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계광장에 도착한 시간은 27일 새벽 6시 30분이었다. 그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기를 바라야 하는 것일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군가'는 있었다. 격렬한 새벽을 보내고 여전히 돌아가지 않은 참가자가 20명 가량 있었다. 낯익은 분들이 많이 보였다. 나를 알아보더라. 왜 이제 왔냐고 웃으며 가볍게 질책하시더니 반갑게 손을 내미셨다.

 

그중에는 강미숙(42)씨도 계셨다. 실명을 밝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많은 언론이 그를 주목해 보도했었다. 몸이 불편함에도 꾸준히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셨고, 새벽에 과도로 자해를 시도했다는 그 분이다. 강씨도 이젠 나와 구면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팔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의료봉사단이 과도를 뺏었고, 응급조치를 해줬다고 한다.

 

자해 후 인대 손상

 

강씨와 인사를 나누며 가볍게 질책을 했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셨냐고. 반가움은 표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으신다.

 

청계광장에 여전히 남아있던 사람들은 강씨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결론은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씨의 '호위부대'가 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강씨를 모시고 인근 서울 적십자 병원으로 향했다.

 

일단 응급실을 향했다. 대기실에서 잠시 피로를 풀고자 눈을 감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강씨의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어 들려온 소식은, 강미숙씨의 인대가 손상됐으며, 입원과 수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입원 수속을 하려면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 하지만 그의 가까운 가족은 마산에 거주한다고 한다. 이게 지금까지 글을 쓰고자 PC방으로 향했던 내게 도착한 마지막 정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요일 오후 집회까지만 해도, 내가 근처에서 강씨를 지켜보며 따로 주시를 했지만, 가두시위와 함께 헤어진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은근한 마음의 가책을 느낀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이 기사를 빨리 작성한 뒤에 강씨에게로 돌아가 함께 하면서 가족의 연락이나 도착을 기다리다가 오후에 다시 움직이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주중 가장 바쁜 화요일이기에 오늘 저녁 촛불문화제의 양상을 보다 신중하게 예측하면서 시민기자로서의 취재와 시민으로서의 참여, 그 절충을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청계광장을 떠나지 못한 그들

 

청계광장 한구석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일부 조합원들이 철야농성에 돌입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도 2명의 연좌농성자가 버티고 있다. 이들이 쉽게 일어설 것 같지는 않다. 나로서는 당연히 구면이다. 스님 한 분, 그리고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늘 집회에 참여했던 그분, 이분들이 바로 2명의 연좌농성자들이다.

 

그 외에도 수십명의 시민들이 아직도 청계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갖 정보와 또다시 경찰로부터 엄습될 불안감 속으로 다시 노출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집회를 생중계하던 진중권씨가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 전주에서 분신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병렬씨의 위독 등이 시민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 것 같아 적지 않은 집회 참가자들이 다시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중국으로 떠났다. 한승수 총리는 "불법시위 엄정대처"를 외쳐댄다. 과연 시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청계광장, #광우병 쇠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