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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야단났습니다. 좋아하는 설렁탕 곰탕 육개장 도가니탕을 이제 다 끊어야 할 상황이네요. 몸보신한다고 특별히 비싸게 사먹는 꼬리곰탕이나 우족탕도 물 건너가는 가 봅니다. 값도 싸면서 걸쭉하여 쐬주 생각나게 하는 내장탕도 그렇고, ‘한턱 쏜다’고 주문하는 수육이나 어복쟁반도 ‘혹 10년 후 광우병?’ 하며 목숨 걸고 시키는 메뉴가 되겠군요. 저는 용기가 부족해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것 뿐인가요? 칼국수 버섯탕 등과 같이 육수를 넣어 끓이는 요리나 육수에 빠뜨려 건져먹는 냉면이나 국수도 이제는 소뼈나 쇠고기를 재료로 만든 육수를 쓴 것이 아닌지 철저하게 확인한 후 주문해야 할 것입니다. 소뼈로 육수를 내는 평양냉면은 이제 포기해야지요. 라면 수프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좀 복잡합니다만 정부 계획대로라면 뼈도 상당부분 들어온답니다. 곱창도 ‘치명적인 부분’을 제거한 나머지 부분이 수입된다지요. 물론 우리나라 식당의 거의 대부분은 100% 한우 뼈 곱창 등을 재료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식당들이 없지 않겠습니다. 구분이 가능할 까요?

 

 TV에서 본 대로 수입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는 마술이 우리 거리에 횡행(橫行)합니다. 식재료상이나 식품가공업체들은 또 어떻게 하고요? 실업자도 줄일 겸 검사인원을 1백만명 정도 양성하여 감시하면 될까요? 아예 광우병 우려 요인들이 들어오지 않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설렁탕 먹는 ‘비헤이비어’ 고쳐야하나요?”

 

 먹거리와 질병 등을 다루는 관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의 높은 사람이 TV에 나와서 그러더군요. (소뼈나 내장, 머리 따위를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헤이비어는 바뀌어야 한다고요. 비헤이비어(behavior)는 행동 습성 등을 이르는 영어 단어인테 외래어라 할 만큼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요. 발언 당시 분위기로 보아 “그런 행태(行態)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런 비헤이비어를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선 위에 열거한 메뉴를 식당에서, 또 요리책 등에서 빼거나 주의사항을 곁들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면면이 이어져 온 이 음식문화가 이제는 (국가 기관에 의해) ‘타도(打倒)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음식문화가 광우병 우려 때문에 망가질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진실로 슬픈 일입니다.

 

 제가 청계천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어떤 이는 당장 ‘몸 조심해!’ 하고 답신을 보냈네요. 남들은 다 큰 뜻을 주장하며 ‘촛불문화’에 나서던데, 참 어리석고 이기적이게도 저는 좋아하는 음식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원통해 촛불을 들었답니다. 맛난 설렁탕 국물을 생각하며 또 나갈 참입니다.

 

 한참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80년대 초반쯤으로 생각되는데 일 때문에 영국에 갔다가 런던 교외에 살던 친지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쇠고기에 얽힌 얘기입니다. 유학생이나 상사 주재원 등 한국인들이 늘어나자 뼈 내장 족(足) 등 영국 사람들이 먹지 않아 버려야 했던 부위를 팔 수 있게 되어 한 동네 푸줏간이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우리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다고 하더군요.

 

“착하고 예쁜 ‘소의 웃음’을 아시는지요?”

 

 우리는 쇠고기의 거의 모든 부위를 먹습니다. 뼈까지도 푹 고아 몸보신을 합니다. 내장도, 발도 예외가 아니지요.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런 비헤이비어는 바뀌어야 한다.”고 충고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개 살코기만 먹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헤이비어를 바꾸기 위해 유전자나 다름없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니 황당합니다. 섭섭하고요.

 

 저는 때로 우소거사(牛笑居士)라는 필명을 씁니다. 사람들이 ‘소가 웃을 일’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지은 이름입니다. 소가 ‘음메에’하는 것을 운다고 하지요.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고 정지용 시인이 ‘향수’라는 시에서 읊기도 했지요.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소의 ‘음메에’ 소리는 웃음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내는 소리라는 말씀입니다. 새끼를 부르거나 자기들끼리 의사표시를 하는 수단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서 소를 몰고나가 꼴(소 먹이가 되는 풀)을 먹일 때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입니다. 소가 좋아하는 신선한 풀이 많은 곳에 소를 매어 두면 한참을 먹다 기분이 좋은지 ‘음메에’ 합니다. 이럴 때 그 녀석을 바라보면 정말 착하게, 좀 웃기기도 하는 모습으로 히죽 천천히 웃습니다. 그 모습이 좋아 자꾸 보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석양(夕陽)과 함께 아스라한 풍경입니다.

 

 이렇게 이쁘고 착한 소의 웃음을 사람들이 폄훼(貶毁)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소가 웃을 일’이라고요? 소의 웃음을 앞으로는 모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죽기 위해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소의 눈물을 보신 적인 있으신지요? 소라는 녀석은 참 귀한 존재랍니다.

 

“아들 진학에 아버지는 소외양간에서 우셨대요.”

 

 소는 농가의 친한 식구였지요. 일 도와주는 ‘머슴’ 역할도 근사했고, 큰 아들 대학가면 학자금(學資金) 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아들 대학 가서 좋기는 한데, 아버지는 외양간 문 걸어 잠그고 한참 있다가 눈이 퉁퉁 부어 나오셨지요. 소와 이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우리 기억 속의 소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곡물이나 사료도 먹이지만 꼴도 많이 먹입니다. 많이 키우는 축산농가도 20~50마리 정도의 규모지요. 소위 한우(韓牛)라는 소의 모습입니다. 여러 이유로 축산 농가들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미국 소라고 다 광우병 걸릴까?” “미국이 어떤 나란데(얼마나 좋은 나란데) 우방(友邦)에 광우병 소를 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소는 식구와도 같은 우리의 소와는 다릅니다. TV에서 미국의 목장이나 도축장 화면을 보셨겠습니다만 미국의 축산업은 오로지 고기를 만들기 위한 공장의 개념으로 출발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런 미국 소의 ‘음메에’는 필시 울음일 것입니다. 인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도축(屠畜)만을 위한 소, 풀은 먹지 못하고 ‘효율적’인 사료에다 심지어는 자기와 같은 족속(族屬)의 뼈와 고기를 먹는 소는 웃을 일 보다는 울 일이 더 많을 터입니다. 소에게 소를 먹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가요? 미국에서는 소가 소를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료에 섞는 겁니다. 성하고 건강한 소를 잡아 소의 먹이로 쓸까요?

 

“소가 소를 먹어 유전자가 꼬였다는데 괴담인가요?”

 

 제가 꼴 먹이던 소처럼 소는 풀을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소가 가장 좋아한다는 얘기지요. 서양 얘기책에 보면 건초(乾草)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풀을 베어 말린 것이지요. 이 건초(hay)는 소에게도, 말에게도 최고의 성찬입니다. 건초가 부족하여 곡물을 먹이지요. 그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노쇠하거나 병든 소와 같은 가축의 고기를 가축에게 먹입니다. 해보니 고기 맛이 더 낫다고 했다나요? 소가 소를 먹게 된 내역이랍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미국 정부가 소 키우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해 주기만 하면 확인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그 소를 사먹어야 한답니다. 소 아닌 닭이나 돼지고기를 먹이는 것은 괜찮답니다. 또 그 닭과 돼지에게 소를 먹이는 것은 괜찮다는군요. 이런 사료 체계가 유전자 변이(變異)를 부르고, 이것이 광우병이 된다고 추측되고 있답니다. 

 

 1백 년 전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이라는 소설이 미국 소와 축산업의 본질을 증언합니다. 우리의 축산업과 어떻게, 왜 다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도축장의 비참한 노동환경과 비위생적인 처리과정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지요.

 

 1996년 방한한 미국 소비자운동가 랄프 네이더와 ‘정글’에 관해 한참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그는 “싱클레어의 ‘정글’은 소비자운동의 발상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축산 관련 식품안전 전문 소비자운동이 미국에서 활발합니다. 여러분이 최근 보신 다우너 소에 관한 영상 등도 다 그런 맥락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내 설렁탕을 위해 차라리 철이 들지 않겠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아직 이런 미국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미국 시민들은 아직 이런 우리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서로의 문화와 사정에 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다면 이런 무리한 일은 생기지 않을 터인데, 참 유감스럽군요.

 

 오늘은 2008년 5월 26일입니다. “속없이 니 그런데 가지마라 잉!” 경찰 높은 자리에 있는 어떤 친구가 자못 심각하게 전화로 들려준 말입니다. 곧 ‘고시’를 한다고 합니다. 내 설렁탕을 지키기 위해, 미래의 내 자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저는 오늘 청계천에 촛불 하나 보태려 나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인 필자는 암식이연구원(www.cancerfood.or.kr) 원장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우병, #미국, #쇠고기, #음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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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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