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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28일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가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강령적 성격이라면 6·15 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실천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임 전 장관은 이날 흥사단 통일포럼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말했는데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선언이 마치 별개인 것처럼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을 반박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1990~93년 남북고위급회담에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남북기본합의서' 탄생의 산파 노릇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구성하는 문장 자체가 그분의 작품"(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임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바로 그것'이라고 갈파했다"고 소개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 상대방을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남북 화해를 위해 상대방 체제의 인정 존중, 내정 불간섭 ▲남북 불가침을 위해 무력 불사용 및 불침략, 분쟁문제의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교류 협력 실현, 자유왕래와 접촉,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임 전 장관은 "이는 노태우 정부가 '북한 붕괴 임박론'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해 포용정책을 채택하고, '선 북핵문제 해결'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병행하여 해결한다는 '병행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한 뒤 6·15나 10·4 선언은 '병행론'의 산물이고 남북기본합의서는 '선 핵문제 해결론'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엉뚱한 주장이 나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부터 이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다.

 

임 전 장관은 "'10·4선언'은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이를 적극 구현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협력사업들에 합의한 것"이라며 "6·15와 10.4선언을 인정해야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직 최고당국자가 직접 협상하여 서명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새 정부는 아직도 '창조적 실용'이라던가 '비핵 개방 3000'이라는 대선용 구호만 되풀이하면서 종합적인 국가전략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미국도 포기한 네오콘의 '비핵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접근방법을 답습하고 있다"며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조정기간이라고는 하나 한반도의 현실은 긴 시간의 방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정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임 전 장관의 강연 내용 전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

 

한반도 냉전 종식에 큰 걸림돌이 되어온 북핵문제와 미-북 적대관계 해소문제는 최근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으나 남북관계는 새 정부 출범 이래 경색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근 평양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으로 연결하여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연 '6.15남북공동선언'과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기로 한 '10.4선언'을 서울의 새 정부가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묵살하려는 것으로 보고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갈파한바 있다. 김 대통령이 실천을 강조한 반면, 이 대통령은 실천문제를 담은 남북 정상의 합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신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바로 실천에 있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남과 북은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국가명칭을 합의문서에 표기하고 양측 총리의 이름으로 서명, 채택함으로써 서로 상대방을 공식으로 인정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먼저 남과 북이 서로 누구인가, 어떤 관계인가를 규정하고 있다. 즉 국제사회에서는 남과 북이 각각 주권국가이지만,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남북이 화해하고 교류협력하며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북 화해를 위해 상대방 체제의 인정 존중, 내정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파괴·전복 행위 금지,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그리고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평화상태로 전환하기로 하고 그 때까지 정전협정을 준수하기로 했다.

 

남북 불가침을 위해서는 무력 불사용 및 불침략, 분쟁문제의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불가침의 경계선은 정전협정 규정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활해온 구역으로 하고, 북가침의 보장을 위해 군사적 신뢰조성조치와 군비감축을 실현하기로 했다.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경제 과학 기술 문화 예술 보건 체육 보도 등 여러 분야의 교류 협럭 실현, 자유왕래와 접촉,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 끊어진 철도 도로 연결 및 해로·항로 개설, 우편 전기통신 교류 등 을 실현하기로 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은 우리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이를 가능케 한 사실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문제인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노태우 정부는 북한의 ‘붕괴 임박론’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한 대북시각을 견지했다. 이 무렵 대두한 ‘북한 붕괴 임박론’, 즉 “북한도 루마니아처럼 1-2년 내에 갑자기 붕괴될 것”이라는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과 일부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주장을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이를 받아 드리지 않았다. 북한도 ‘중국식 개방 개혁 모델’을 본받아 ‘점진적 체제 변환’의 과정을 밟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 한 것이다.

 

둘째. 노태우 정부는 포용정책을 채택했다. 1988년 ‘7·7대통령특별선언’을 통해 전쟁까지 치렀던 ‘적’을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포용하고, 북한과의 교류와 왕래 그리고 교역의 길을 트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또한 남과 북의 평화공존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형성, 단계적으로 평화통일을 지향하자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고, 남북대화를 위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남북기본합의서'의 생산을 가능케 한 것이다.

 

셋째,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노태우 정부는 '선 핵문제 해결'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병행하여 해결한다는 '병행전략'을 채택했다. 이 무렵 북한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보수언론은 '先 핵문제 해결, 後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여론을 조성하며 '핵연계전략'을 주장했으나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문제를 남북관계 개선과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 해결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거하기로 한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도 북한의 국제 핵사찰 수용 및 남북대화 진전과 관련하여 이를 중지하기로 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했다면 남북기본합의서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의 사정을 호기로 포착한 노태우 정부의 변화론적 대북시각에 입각한 포용정책,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의 병행추진전략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의 본격적인 이행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어 실천으로 옮겨질 때까지 8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국제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한이 유엔에 공동 가입했으나, 미국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지속했다. 이에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핵문제를 협상카드로 사용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갔다. 한편 1993년초에 집권한 문민정부는 ‘핵 연계전략’을 채택하는 한편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남북관계는 냉각되어 버린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하여 변화의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북핵문제해결을 위해서 경수로 건설 지원 등 이미 합의된 미북제네바합의 이행을 지원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려는 병행전략을 추진했다. 또한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의 대북정책 공조를 통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해 나가는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의 두 정상은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의 대전제가 되는 통일방안과 관련하여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따라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남과 북이 다방면으로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사실상의 통일상황’부터 실현하여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긴 과정을 관리하고, 촉진시키기 위한 협조기구로서 ‘남북연합’(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 호칭)의 형성이 필요하다는데도 합의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지난 반세기동안 고질화된 상호불신이다. 두 지도자는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산가족 상봉, 끊어진 철도 도로의 연결, 남쪽의 자본·기술과 북쪽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산업공단의 건설 등 경제협력과 사회 문화 분야 등 다방면의 교류, 그리고 당국간 대화 추진 등을 당장에 실천 가능한 당면과제로 합의했다. 이렇게 하여 지난 8년간 5대 중점사업을 추진해 오게 된 것이다.

 

작년 10월 제2차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이를 적극 구현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협력사업들에 합의했다. 경제협력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 군사분야에서의 협력과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도 병행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합의한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지난 8년간 한반도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6.15남북공동선언'의 의의를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6.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혀 주었다. 평화와 통일은 남이 가져다주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힘을 합쳐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 것이다.

 

둘째, 6.15공동선언은 지난 반세기의 불신과 대결을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 주었다. 분단 역사를 ‘6.15이전 시대’와 ‘6.15이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셋째로, 6.15공동선언은 합의사항의 실천을 통해 상호신뢰를 다져나갈 수 있게 했다. 지난날에도 남북 사이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좋은 합의들이 있었으나 실천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불신을 초래했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이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지면서 상호신뢰가 싹트게 되고,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긴장이 완화되게 된 것이다.

 

넷째로, 6.15공동선언은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던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고, 민족자존을 드높였다.

 

이제 우리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받들어 분단 고착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6자회담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남북 교류 협력은 봇물 터지듯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고, ‘남북연합’ 단계에로의 진입도 가능해 질 것이다.

 

6.15와 10.4선언을 인정해야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92년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가 탈냉전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여 정립한 강령적 성격을 띤 것이라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실천선언이다.

 

그리고 2007년 '10.4선언'은 5대중점사업 위주로 실천돼온 '6.15남북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사업들을 제시한 것이다. 이 세 합의서는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남북관계의 발전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이 16년 전에 발효된 정부 간 합의문서인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직 최고당국자가 직접 협상하여 서명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실천 의지와 방책을 담아 지난 8년 동안 실천해온 남북 최고당국자의 합의문서야말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해서도 안 될 것이다. 더구나 ‘경제 살리기’를 공약한 새 정부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 역행하는 정책을 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또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조속히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수용하는 입장부터 확실히 밝히고, 남북관계의 원상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집권한지 3개월이 지났으나 아직도 '창조적 실용'이라던가 '비핵 개방 3000'이라는 대선용 구호만 되풀이하면서 종합적인 국가전략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미북관계가 진척되고 있는데 이를 호기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미 미국도 포기한 네오콘의 '비핵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접근방법을 답습하며 역행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조정기간이라고는 하나 한반도의 현실은 긴 시간의 방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정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임동원#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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