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초등학생이 자정 무렵까지 광화문 앞에 앉아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초등학생 한 초등학생이 자정 무렵까지 광화문 앞에 앉아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미국산 미친 소 수입 기준을 30개월 이하로 낮추겠다구요. 이거야말로 성난 민심을 적당히 달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죠. 우리도 일본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기준을 20개월 이하로 낮추어야 합니다. 소머리나 소뼈, 내장은 절대 안 됩니다. 그걸 수입하면 어디 겁이 나서 탕 종류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시인 오우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째를 맞은 3일(화) 밤 7시. 마침내 한국작가회의(옛,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시인 작가 100여 명이 펜 대신 깃발과 촛불을 손에 들고 거리에 나섰다. 이들 시인 작가들이 미국산 미친 소 전면 개방 반대 촛불 시위에 공식적으로 직접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 소속 소설가 김영현(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이원섭 유영갑 유시연 이재웅(사무처장), 시인 홍일선(한국문학평화포럼 상임 부회장) 나종영 김창규 오우열(무당시인) 이승철 이재무 이소리 박광배 김이하 등 100여 명은 서울시청 앞 광장과 경찰청, 광화문 앞에서 새벽까지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대포를 맞아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번 시인 작가들의 촛불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80년대 서슬 퍼런 군부독재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던 50대 이상의 문인들이 많이 참가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민족'(민족문학작가회의)이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한국작가회의)이란 이름을 택하면서 정체성 논란을 빚고 있던 한국작가회의의 위상도 새롭게 세워지는 듯했다.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는 그동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1980년대 문인들이 대부분 참석치 않아 집행부가 애를 먹었다. 작가회의 이재웅 사무처장은 "아무리 좋은 행사를 기획해도 선배 문인들이 참석치 않아 서운했다. 하지만 선배 문인들은 행사에 참석치도 않으면서 시대적 화두에 따른 발빠른 대책 부재, 정체성 등을 지적하곤 했다"고 말했다. 

성난 민심을 무엇으로 달래랴
▲ 성난 민심 성난 민심을 무엇으로 달래랴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서울시청 앞에서 경찰청 쪽으로 거리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 학생들
▲ 비가 내려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서울시청 앞에서 경찰청 쪽으로 거리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 학생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비가 주룩주룩 내린 이날, 문인들의 촛불시위는 저녁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문인들은 비에 젖고 있는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 전농, 참여연대, 민노당 등 여러 시민단체와 시민, 학생 등과 함께  "이명박은 물러가라, 미국산 미친 소 30개월 이하도 안 된다. 20개월 이하로 낮춰라" 등의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이날 밤 9시부터 시작된 거리행진에 나선 문인들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한국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이란 깃발을 들고 여러 시민단체와 시민, 학생들과 함께 경찰청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의 구호는 대부분 "이명박 물러가라, 조중동은 찌라시다, 미국산 미친 소, 재협상하라" 등이었다.    

하지만 밤 10시쯤 경찰청 앞에 도착하자 구호가 갑자기 "물대포를 맞아봐라"로 통일되기 시작했다. 이들 문인들도 전경들이 입구를 빈틈없이 틀어막고 있는 경찰청을 향해  "물대포를 맞아봐라, 어청수는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경찰의 과잉진압은 없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나종영 시인은 "오십 대 중반인 우리가 다시 거리에 나서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런 난국에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한번 뭉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참으로 한심한 정권이다.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치솟는 유가와 생필품값, 미친 소 수입, 대운하,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도덕성 결핍 등 이명박 정부는 총체적인 모순덩어리"라고 지적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 100여명도 촛불시위에 참가했다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젊은작가포럼 깃발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 100여명도 촛불시위에 참가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비에 꺼진 여고생의 촛불에 불을 밝혀주고 있는 시민
▲ 꺼진 촛불 다시 살리세요 비에 꺼진 여고생의 촛불에 불을 밝혀주고 있는 시민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경찰청 앞에서 '물대포를 맞아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 물대포를 맞아봐라 경찰청 앞에서 '물대포를 맞아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다시 광화문으로 걸어가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 촛불집회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다시 광화문으로 걸어가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청주에서 올라온 김창규 시인은  "오늘부터 집회 구호가 이명박 탄핵에서 이명박 퇴진으로 바뀌었다"며 "불과 취임 100일 만에 정권 퇴진 구호가 시민들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로선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로서는 이를 막을 뾰쪽한 대책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밤 10시30분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자 문인들은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천천히, 천천히, 흩어지지 말고 한곳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다시 광화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들 문인들이 단 한 명도 대열에서 탈락하거나 은근슬쩍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밤 11시 30분 쯤, 광화문 광장 앞에 도착한 문인들은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청와대 쪽을 향해 "이명박은 물러가라, 미친 소 20개월 이하로 낮춰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에 따른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어야 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전경 버스가 빼곡하게 막고 있었다. 

밤 11시40분쯤, 광화문 앞에서 한창 집회를 하고 있던 집회 참가자 행렬이 갑자기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웬 차 한 대가 집회 참가자 사이를 가로지르며 광화문 앞으로 천천히 달려오는 것이었다. 대체 어떤 차량이기에 성난 시위대를 무대포로 가로질러 들어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시위대가 그 차의 앞길을 터주는 것일까.

늦은 시각, 오마이뉴스가 촛불집회를 생중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취재차량 늦은 시각, 오마이뉴스가 촛불집회를 생중계하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이 차는 오늘 취재를 위한 오마이뉴스 차량입니다. 잠시 길을 터줍시다."
"그럼 그렇지, 역시 오마이뉴스구먼."
"이제야 진정한 언론이 나타났구먼."
"야, 그 대단한 조중동은 뭐해. 코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찌라시 언론이지."
"시민의 힘이 무섭기는 무서운 줄 아나 보지."

청색 천에 '오마이뉴스-오마이TV'란 이름을 내걸고 집회 참가자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온 차는 광화문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섰다. 차 지붕 사이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오마이뉴스 여기자 한 명이 집회장 곳곳을 샅샅히 취재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를 생중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밤 12시 30분쯤, 시인 효림 스님과 '인터넷저널' 대표를 맡고 있는 유종순 시인도 광화문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효림 스님과 유종순 시인은 늦은 밤이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작가회의 깃발이 펄럭이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집회에 나온 문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따라 외쳤다.    

새벽 2시쯤이 되자 문인들은 집회장에서 빠져나와 서울시청 앞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예정된 '촛불 시위 거리 간담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이들 문인들은 이른 새벽에 열린 거리 간담회에서 ▲ 촛불 시위 정국과 관련 릴레이 기고 ▲ 작가로서의 구체적 방안 모색 ▲ 향후 일정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뒤 새벽 3시쯤 귀가했다.

초등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비를 맞으며 태극기를 들고 가고 있다
▲ 태극기를 든 아이 초등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비를 맞으며 태극기를 들고 가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작가 이원섭은 "아니, 10여 년 전에 모든 운동(?)을 다해버린 줄 알았는데, 또다시 운동을 해야 해. 대체 나라꼴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숭례문까지 불타고 말이야"라며 "지금부터 우리 문인들이 촛불시위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시와 소설을 여러 지면에 릴레이식으로 발표해야 할 때"라고 못박았다.

작가 김영현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들이 힘겹게 성취한 민주주주의가 10년 전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 시대의 화두를 짊어지고 가는 문인으로서 칼보다 더 강한 펜을 더 힘차게 움켜쥐고 이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시인은 저항시의 촛불을, 소설가는 저항소설의 촛불을 다시 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깃발과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작가회의 소속 시인 작가들. 이들 문인들이 지난 1970~80년대처럼 저항과 분노의 펜을 다시 드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들 문인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릴레이식으로 촛불시위에 참가해 이명박 시대의 총체적 모순을 지난 1970~80년대처럼 온몸으로 깰 수 있을 것인가.

시인은 시를 쓰는 펜을 꾹꾹 눌러,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펜을 꾹꾹 눌러, 수필가는 수필을 쓰는 펜을 꾹꾹 눌러, 동화작가는 동화를 쓰는 펜을 꾹꾹 눌러, 문학평론가는 문학평론을 쓰는 펜을 꾹꾹 눌러,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모순을 가열차게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이 문학의 촛불이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모순에 허덕이는 이 땅 곳곳을 환하게 밝힐 수 있지 않겠는가. 


태그:#촛불집회, #광화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