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리도 명쾌할 수가 없다. 뭐 하나 시원하지 않은 나날 속에 자연만큼 시원한 게 없다. 자연이 이리 내 곁에 날마다 버티고 있어 준다는 게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엊그제만 해도 아침에 문을 열면 산비둘기와 딱따구리의 노래가 지천이었다.

 

그런데 연초록이 진초록으로 변해갈 즈음 뻐꾸기 소리가 더 낭랑하다. 그간 조용하던 장끼도 꽥꽥 소리를 질러 자기 존재를 알린다. 그뿐이 아니다. 저녁에는 어느 새 개구리 울부짖음도 날아드는 날 파리들만큼이나 요란스레 지지거린다.

 

 

동물들만 그렇게 자기의 시간 자리를 찾아드는 게 아니다. 식물들은 더 명쾌하다. 지난겨울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나신으로 서서도 부끄럼 모르던 나뭇가지들이 낫낫한 연초록의 옷을 하나 둘 걸치더니 이젠 완연한 초록빛으로 휘휘 검쳐 입었다. 봄이 가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그들의 옷에서 벌써 안다.

 

패션쇼는 쇼 윈도우나 무대에서 모델만 하는 게 아니다. 온 대지 위에서 삼라만상이 한다. 무대 연출가는 하나님, 무대를 누비는 모델은 나무와 풀들, 박수를 치는 군중은 나와 너. 이렇게 겨울은 문풍지를 뚫고 줄행랑을 치는가 했더니 봄에게, 봄은 손을 내미는가 했더니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시비 거는 이 없고, 자리싸움하는 이 없다. 아무 주장이나 물욕이 없을 듯한 우리 어르신들도 세상에서 배워 익숙한 터라 교회에 와서 자리싸움하는데, 실은 이 싸움 때문에 얼마 전에는 자리마다 그들의 사진과 이름표를 붙였다. 자연은 사람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자연은 결코 자리싸움하거나 질투하는 법이 없다.

 

 

봄에 나물을 캐러 동산에 들었을 때, 옹기종기 모인 취나물의 어린 순을 뜯는 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그 생명이 아름다워서 말이다. 그런데 요샌 산에 들기가 무섭다. 혹 뱀이라도 밟으면,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요샌 내 허리만큼 자란 풀숲을 헤쳐야만 전진할 수 있기에 혹시 뱀이라도 밟을까 겁부터 난다. 나물의 종류도 달라졌다. 고사리, 취나물과 땅 두릅이 주를 이루던 산나물은 참나물을 첨가하게 되더니 요샌 나물들보다 나뭇잎 채취를 주로 한다. 뽕나무 잎이 성인병에 그리 좋단다. 그래서 요샌 파란 오디를 달고 있는 뽕잎과 항암제라는 꿀풀을 조심스레 채취한다.

 

 

초봄에 산에 들 때는 산 벚꽃, 초롱꽃, 둥굴레 꽃, 조개나물 꽃이 예쁘더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팝나무, 이팝나무, 그리고는 아카시아, 다시 요샌 때죽나무와 찔레가 하얀 꽃잎과 향기로 나를 유혹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은 제 시간에 찾아와 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다.

 

이런 나무들이, 풀들이, 새들이, 내 곁에 있기에 나도 있을 수 있음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산다. 우리는 내남직. 그러면서도 아귀다툼이다. 경쟁사회니 어쩔 수 없다고 이유까지 거창하게 걸고 말이다. 그가 있음에 내가 있다는 것을 지금 신록이 파란 옷을 입고 있을 때 잠깐이라도 멈춰 생각하면 어떨까. 그리 함으로 삶에의 여유로운 행복에 잠시라도 잠길 수 있다면, 꽤 해봄직한 일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갓피플 칼럼에도 같이 올라갑니다.


태그:#신록, #산, #나무, #풀, #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