! 그래서 호랑이 한 마리를 덤으로 잡았지 "

이 이야기는 좀 과장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예전에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소에 대한 유일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 야기를 사실처럼 믿고 자랑스럽게 소를 몰고 산과 들로 많이도 돌아 다녔다.

순수한 한우 혈통을 가진 소들의 모습
▲ 한우 순수한 한우 혈통을 가진 소들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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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고기 수입문제로 세상이 무척이나 시끄럽다. 만에 하나 광우병으로 국민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소 잃고 뒤늦게 외양간 고치지 말고 건강문제를 꼼꼼히 따져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는 채식주이자이다. 한우처럼 열심히 일하며 싱싱한 풀을 뜯어 먹는 소는 절대 우리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의 소들도 옛날의 한우처럼 운동을 많이 시키고 싱싱한 먹이로 키우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유포터 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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