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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5월 27일)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것도 현직 교사의 신분으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학교장이 교원평가와 관련하여 경찰서에 진정을 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고는 소위 '담임평가'를 합니다. 학년별로 12명의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평가해 우수교사에게는 금일봉을 줍니다. 보통은 졸업식장에서 우수교사 표창을 하는데, 올해는 입학식장에서 새내기들을 모아놓고 표창을 하였습니다.

 

교원평가는 장점보다는 단점, 곧 부작용과 위화감 등 많은 역효과를 초래하니, 하지 말든지 굳이 하려거든 공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평가항목이 적절해야 하고, 평가 과정과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객관성은 최대한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수교사로 표창받은 사람도 당당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냉소가 아닌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납부금 지도상황이 평가항목?

 

그런데 ○고의 '담임평가 계획안'은 '성실성·책임감·협동심…' 등 다분히 추상적입니다. 또한, 행정실장이 '납부금 지도상황'이라는 항목으로 교사를 평가하는가 하면, 연구부장의 담임평가 항목에는 '상록실(성적우수자 자습실) 학생 지도'가 있습니다. 생활지도부장의 평가 항목에는 '헌혈 학생수', 상담부장의 평가 항목에는 '학급학생 봉사활동 시간 총계', 학년부장의 평가 항목에는 '방과후학교 및 야간자율학습 신청인원'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교원평가는 문제가 많으니 하지 말든지 하려거든 제대로 된 평가를 하자고 건의하였으나, 최아무개 교감은 끝내 건의를 무시하고 담임평가를 강행하였습니다.

 

교감은 인성평가라는 잣대로 담임교사들을 평가하여 1등에서 12등까지 순위를 매겼고(○고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알려진 하아무개 교사가 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12등을 한 것은 이 평가가 얼마나 자의적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등록금 납부 업무는 분명히 행정실 소관임에도 행정실장이 그것을 근거로 담임교사들을 평가했다.

 

지난해 교사와 학생들의 요구로 조아무개 교장이 '0교시, 방과후학교, 야간자율학습'은 자율적으로(희망자 위주로) 하도록 학교 방침을 세웠는데, 모순되게도 '방과후학교 및 자율학습 참가인원수'를 담임평가에 반영하였습니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입니다. 교감 및 교장은 누구보다 교육적이어야 하고 사표가 될 만큼 모범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육주체들이 믿고 따를 것입니다.

 

최아무개 교감은 작년에 시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출제부터 난이도 조정 및 객관성, 공정성을 기하도록 교사들을 다그쳤습니다. 또한, 시험문제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교감이 정작 담임평가는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게 한 것입니다. 

 

만약 ○고의 담임평가와 같은 항목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면, 또한 그 평가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과연 수용할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까요?

 

학교장이 담임평가표를 공개했다고 경찰서에 진정을 내다! 

 

문아무개 교사가 교무실에서 복사하다가 우연히 얻게 된 '담임평가결과표'를 근거로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평가했느냐'고 문의하려 하자, 최아무개 교감은 마치 공개되면 큰일 날 문건이 공개된 것처럼 문 교사와 제가 가지고 있던 유인물을 완력으로 빼앗아 문서 세단기에 넣고 파쇄하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보였습니다.

 

또한, 생활지도부실로 가서 고아무개 교사가 가지고 있던 평가표까지 가져갔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박아무개 교장도 교무실에서 일어난 소동의 책임이 저를 비롯한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있다면서 앞으로 이렇게 인화를 깨는 행동을 하면 법인인사위원회에 징계하도록 회부하겠다고 겁박하였습니다.

 

교무회의가 끝나고 조용히 이야기하려 했었으나 가지고 있던 문건을 일방적으로 빼앗겼을 뿐인데, 소동의 책임을 평교사에게 전가하며 징계 운운하는 것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교감 및 교장은 이렇게 교사 길들이기식 교원평가 강행도 모자라, 평가결과표를 유출(?)한 사람을 색출하겠다며 전교조 소속 두 교사를 교장실에 불러놓고 진상 조사까지 벌였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경찰서에 진정까지 냈습니다. 

 

그리하여 어제 저와 문아무개 교사가 경찰서에 출두해 담임평가결과표 취득 과정, 공개 여부 등에 대해 자세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로서 교육자적 양심으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한 죄밖에 없는데, 또한 우연히 취득한 평가표를 보고 어떤 기준과 원칙에 의해 이렇게 평가했느냐고 문의하려고 한 죄밖에 없는데, 경찰서에 출두하는 상황까지 빚어져 참으로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러웠습니다. 

 

전교조 교권국의 해석에 의하면 ○고의 담임평가표는 기밀 문건도 법적으로 정당한 서류도 아닌 ○고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문건이며, 학교 밖으로 유출한 것도 아니고 평가 대상인 동료교사들과 나누어 본 것에 불과하기에 무혐의 처리될 것이라 했습니다.   

 

관할 교육청인 서울시교육청에도 ○고의 교원평가가 교육청이 지향하는 평가와 부합하느냐고 질의하였더니 "사립학교의 경우 교육공무원 평정업무 처리요령을 준용하여 교원평정업무를 실시하도록 안내한 바 있으며, 귀교 담임평가의 경우, 교원 평정업무와는 별도로 법인 자체에서 담임평가 업무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교사길들이기 평가... 교육의 질은 점점 떨어질 것

 

결국 ○고의 담임평가는 교육청의 지침과 무관하게, 교원평가라는 미명 아래 교사 길들이기식 평가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서울시 강서·양천지역 사립학교들을 대상으로 이런 평가를 하는 학교가 있는가를 조사하였지만, 오늘까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서울시교육청은 ○고의 담임평가가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평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이러한 잘못된 평가를 시정하라는 권고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등록금 납부 지도가 담임교사의 업무인지, 행정실장이 과연 담임교사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교감이 인성평가라는 추상적 항목으로 담임교사들을 평가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의에도 답변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관할 교육청이 이렇게 불공정한 교원평가에 눈 감으면 눈 감을수록 점점 교원평가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교사 길들이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교원들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입니다. 사기 진작은 외면한 채 오로지 경쟁과 평가, 그것도 불공정한 경쟁과 평가로 몰아간다면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고 분회에서 교원평가와 관련하여 서울시 교육청에 질의한 민원 내용

 

ㅇ고 학생들이 0교시 조기등교, 8교시 및 야자를 반강제로 시킨다 하여 교육청에 민원이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ㅇ고의 경우, 학교장 방침은 말로는 8시까지 등교해도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3학년의 경우, 7시 20분, 1~2학년의 경우 7시 40분까지 오지 않으면, 담임교사들로부터 폭언 및 체벌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이를 알고 있는지요? 

 

또한 학기초에 8교시 방학후학교를 거의 다 신청하게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자 2차, 3차부터는 다소 강제성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반에 따라서는 여전히 듣고 싶지 않은 강좌를 돈내고, 억지로, 반강제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요?

 

역시 야간자율학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교사에 따라 반강제로 시키는 반이 많아 불만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작년에 실시된 담임평가 때문이라고 봅니다. 담임평가에서 0교시 및 8교시, 야자 참가 인원수를 평가항목에 넣어서 평가를 하였고,  그 평가를 근거로 신담임 배정도 하였고, 3월 3일 입학식장에서 1위 교사에게 우수교사 표창까지 했습니다.

 

 현실이 이러니 많은 담임교사들이 그 평가를 의식해서 0교시, 8교시, 야자를 반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육청에서는 이런 현실을 아시는지요? 이밖에도 교감이 담임교사들을 인성평가라는 항목으로 평가하여 12등까지 서열을 매겼습니다. 심지어 행정실에서 교사들을 평가했습니다. 이런 담임평가가 제대로 된, 공정성이 담보된 평가라고 보시는지요? 서울시교육청과 교과부가 추구하는 교원평가가 ㅇ고처럼 이렇게 교사 길들이기인지요?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이고 아주 악의적인 담임평가에 대해 선생님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학교측에서는 내부문서를 공개했다며 경찰서에 두 명의 선생님을 진정서까지 낸 상태입니다. 세상에 이런 학교가 또 있을까요?  

 

ㅇ고의 교원평가가 잘못된 평가라면 판단되면, 당장 그만 두게 지도해 주시고, 또한 0교시, 8교시, 야간자율학습을 정말 순수하게 희망자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 많이 망설였지만, 그러나 교육자적 양심으로 이것은 정말 아니다 싶어 대한민국에 이런 교원평가가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기사화합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서울방송 등의 매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원 평가, #담임평가, #평가, #교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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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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