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은 깨진 기왓장에 불법과 관련된 글과 그림을 날카로운 칼로 아로새기는 스님이 있다. 경기도 시흥시 불각사에 있는 이여공 스님이 그 분이다. 27일(화) 오후에 만난 여공스님의 손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부처님의 손이 아니라 손마디 곳곳에 군살이 단단히 박힌 현장 노동자의 투박한 그 손이다.
여공 스님은 '내 마음의 절'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은 자그마한 불각사에서 오늘도 깨진 기왓장에 글과 글씨를 새기고 있다. 칼을 놀리는 솜씨도 예사롭지가 않다. 아무리 단단하고 초라한 기왓장도 스님의 칼이 닿으면 그대로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 난다. 누군가에게서 버려져 초라하게 깨진, 오래 묵은 기왓장을 부처님으로 만드는 여공 스님.
탱화 부처님을 모신 불각사 안방에 들어서자 벽 곳곳이 온통 깨진 기왓장에 새긴 글과 그림들로 가득하다. 깨진 기왓장이 곧 부처님이요, 깨진 기왓장에 새겨진 글과 그림이 곧 부처님이다. 저만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차를 끓이고 있는 여공 스님의 모습도 부처님 그 자체이다.
사실, 글쓴이가 여공 스님을 알게 된 것은 한 달여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어느 스님 서예 전시회장에서 여공 스님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여공 스님은 지금으로부터 17여 전부터 글쓴이를 알고 있었다 했다. 글쓴이가 '한국문학예술대학' 사무국장을 할 때 그 학교의 학생이었다 했다.
"시방삼세 두두물물이 다 부처님이라면 깨진 기와 한 장도 부처님입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순두부 같은 꽃잎 하나가 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장엄법문입니다. 이끼 낀 기와 조각 하나가 마음 닦기를 발원하고 나선 칼끝 장엄법문의 야단법석. 오시는 분은 오실 것이요, 가시는 분은 가실 것이니 온들 간들 상관치 않겠지만 오며 가며 차 우릴 물이라도 한 그릇 인연 짓는다면 그도 부처 되는 일. 향기로운 떡도 없고 곤한 잠자리도 없고 있는 것은 오직 기왓장 살 속 깊이 박힌 뜨건 상처뿐이므로 오신다면 부디 그대도 이 좋은 꽃봄의 <나무 꽃님불>이로고!"그 여공 스님이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 있는 불각사 미술관에서 이름도 생소한 '와편전각전'이라는 독특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27일(화)부터 오는 6월 10일(화)까지 보름 동안, 밤낮 열리는 제5회 '깨진 기와 한 장 전'이 그것.
이번 전시회에는 '깨달음이란 움직임, 곧 흔들리지 않음이요, 흔들림이란 곧 괴로움에 빠져 있다'란 뜻이 담긴 '각즉부동', '차 먹으러 오시오'란 뜻이 담긴 '끽다래', '차를 먹고 선(고요)에 들다'란 뜻이 담긴 '명선', 불가에서 하는 진언을 새긴 '옴마니반메훔', '잘 되었다' 등 모두 30점의 와편전각이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버려져 깨진, 오래 묵은 기와에 글과 글씨를 새겨 여러 가지 자연색을 꼼꼼하게 박아 넣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모래, 개펄, 흙 등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깨진 기와가 서로 다른 기와막굴에서 만들어졌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깨진 기와 하나 하나에서 지역별 특성까지 느낄 수 있다.
무엇이든 쉬이 사고, 쉬이 버리는 천민자본주의 시대. 깨진 기와 속에 들어앉아 있는 부처님과 부처님 법어, 여러 고승들의 법문이 멍에처럼 콕콕 박혀 있는 와편전각전. 이번 전시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버려진 것들의 되살림, 버려진 세월의 되살림, 버려진 모든 것들의 되살림이란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여공 스님은 "왜 하필이면 깨지고 버려진, 오래 묵은 기와조각에 글과 글씨를 새기느냐?"는 글쓴이의 물음에 벽에 걸린 와편전각으로 고개를 돌리며 빙긋 웃는다. 단숨에 모든 것을 알려 하지 말고 오래 오래 와편전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에서 답이 나온다는 투다. 이는 눈앞의 사물만 바라보며 흔들리지 말고 그 속내를 깊숙이 들여다보라는 것.
이번 전시회장에서 만난 한 불자는 "여공 스님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불문에 든 수행자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며 "일련의 불경귀절들과 고승대덕스님들의 게송, 그리고 우리가 가슴 깊이 품고 음미하고 스승 삼아도 좋을만한 귀절들과 그림들에서 스님의 수행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남한 곳곳에 버려진 기와조각에 작품을 새겨 넣어 북한 전시회를 하고 싶다. 여건이 더 주어진다면 북한 곳곳에 버려진 기와 조각에도 작품을 새겨 넣어 남한 전시회를 하고 싶다. 이것이 제 방식의 남북화해이자 남북통일에 일조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와편전각가이자 시인인 이여공 스님은 196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6년 <불교문예>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중앙승가대학에 재학 중인 스님은 '내 마음의 절' 불각사에서 부처님 법의 칼을 들고 문자 반야를 비롯한 불법과 관련된 글과 그림을 깨진 기왓장에 새겨 넣고 있다.
다음은 여공스님과의 일문일답.
- 기왓장에 새긴 글을 와각이라 하지 않고, 굳이 와편각이라고 하는 까닭은?"와편각(瓦片刻)이란 말을 쓰는 것은 깨진 기와조각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기 때문이다. 풀숲에 감춰져 있는 퇴락한 절집 곳곳에 세월의 흔적처럼 버려져 있는 오래된 기와조각, 그것도 깨진 기와조각에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 스님들의 게송을 새기기 시작하면서 '와편각'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 하필 왜 깨진 기와조각만 고집하는가?"수많은 새김질 소재 중 깨진 기와조각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그 깨진 기와조각이 오랜 세월 우리네 영욕의 절집 안 내력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깨진 기와조각들은 '버려진' 것들이다. 저는 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절 집안 뒤켠에 버려진 것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처님과 불법의 장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오래 생각했다.
특히 오래 된, 깨진 기와는 그 질감이 불교적이기도 하고 혹은 전생의 기억까지 들춰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깨진 기와에 불교예술이 담겨도 시방삼세 부처님 법을 훼손할 염려가 없다고 여겼다. 저는 어떤 재료와 도구로 만들어지든지 그 내용과 형식이 부처님 법의 장엄이라는 명분에 합당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설령 도둑의 칼이라 해도 그 칼이 불법에 쓰일 수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 스님이 절집에서 칼을 들고 있다? 일반인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더불어 서각과 전각, 와편각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와편각을 하는가?"뭐가 이상한가? 칼이란 강도가 들었을 때는 강도의 칼이 되고, 부처님이 들었을 때는 법의 칼이 되는 것이다. 제게 있어 '글자를 새겼으므로 서각이다, 도구가 다르니 전각이다'는 말은 무위롭다. 무언가를 새기는 방법과 도구의 모양만 가지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예단하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자비로운 부처세상이 되는 데 하등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본다.
와편각은 이미 기법을 초월한 그 무엇이다. 와편각은 서각이네 전각이네 하는 세속의 분별을 이미 떠나 있다. 저는 오로지 부처님 법을 장엄하는 방편의 하나로 와편각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문화포교사로서의 전법활동을 위한 법(法)의 칼로 기능하는 일에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행위이다."
- 하루 중 어느 때 와편각을 하는가? "특별히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없다. 어느 땐가 사라질 기와조각을 찾아 들고 그 기와조각을 닦아 햇빛에 말려놓으면 깨진 조각 하나하나가 숱한 설법을 하는 것 같았다. 글을 읽다가 가슴 미어지게 벅차오를 때면 깨진 기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같았다. 그때 무릎을 치면서 좋아라 환희심이 온 몸을 휘감으면 거기에 그 빛을 새기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철사를 갈아 새기기도 하면서, 묵은 마음과 게으른 영혼, 온갖 쓰린 것들을 가는 마음으로 피나게 새겼다. 그렇게 기와 조각에 부처님 말씀을 새기기 시작하면 기와가 다시 부처님 법 가득한 장엄법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 깨진 기와조각에 새기는 글과 그림은 어떤 것들인가?"달마를 새기고, 조사께서 동쪽으로 온 까닭을 묻는 숱한 납자들의 의심을 담아 혜가도 새기고, 도신 홍인 임제, 벽암록 육조단경 등 법을 설하는 말씀들도 새기고, 아함 법구경 등도 새긴다. 그렇게 피나도록 새기고 난 뒤 꽃이 개화하듯 하는 게송을 새기면 그 속살에서 곰팡이꽃 같은 작은 꽃들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 단단한 기와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기가 무척 힘들 것 같은데? "저의 새기기는 버려진 보잘 것 없는 와편에게 보내는 미소이다. 사실 와편각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와를 갈아 부처를 새기는 일은 문자 이전의 니르바나(열반, 피안)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일이다. 깨진 기와조각에 부처를 새기는 일, 이 일은 제 공부의 방편이기도 하고, 대중에게는 꽃 들자 미소 짓는 이심전심의 한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