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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신이 났다. 올해부터 단기 방학이 실시되어, 아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싱그러운 5월에 방학을 한단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울릉도 여행을 가자고 한다. 나는 속으로 좋으면서도 마지못해 응해주는 것처럼 시큰둥해 했다. 아내는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기뻐한다.

 

청명한 5월의 햇살과 에메랄드빛의 투명한 바다 그리고 울릉도라는 섬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기방학 최선의 여행지라고 좋아한다. 그러면서 단기 방학이 교사인 자신들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무더운 계절의 여름방학과 추운 계절의 겨울방학보다 여행하기 좋은 이런 단기 방학을 최대한 잘 활용해서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본래 여행할 때보다 여행을 계획할 때가 더 즐거운 법이라고 했던가. 아내는 성인봉의 울창한 원시림 혹은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아직은 알 수 없는 울릉도 사람들의 삶 그들과의 만남, 몽돌 쓸려가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어우러진 밤의 정취 그리고 맛있는 먹을거리들을 떠올리면서 여행 준비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계획한 것은 5박 6일 동안 울릉도 해안 도로를 중심으로 전체를 걸어서 여행 하는 것이었다. 울릉도는 인구 1만426명(2000년 기준), 면적 73㎢, 북위 37˚29',동경 130˚54´, 해안선의 길이는 56.5㎞인 화산섬이다. 2500만 년 전 신생대 3-4기 화산 분출로 인해 생겨난 섬이다. 3무 5다의 섬이라고 하는데, 도둑, 뱀, 공해 세 가지가 없고,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실제 걸어서 여행하면서 3무 5다를 실감하리라 마음먹었다.

 

드디어 5월 5일 묵호로 출발했다. 우리가 울릉도행 배를 예약한 것은 5월 6일 오전 10시에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배다. 당일 새벽에 분당에서 출발해도 되겠지만 무리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묵호에 처이모가 하는 민박집이 있어서 편한 마음으로 하루 전에 묵호로 출발 했다.

 

그런데 묵호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밤새 비가 오고 심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분다. 다음 날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걱정을 하면서도 배는 뜨겠지 생각했는데, 새벽에 여객터미널에서 풍랑주의보가 내려 오늘 배가 뜰 수 없다는 문자가 왔다. 전화를 해보니 풍랑주의보가 해제되면 오후에 배가 뜰 수도 있으니 오후에 다시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오후 2시경 여객터미널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 4시쯤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해서, 아직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4시쯤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아 오늘은 출항하지 못하고 내일 새벽 5시에 출항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 수 없이 하루를 묵호에서 더 자게 되었다. 

 

이처럼 울릉도를 비롯 섬으로 배를 타고 여행 할 때에는 날씨를 잘 알아보고, 출발과 도착 전후로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수전-석포-섬목-죽암-천부-나리분지

 

어제 비가 온 뒤라서인지 공기는 맑고 날씨는 청명했다. 예정대로 새벽 5시 씨플라워호를 타고 묵호항을 출발했다. 일출시간이 5시 20분경이라는 예보가 있었으니 배 위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앞자리에 앉은 아이엄마는 벌써 멀미를 하는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럴 즈음 어디선가 "일출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뱃머리 쪽으로 가니 붉게 물든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던 아침바다는 어느새 푸른빛을 더하고, 힘차게 솟구치는 꽁치떼 위로 한 무리의 갈매기가 뒤따라가고 있었다.

 

드디어 멀리 희미하게 울릉도가 보이더니 점점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시 10분 울릉도 도동항에 발을 내딛었다. 예정했던 일정에서 하루가 빠졌기 때문에 전체 일정을 조정하여, 오늘은 내수전전망대부터 석포-섬목-죽암-천부를 거쳐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로 들어가 산마을 식당에서 1박을 하기로 하였다.

 

도동은 울릉도의 중심지로서 행정, 상업 등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는 묵나물해장국으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한 뒤, 분식집에서 김밥 도시락을 준비해서 내수전전망대로 향했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여행은 역시 걸어서 해야 참맛이라며 찐빵 2개를 간식으로 따로 챙겨주셨다. 

 

어디서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여행은 더욱 새롭고 즐겁다. 내수전전망대 초입까지는 택시로 이동하고, 배낭을 그곳 포장마차에 맡겨놓고 내수전전망대로 올라갔다. 10분 정도 걸어서 전망대에 올랐다.

 

바다 속까지 보이는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부터 짙푸른 코발트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깔을 펼쳐 보이는 탁 트인 바다로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섬목에서 저동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관음도, 죽도 그리고 북저바위 등을 보며, 역시 너무나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망원경으로 관음도를 보니 꽤 큰 동굴이 있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구 상상력을 자극한다. 옛날 그곳은 해적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깎은 듯이 경사진 산 중턱에 밭을 일구어 고비, 부지깽이나물 등을 재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포장도로가 끊긴 곳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이다. 이 길을 옛길이라고 부르는데,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름 모를 나무, 풀, 양치식물들의 군락이 이어지고,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여기서 죽암 방면의 왼쪽 길로 가야하는데, 이정표가 확실치 않아 오른쪽 길로 잘못 들어서서 한참 내려가다 다시 돌아왔다. 나중에 동네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그 길은 와달리라는 마을로 가는 길인데, 옛날에는 해안에 마을이 있고, 군 초소도 있었다고 하시며,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길마저 없어졌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삼거리에서 조금 걸어가니 동백나무 숲을 비롯한 숲이 이어지더니, 작은 계곡이 나타나고, 정매화쉼터라는 정자가 나타났다. 쉼터에서 지친 다리를 쉬며 점심을 먹고, 누워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한잠 자노라니 우리가 바로 신선이었다.

 

다시 출발해서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삼거리가 다시 나타났는데, 이정표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다 대충 석포 쪽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가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만났다. 사람 좋아 보이는 버스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게 석포전망대 가는 길을 알려 주시며, 섬목에서 가능하면 태워서 갈테니 전화하라는 친절한 배려까지 해주셨다.

 

석포전망대, 이곳은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동쪽으로는 내수전 전망대까지 쭈욱 펼쳐보여지고, 서북쪽으로는 북면 해안과 더불어 멀리 송곳산까지 보인다. 석포전망대에서 급경사인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와 선창에서 관선터널을 지나 섬목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사진을 찍느라고 늑장을 부린 탓인지,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선창으로 나오니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인적도 드믄 석양의 해안도로를 걸어가노라니 지금 내 삶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속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선암, 이름도 재미있는 딴바위를 지나 죽암이라는 마을을 거쳐 드디어 7시 넘어 천부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을 묵기 위해 예약해 놓은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에 전화를 했더니 식당 주인아저씨가 직접 데리러 오셨다. 어둠을 뚫고 고개를 넘어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라는 나리분지에 들어섰다. 그리고 너무나 맛있는 산채비빔밥과 산채전 거기에 씨앗술을 곁들여 한 잔 하고나니, 오늘 하루가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씻자마자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덧붙이는 글 | 5월 5일부터 11일까지 울릉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태그:#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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