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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밀에는 '우리'라는 말이 붙는다. 우리 쌀, 우리 밀. 여기서 우리라는 수식어는 우리 것을 지키자는 수세적인 의미로 쓰인다. 수입 쌀과 수입 밀의 거센 물결에서 우리 쌀과 우리 밀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쌀은 우리나라 곡물 중 유일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로 95% 이상이 우리쌀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농민들이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결과다.

 

요즘처럼 애그플레이션(곡물인플레이션)이 일반화된 상태임에도 시민들이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매일 먹는 쌀을 수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2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밀의 경우 수입 밀이 전체 소비량의 99.7%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밀 가격이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다.

 

과거 수입밀과 우리밀의 가격 차이는 네 배 정도에서 현재는 가파른 수입밀의 가격 상승으로 한 배 정도로 좁혀졌다.  

 

하지만 밀가루의 전반적인 소비 감소로 인해 우리밀의 소비도 덩달아서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우리 밀의 미래는 아직도 어두운 터널 속처럼 불투명하다. 아마도 0.3% 우리밀의 소비량이 증가되는 상황은 수입 밀 가격이 우리 밀 가격을 앞지르고 미국에서 밀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동네마다 빵집이 있고 슈퍼마다 빵이 넘치고 밀가루를 재료로 하는 음식점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99.7% 밀을 수입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어 보이지만 이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현실이다.

 

들판에서도 밀이 사라진 지 오래여서 밀과 보리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밀밭을 구경하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전남 구례는 어디서나 흔하게 밀을 볼 수 있는 전국에 몇 안 되는 곳이다. 5월이 되면 구례 들판에는 그야말로 밀 익는 논이 지천이다. 

 

24일 전남 구례에서는 도시 소비자를 초청해서 우리밀 생산자들과 함께 사랑과  추억이 담긴 우리 밀 사리 축제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수도권 소비자 320여 명과 구례 우리 밀 생산자와 마을 주민 500여 명이 참여했다.

 

밀사리는 오래 전 우리 부모님들이 했던 것으로 익지 않은 밀을 구워 먹는 것을 말하는데 밀대를 꺽어 불에 쌀짝 구워 손으로 비비면 통통하게 살 오른 밀이 툭툭 떨어져 나온다. 이 밀을 한 움큼 쥐어서 입안으로 털어 넣고 톡톡 깨물어 먹으면 구수한 밀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데 이것을 밀사리라 한다.

 

예전에는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했던 것이지만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이고 몹쓸 먹을 것이 많아서 신중하게 골라 먹어야 몸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때가 됐으니 누가 밀사리를 하랴. 하지만 예나 지금이니 먹을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으니 밀사리 진한 추억 때문에 아이들이 평생 우리 밀을 사랑하고 먹게 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맛있어?"

"네. 재미도 있고 맛도 있어요."

 

"엄마, 밀이 꽃 같아."

"그러게 이렇게 꺾어 묶어 보니 꽃다발 같다."

 

"엄마, 나 무당벌레 잡아서 집에 가져갈래."

"무당벌레는 밀밭에 두고 가야지."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과 부보의 대화가 정겹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밀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 제일 좋은 구경 중 하나가 불구경이란 말이 있는데 불구경도 하고 밀도 구워먹으니 이보다 좋은 구경이 없다.

 

어느새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국내에서 시작된 지 20여 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밀이 수입밀과 어깨를 견주기엔 너무 미약하다. 밀은 이제 우리 식탁에서 더 이상 부식으로 취급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다. 누구나 하루에 한 번은 밀로 된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밀은 우리 식탁에서 중요 곡물 중 하나다.

 

그만큼 밀은 주요한 곡물로 수입에만 의존하기에 그 중요성이 너무 크다. 더구나 옥수수는 대두와는 달리 벼농사를 지은 이후에 이모작으로 심을 수 있는 작물이기에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곡물이다. 단지 소비자의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수입 밀가루의 잔류농약이나 포스트하비스트(수확 후 농약처리) 문제 등이 이미 공론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입 밀로 만든 음식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라 할 수 있다.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원료의 안전성이다. 아무리 위생적인 방법과 유통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 원료가 농약성분이 있거나 GMO(유전자변형식품)이라면 그 안전성은 보장 할 수 없다. 우리가 시장에서 밀로 가공된 빵과 라면, 과자 등의 식품을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다면 결코 우리의 밥상을 안전하게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리밀, #참거래농민장터, #구례우리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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