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꽂이에서 옛날 책을 펼쳤다가 반가운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빛바랜 친구의 편지와 함께 끼워져 있던 그것은 다름 아닌 10여 년 전 월급명세서였다.
'아니 이게 언제 적 것인가?'
연도를 보니 1995년 3월의 월급이었다. 월급명세서는 매월 월급이 나오기 하루 전쯤 우리들에게 나뉘어 졌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 월급명세서를 받으면 한 번 쓰윽 훑어 본 다음 아무데나 던져뒀다가 폐지정리 할 때 그냥 대중없이 버렸던 것 같다.
그랬는데, 오늘 발견한 것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이라 용케 살아 남았나보았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땐 왜 그렇게 성의 없이 살았는지. 하긴 그때는 나름 실용주의자(?)라 '일단 통장에 돈이 들어왔으면 되는 거지, 눈 여겨 본 다고 만원 한 장 더 붙는 것도 아니고'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버렸던 것 같다.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살아남은 이 한 장이 너무 소중해, 신문기사 오려서 정리하는 공책에 특별히 모셨다.(웃음) 아들 녀석이 한 번만 더 약 올리면 "봐라! 엄마도 월급 타던 시절이 있었다"하면서 당당하게 말해야지.
10년 동안 모은 남편의 월급명세서
내 월급 명세서는 그렇게 천대를 했으면서도 남편의 월급 명세서는 지난 10년 동안 한 장도 버리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 두었다. 참으로 나 답지 않은 꼼꼼함을 보인 것인데 아마 계속 그렇게 벌어 오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담이고. 계속 모은 이유는 이다음에 자식들에게 교육 삼아 한번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명세서 속에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고 하고….
물론 꼬박꼬박 모으기는 해도 구체적 숫자를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남편은 달랐다. 한 번씩 꺼내 볼 때마다 "아이 고오, 내 피 같은 돈, 도대체 세금을 왜 이리 많이 떼 가는 것이야. 의료 보험료는 왜 자꾸 오르는 것이야"하면서 열받아 했다.
"기부는 못해도 세금은 내야지 그렇게 아깝나?""니도 나가 돈 벌어봐라. 안 아까운강? 월급쟁이는 이래 뜯기고 저래 뜯기고….""그래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세금은 세발의 피야.""선진국은 많이 거둬도 공평하게 거둘 것 아냐. 우리나라는 불공평하니 짜증난다는 거지."'그래도 요즘은 많이 공평해 지고 있잖아'하려다 슬그머니 말꼬리를 닫는다. 왜냐하면, 이 '왕소금'씨는 세금만 들먹이면 월급쟁이인 자신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드러내기에.(웃음) 아무튼, 우연히 발견한 옛날 월급명세서는 과거의 나에 대한 '존재증명서'이자 그 시절을 추억해 주기에 무척 반가웠다.
"지금 매달 월급 타시는 분들, 월급명세서 버리지 마시고 소중히 모으세요. 그러면 나중에 추억이 될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