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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수를 예방한다고, 하천을 깨끗이 한다고, 또 관개에 보탬이 된다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휜 철사 바루듯 구절양장의 물길을 곧게 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직강공사’라던 그 치수 사업이 강마다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획일적이며, 심지어 반(反)환경적인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산준령을 굽이쳐 흐르는 강원도 어느 두메의 ‘냇물’이 아니라면, 더 이상 나름대로의 특별한 멋을 뽐내는 강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강폭과 위치만 다를 뿐, 강의 모양도 흐름도 심지어 주변 경관도 비슷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펜션과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어수선해지긴 했어도, 번잡한 서울에 닿기 전까지 남한강은 여전히 산과 들을 이웃하면서 호젓하고 정감어린 풍광을 보여줍니다. 금빛 모래톱이 곳곳에 남아있고, 강물에 발 담근 채 서있는 물풀이 울창하며, 강이 내려다뵈는 산 중턱에서는 세월의 더께를 가득 인 고즈넉한 절터도 쉬이 만날 수 있습니다.

 

남한강을 따라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충주 청룡사터도 그런 곳들 중 하나입니다. 강에서 약간 비껴나 있을 뿐 아니라, 짙푸른 숲이 절터를 터널처럼 품고 있어 퍽 아늑한 곳입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듯 때 묻지 않은 곳이 남아있음이 외려 낯설 정도입니다.

 

풍진 세월을 오롯이 견뎌낸 석물 몇 기를 제외하면, 과거 꽤나 번창했던 절이었음을 보여주는 건 모두 사라졌습니다. 국보 제197호로 지정된 정혜원융탑과 정혜원융탑비(보물 제658호), 사자석등(보물 제656호) 등 남은 석물들은 모두 내로라는 걸작들이지만, 이 빈 절터의 ‘보물’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청룡사터를 한 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그것은 바로 절터에 이르는 호젓한 산길입니다. 호젓하다는 것. 안온하다, 고즈넉하다처럼 ‘말’로 설명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단어이지만, 채 10분 거리도 안 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다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황토빛 흙길이지만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 때문에 초록빛을 띠고, 짙은 흙내음조차 풀내음 되어 쌉쌀하게 코끝을 건드립니다.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와 숲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명상하듯 거닐기에 안성맞춤이라고나 할까요.

 

절터를 감싸고 도는 호젓한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 내려오니, 다시 남한강의 익숙한 풍광과 마주합니다. 마치 평화로운 피안을 경험하고 꿈에서 깨어 현실로 내려온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절터를 벗어나 충주로 넘어가는 길에 맨 먼저 본 광경은 바로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육중한 다리 공사 현장이었습니다. 웬만한 산 높이의 V자형 교각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물살을 거칠게 소용돌이치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굴착기의 굉음에 강물 흐르는 소리가 묻히고, 교각과 상판의 콘크리트로 인해 푸른 강물이 잿빛으로 보입니다. 절터를 벗어난 지 불과 십여 분 만에 청룡사터의 호젓한 느낌은 씻은 듯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대운하가 아니어도 지금 남한강이 떠안고 있는 ‘스트레스’는 결코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300미터 남짓한 낮은 구릉일지언정 청계산이 살짝 숨겨주고 있는 청룡사터는 그래도 ‘복 받은’ 폐사지입니다. 강원도 횡성에서 흘러드는 남한강 지류인 섬강가 흥법사터의 경우는 절터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말 그대로 폐허입니다.

 

발아래 섬강을 두고 따스한 햇볕이 드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해도, 이미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돼버린 까닭에 여느 폐사지에서의 분위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석탑(보물 제464호) 한 기와 몸돌을 잃은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가 남남처럼 멀찍이 떨어져 서있을 뿐 주변은 온통 비닐하우스와 밭입니다.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오랫동안 버려지다 보니 그리 된 것일 테지만, 한때는 많은 걸출한 석조 문화재를 보유한 첫손 꼽히는 절터였던 모양입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있던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이 서울로 옮겨지고,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과 탑비의 몸돌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절터는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일본으로부터 다시 되찾아오긴 했으나,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살기 좋은’ 서울에 남겨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절터 자체가 이미 대부분 깎이고 헐렸을 뿐만 아니라, 듣자니까 석물들이 놓인 공간을 제외한 상당 부분이 사유지라고 하니 본모습을 되찾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그토록 힘겹게 생명을 이어온 이곳이 어쩌면 대운하 공사의 첫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남한강의 본류가 아닌 지류에까지 콘크리트로 도배할까 싶다가도, 내륙 물류기지다, 관광지다 해서 마구잡이 공사가 시작될 양이면 강과 바로 인접한 곳이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더욱이 절터의 상당 부분이 사유지인 이곳임에랴.

 

그리 된다면 흥법사터는 또 한 번의 폐사를 맞게 되는 셈이고, 사진 한 장, 글 한 줄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절다운 호젓함이 남은 청룡사터와는 달리 더 이상 망가질 게 없는 폐사지의 숨통을 아예 끊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대운하를 건설한다지만, ‘친환경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따지고 보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환경 중에서 가장 약하고 모자란 부분이 사라지지 않도록 먼저 배려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과 성장의 이름으로 들이대는 무시무시한 칼날이 맨 먼저 겨눌 곳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버려진’ 것들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섬강가 흥법사터에 더 정이 가고 애틋해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빈 절터뿐만 아니라 남한강 주변에는 호젓한 풍광을 뽐내는 곳이 참 많습니다. 이는 곧 대운하로 인해 사라질 운명이라는 뜻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남한강#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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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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