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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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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알 수 없음'의 청소년 문학선이다. 짤막짤막한 일기, 가끔 자학에 빠지는 들쭉날쭉한 감정들을 거르지 않고 털어놓고 있다. 역자에 따르자면 이 책은 실제로 존재했던 열다섯 살짜리 소녀의 일기로 알려졌었다. 이후 허구라는 주장에 부딪치며, '만들어진 경고성 이야기'로 알려졌다고도 한다.

책의 주인공이 빠진 '이상한 나라'는 마약의 나라다. 대학교수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미국 소녀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탈선의 길을 걷는다. 그저 한 번쯤 탈선해보고 싶고, 친구와 조심스레 섹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소녀였다.

"언제나 거타의 맞춤법을 고쳐 주고 싶었고 옷을 잘 입고 자세를 고치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 거타와 친구로 지낸 것은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되려면 취미와 능력뿐 아니라 배경도 엇비슷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다." (32쪽)

마약 중독 소녀의 '썩어 문드러진 비참한 인생'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친구들의 초대를 받은 뒤 소녀의 인생은 갑자기 달라진다. LSD가 섞인 음료수를 마시고 100차원의 세계를 경험한 이후 소녀의 일기는 격해진다.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학교를 빼먹고 마약을 사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다 성매매에 엮이기도 한다.

'개 같고 썩어 문드러진, 우울하고 비참한 인생'(90쪽)이 드디어 소녀 앞에 펼쳐진 것이다. 소녀는 '상냥하고 순수하고 순진한 우리 부모님들은 나를 크고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인가'라며 조소한다.

소녀는 공급책을 찾아다니며 강간과 동성 섹스를 경험한다. 양아버지의 폭행 이후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마약에 몸을 파는 소년을 만나기도 한다. '빌어먹을 비까지 다시 오고', '여행객들과 사기꾼들과 거지들이 싫다고 말했지만, 내일은 나도 거기에 껴서 음식과 약을 구할 돈을 좀 구걸해야겠다'(122쪽)고 날짜도 없는 일기를 갈겨 쓴다.

방황에서 벗어난 누군가는 운이 좋았을 뿐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세 번 퇴학당한 홀든과,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정신병동에 갇혔던 위노나 라이더에 비견할 만하다. 이런 '청소년 방황기'는 가끔 금서가 되지만, 많은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리며 퍼져 나간다. TV와 교과서에 등장하는 예쁘고 반듯한 '흠 없는 영혼'들에 들어맞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헤매던 소녀는 자신을 지원할 따뜻한 가족이 있기에, 이른바 '정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재활 치료를 받고 학교에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이겨낸다. 반듯한 모범 청년과 데이트도 하고, 대학 체험도 한다. 원조 앨리스도 모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듯이, 이 책의 주인공도 마약에서 벗어난다.

꽤 안전한 '경고성' 이야기로 읽힐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진짜 의미는 다른 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버리고 도망 나온 그곳에 다른 누군가는 영영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이와 나의 차이는 단순히 '행운'의 유무일 뿐. 그러니 고개 돌리지 말고 돌아보는 게 어떨까.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

작자미상 지음, 이다희 옮김, 비룡소(2008)


태그:#청소년, #마약,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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