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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공동체학교>(윤구병 지음, 보리 펴냄)는 철학 교수에서 농부로 돌아가 변산공동체학교를 꾸려 온 윤구병 선생이 쓴 교육 이야기 '왜 대안학교인가'를 1부로, 공동체학교 아이들의 이모저모를 '놀다 죽자!'라는 2부로 기록한  변산공동체학교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다.

 

변산을 다녀오고 책을 읽었다고 하니, 그곳 변산공동체학교 환경이 어떠냐고 묻는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려고 이곳저곳을 가보는 중인데 알려진 정보와 가서 본 환경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 지인이 내게 전화를 한 이유였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부모일수록 대안교육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요즘은 정규 교육과정을 불신해 대안교육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대안교육 자체가 더 나은 교육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며 과정일 뿐 완벽함을 갖춘 완성도 높은 체제는 아닌 것 같다.

 

푸짐, 꽃님, 아루, 보리. 그렇게 아이들 넷을 변산공동체학교에 보낸 변산 토박이 시인 박형

진씨는 제도권 교육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푸짐이와 꽃닢이는 초등학교까지, 아루는 중학교까지만  제도권 학교에 다녔고, 보리는 아예 제도권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선택에 불만을 품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아빠 말 듣기를 잘했다"고 말하지만 아주 미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나름대로 불만도 있다. 그것은 아무리 나은 대안일지라도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째거나 박형진씨는 아이 넷을 대안교육을 시킨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딸 셋과 아들 하나, 아이들 넷을 '변산공동체학교'에 보냈다. 이렇게 말하면 변산공동체학교가 대단한 학교인 줄 알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아이까지 버려 가면서 죽을 둥 살 둥 아이를 경쟁에 내몰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을 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부족한 것들 속에서 학부모와 학생과 선생이 스스로 교육하고 교육 받는 과정과 그 자유를 선택했을 뿐이다."

 

저런 이해의 바탕이 있었기에 박형진씨는 주저 없이 아이들 넷을 <변산공동체학교>에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저이와 같은 부모의 안목에 더해 기꺼이 찬성하는 자녀를 둔 이들이라면 어느 대안학교를 선택하든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유대인의 가장 귀중한 경전의 하나인 <탈무드>의 뒷장에는 빈 여백의 종이가 붙어 있다고 한다. <탈무드>를 읽는 사람들마다 자신의 의견과 주석을 덧붙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탈무드>는 세대를 이어가며 끝없이 새로운 생각들이 덧붙여지는, 다시 말해 유대인의 삶이 지속되는 한 여전히 한 장은 미완으로 남는 그런 책인 것이다.

 

최근 출간된 <변산공동체학교> 역시 지금까지의 행적을 돌아보는 것일 뿐 완결된 형태의

책이 아니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 즉 대안적 삶을 이어가는 학생들과 선생들 모두에 의해

한장 한장 새로운 역사가 덧붙여지는 진행형의 기록이 바로 <변산공동체학교>다. <변산공동체학교>는 늘 길 위에 서서 길을 걷고 있는 진행형이다.

 

삶터, 배움터, 일터는 원래 하나였다

 

삶터, 배움터, 일터가 동떨어지지 않은 곳이 바로 < 변산공동체학교>다.  삶터가 곧 배움터요, 일터이며, 일과 놀이, 일과 배움, 놀이와 배움이 하나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지닌 삶의 형태를 따라 사는 곳, 그래서 모든 삶이 앎으로 전환되는 곳이 바로 그곳 '변산공동체

학교'다.

사실 전통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삶터는 곧 배움터요, 일터며 놀이터이기도 했다. 여자들이 모여 길쌈을 하고 천연 물감으로 고운 물을 들여 바느질을 하며 서로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 앎의 영역을 넓혔다. 아이들은 들판과 산 강가와 바닷가를 뛰놀며 생존의 지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워간다. 어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수받은 조상들의 지혜에 자신들이 터득한 지혜를 덧붙여 그 자손들에게 전해준다. 삶의 모든 것이 앎의 실천 과정이요, 놀이는 지혜를 더해가며 일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었다.

 

<변산공동체학교>의 교육목표는 바로 전통 농경사회처럼 삶 속에 육화된 지혜를 통해 서

로가 서로를 성장 시키며 더불어 더 나은 삶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현대 문질문명과 개인주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아이들과 어른들이라 한순간에 '더불어 살기'나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며 살기'라는 목표를 이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대학입학을 목표로 어떤 명령에도 무조건 복종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만 존재하는 제도권 교육과는 달리 학부모와 선생이 피터지게 싸우기도 하고, 학생이 선

생에게 불만이나 부당함을 지적하며 핏대를 높이기도 하는 모습만으로도 대안교육에서 더 나은 희망을 본 것은 확실하다.

 

이제 몇 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살 기숙사를 자기들 손으로 지으려고 흙벽돌을 찍고 있

다. 어른에 의해 강제되지 않은 그 일에 푹 빠져 노동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특히 <변산공동체학교> 출신인 푸짐과 꽃님의 '환상버리기'라는  인터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윤구병 성생님이 늘 말하는 교육이론에 따르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멋지게 거부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윤구병 선생님한테 교육 받은 대로 인터뷰를 거부하고 싶어

요."

 

인터뷰이가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변산공동체학교>에서 지내면서 좋은 점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해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한 마디 덧붙이더란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친근한 선생님들 덕분에 이렇게 자유롭게 자랐다. 이렇게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도 다 그 덕분이지 않을까, 그렇게 쓰세요."

 

인터뷰를 마친 이는 당황해서 <변산공동체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수업 내용에 만족해서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버렸다고 고백했다. 난 오히려 그들의 솔직함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들을 보니 언젠가는 <변산공동체학교>의 교육 목표인 제 앞가림하기와 더불어 살기가 꼭 제자리를 잡을 것 같다는 희망을.

덧붙이는 글 | <변산공동체학교>는 운구병 선생님 글과 김미선님의 인터뷰 내용들로 이루어진 변산공동체학교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려보는 책으로 보리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변산에서는 도시 저소즉층 학생들을 받아 무상으로 중, 고등학교 과정의 정보교육,  천연염색, 집짓기, 농사 , 효소 만들기 등의 노작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변산공동체학교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윤구병.김미선 지음, 보리(2008)


#변산공동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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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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