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손에 피를 뚝뚝 흘리며 교무실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습니다.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 유리창이 깨지는 바람에 파편에 긁힌 모양입니다. 교실과 복도 바닥 군데군데에 핏자국이 있고, 손도 온통 피로 범벅이었습니다.
우선 피가 나는 곳을 수건으로 압박했습니다. 세게 눌러도 크게 아프지 않다고 하니 유리조각이 박힌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상처 부위를 수건으로 계속 누른 채 팔을 위로 들게 하고 곧장 보건실을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잔뜩 놀란 표정으로 교무실을 찾은 그 아이는 처음엔 상처의 피를 음료라도 되는 양 빨아먹기도 하고 흐르는 피를 휴지로 열심히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상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던 겁니다.
답답한 마음에 왜 상처 부위를 압박하는지, 벌을 서듯 팔을 치켜들어야 하는지 그 아이에게 일일이 설명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보건실에 가면 핏자국을 닦아내고 소독을 하게 될 테고, 그러자면 꿰매어야 할 상처인지, 아니면 간단한 지혈만으로도 해결되는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응급처치라는 '단어'에만 익숙할 뿐, 실제로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기 십상입니다. 언제 배웠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다른 곳에서 사고가 터지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시늉하기에 바쁜 현실을 줄곧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번 주 초 학교마다 난데없는 지진 대비 훈련이 있었습니다. 지진 대비라는 말이 생소할 만큼 학교에 근무한 지 만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이라며 마냥 신기해했고, 실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고 안내방송을 틀어봐야 '수업 한 시간 제꼈다'고 키득거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지진이 나면 왜 출입문을 열고,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겨야 하는지, 왜 승강기를 타서는 안 되고, 가급적 빨리 건물 밖으로 벗어나야 하는지 등은 걸음마 아이 때부터 이미 알아야 하는 '본능' 같은 것이어야 하지만, 다 큰 중학생들조차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훈련은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낸 중국 사천성 대지진의 영향으로 '급조'된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나라 역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일 테지만, 아이들조차 사고가 터지면 한때 반짝하는 전시성 행사일 뿐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실정이니, 교육 효과 운운하는 건 쑥스럽습니다.
학교에서 '가뭄에 콩 나듯' 행해지는 소방 훈련과 안전 교육, 응급 환자 발생 대비 훈련 등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상급 기관의 지시에 따라 실시했다고 보고하는 용도일 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교육인가를 아이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급한 상황에서 사소한 응급처치 기술 하나가 자신과 가족, 친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외려 아이들에게는 시험 문제 몇 개 더 맞히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단언컨대, 예측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응급처치 요령은 국, 영, 수 등 입시 교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교육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순례하며 배우는 '허깨비 같은' 공부의 굴레를 벗어나,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진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교육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대학 입시에 재난에 따른 대응과 응급처치에 대한 과목을 필수로 개설할 수는 없다 해도, 봉사활동 의무 이수시간처럼 적어도 정기적인 훈련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속에 반영하는 것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진이 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들의 가방 속에 가득한 입시 대비용 참고서와 문제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뭉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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