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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의 거리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촛불문화제가 철야집회로 이어졌고, 24일 밤에는 3천명이 넘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이틀 동안 60여명이 연행됐고, 전주에서는 분신도 있었다.

 

청계광장의 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있는 26일,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의 18대 국회 당선자 워크숍 프로그램은 강연중심이었다. 오전에는 문희상 상임고문의 '한국정치의 나아갈 길'과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통합민주당에 바란다'가, 오후에는 노규형 R&R 대표의 '18대 국회, 통합민주당의 역할과 과제'와 최염순 카네기 연구소 소장의 '소속감 혁신 프로그램' 등의 강연이 잡혔다.

 

81명의 당선자 대부분이 참석한 자리였으나, 쇠고기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는 없었다. 분신사태까지 발생한 거리시위에 대해서는 당 대변인과 부대변인이 정부의 '강압적 진압'에 대해 "5공식 공안통치의 부활"이라는 비판 논평을 냈으나, 손학규·박상천 대표 등 지도부는 워크숍 인사말에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학규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체결한 FTA협상을 우리가 비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책임 있는 자세를 취했는지 반성해야 한다"면서, FTA 비준을 하지 못한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게 있지만, 정국이 바뀌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을 때 우리 책임은 묻지 않을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17대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이 실패한 것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민주당이 취해온 입장과는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한미FTA 비준에 나서달라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의원들을 몰아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던 손 대표로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것이었다.

 

당 관계자는 "워크숍에 현안 토론이 없다"는 질문에 "이미 잡혀 있던 프로그램이고, 18대 국회를 시작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일체성을 확보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답했다.

 

초·재선들 "촛불시위 연행 등 현안 토론" 요구에 프로그램 변경·성명서 발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나섰다. 강기정 의원은 "우리가 국민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의원을 비롯해 박영선·안민석·조경태 등 재선 의원과 초선인 김상희·이춘석 당선자 등 10여명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였다.

 

이들은 "워크숍도 중요하지만, 촛불시위자들에 대한 연행과 쇠고기 협상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오후 워크숍이 시작되자마자 현안 토론을 요구했다. 송영길·이미경·유선호 등 다선 의원들도 동의하면서 '소속감 혁신 프로그램' 강연이 취소되었고 대신 현안 토론이 열렸다.

 

쓰러진 박홍수 사무총장이 맡고 있던 '쇠고기 협상 무효화 추진위원회'를 '쇠고기 재협상쟁취 투쟁위원회'로 확대하고, 최인기 정책위의장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그러나 이후 정국 대처방향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거리투쟁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쇠고기 재협상을 18대 원구성 협상과 연계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적으로는 '쇠고기 재협상-원구성 협상 연계' 주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김부겸 의원과 원내대표 후보 단일화를 이룬 원혜영 의원은 "거리투쟁이 과격화되는 것은 정부에 이용당하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폭력 투쟁이 돼야 하고, 정부도 이를 과장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민의를 잘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성 원내대변인도 "정당으로서는 원구성협상의 조건으로 쇠고기 재협상을 제시하는 것이 장외투쟁보다 더 위력적이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당선자는 "야당이 무기력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말에, "17대 국회 말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사실상 무전략 상태 아니냐"면서 "지도부 재편기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당선자들은 현안 등에 대한 분임토론을 끝낸 뒤, 이명박 정부에 대해 '국민탄압 즉각 중단과 쇠고기 재협상' 촉구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최인기 정책위의장 등이 수서경찰서에 갇혀 있는 거리시위 연행자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애초 프로그램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손 대표의 아침발언에 대한 뒷말도 나왔다. "정작 기사제목이 될 현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당론과 다른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여당과 정부 대 시민의 대결에서 민주당 제3자 전락" 우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우원식 의원이 25일 성명에서 "대선과 총선 패배의 후유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절망적 결과다.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 것이 설득력을 갖는 상황이다. 그는 "여당과 정부 대 시민의 대결에서 민주당은 제3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정부출범 석 달도 안돼 지지도 20%대로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이 정국 수습을 위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제1야당의 손학규 대표가 아니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당분간 이런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많다.


#촛불시위#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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