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5월 24일) 지역에서 이웃사촌으로 친근하게 지내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모처럼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서로들 바쁘게 지내다보니 요즘은 자주 얼굴보기도 어려웠는데, 운전 중에 갑자기 받은 전화였지만 반가웠습니다.
그 형님은 '내일(5월 25일) 낮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무슨 일로 그러느냐며 대꾸했습니다. 그 형님의 말인즉슨, 자신이 다니고 있는 일산의 '동녘교회'(담임목사-변경수)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으니 함께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하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 이현주 목사님에 대해 듣고 있고, 알고 있던 생각은 '보통의' 개신교 교회 목사들과는 사뭇 다른 신앙적 관점, 즉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관점이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은 감리교의 목사이자 동화작가, 번역문학가이기도 한 분입니다. 목사님은 '가는 곳이 곧 예배당'이라는 생각으로 건물 없는 교회를 실현하고 있는 길 위의 목자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거대화, 권력화를 반대하며 교회 건물이 따로 없이 매주 전국을 찾아다니며 산이나 들에서 뜻맞는 사람들과 예배를 드리는 열린예배를 실현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세속화된 교회를 변화시키고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는 공존의 지혜를 찾기 위해 주일마다 길 떠날 채비를 하며 '드림실험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 시대의 참 어른이자 길잡이 같은 분입니다.
나는 목사님이 쓰신 몇 권의 책과 매체의 기사를 통해서 잠시 잠깐 그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특히 그 분의 말씀 중에서 '예수와 장자, 노자, 공자, 부처님은 모두 다 같은 스승이다' 라고 말씀하신 다원주의적 신앙관은 나에게 깊은 충격과 감명을 주었습니다.
"서로가 가진 종교와 믿음의 대상, 기도의 대상은 다르지만, 그것은 사람이 입는 옷의 차이일 뿐이고, 바라는 것은 생명과 평화의 마음일 것이며, 기도하는 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공동체와 세상의 안녕과 평온입니다."나는 서둘러 교회로 향하며 속으로 목사님과의 기쁘고 반가운 만남을 떠올렸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예배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사람들 틈을 헤집고 정 가운데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당 안 바닥에 등받이 의자를 놓고서 옹기종기 가지런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현 주목사님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즐겁고, 신나는 '콘서트7080'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기타와 장구소리에 맞춰 흥겹게 찬송이 울려 퍼지고 또 그 장단에 맞춰 박수와 노랫소리가 한바탕 이어졌습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찬송가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흥겹게 울려퍼지는 동안 멀뚱하니 어색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동녘교회 담임목사이신 변경수 목사님의 소개로 이현주 목사님이 십자가를 등지고 나타나셨습니다. 목사님은 작고 낮은 탁자 하나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자마자 예수이야기를 펼쳐 놓기 시작했습니다.
"장구는 스스로 장구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장구 없이 장구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장구가 있고, 사람만 있다고 소리가 날 수 있습니까?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장구도, 사람도, 장구채도, 공기도, 장구를 가르친 사람도, 장구를 치는 사람을 낳은 사람도, 장구를 만든 사람도, 장구를 판 사람도 있어야만 소리가 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사물과 현상과 세계를 아우르는 것을 이른바 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우주를 헤아리고 설명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마치 고승이나 신앙적 이치에 통달한 성찰자처럼 던져지는 질문과 답이었습니다. 교인들을 비롯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 치의 피곤한 동요 없이 눈과 귀를 열어 목사님의 예수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목사님이 펼쳐 놓으시는 많은 이야기 보따리들이 정수리를 적시는 시원한 냉수처럼 머리를 타고 가슴으로 흘러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동의와 공감의 뜻으로 가끔씩 아멘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한 동안 목사님은 이야기를 계속하시다가 갑자기 '특송'을 하나 해야겠다고 생뚱맞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노래 곡목은 '퐁당퐁당'이라는 동요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들 목사님의 예상치 못한 노련한 개그(?)에 깔깔대는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의 선창에 따라 다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주어라~." 노래가 끝난 후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물에 던지면 물결은 동그랗게 만들어져 멀리멀리 퍼져 나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나의 행동과 말이 어디론가 퍼져나가 나와 다른 존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동과 말이 의로운 일을 행하고, 생명평화를 중시하며, 용서와 사랑으로 실천된다면 그것으로 인한 아름다운 영향은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새겨 들으면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과 종교를 떠나서 우리의 삶이, 우리사회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항상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 만인에게 평화롭기를, 정의롭기를, 생명평화를 중시하는 가치롭고, 조화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가능합니까? 아니오, 내가 바뀌면 가능합니다." 그리고서 목사님은 유명한 <니이버의 세 가지 기도>를 소개하셨습니다.
"첫째,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내게로 다가오면 고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둘째, 내가 할 수 있음에도 주저할 때면 용기를 주십시오. 셋째, 첫번 째와 두번 째를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나는 목사님의 예수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삶과 우리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는 찰라 어느 순간 목사님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목사님은 덮수룩한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시며 인자한 미소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셨습니다. 나의 시선과 목사님의 시선이 예배당 한 가운데 허공에서 만나 교차하며 그 분의 말씀대로 아름다운 상호작용을 하고 말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5월 25일 일산 '동녘교회'에서 있었던 이현주 목사의 예수이야기 말씀잔치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