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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농원 전경.
 에덴농원 전경.
ⓒ 황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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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무더위가 다가오는 6월이다. 뜨거워지는 햇볕을 품고 살랑대는 바람 따라 만개한 꽃들이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더군다나 주변에서 가족끼리, 연인끼리 산과 들과 강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마음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떠나고자 해도 시간과 돈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걸림돌 앞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푸념하는 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숨겨진 보물섬을 발견할 수 있다. 전국 방방곳곳에 숨겨진 보물지도 속 낙원 중의 하나가 바로 횡성군 갑천면 매일 2리에 위치한 '에덴농원'이다.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여유와 낭만, 그리고 덤으로 추억까지 만들 수 있는 에덴농원으로 떠나보자.

에덴농원은 강원도 횡성읍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즐비해 있다. 먼저 횡성을 처음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토종 국산 한우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한가로이 여물을 먹고 있는 소들은 관광객들을 군침돌게 하며, 이러한 유혹은 주변에 늘어선 음식점들로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게 한다.

또한 무성한 수풀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봄과 여름꽃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들은 사진기만 같다대면 어디든 자신을 명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만큼 절경이다. 이처럼 일상을 떠나온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싱그러운 자연과의 조우에 들뜨는 마음을 진정키 어려울 것이다.

자연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다보면 에덴농원이라는 표지와 함께 좁은 샛길이 등장한다. 주변에는 산 밖에 없는 이곳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기대를 한껏 품고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5분정도 걸었을까,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에덴농원'이라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관광객들을 인도한다.

어른 키의 두 배는 될법한 거대함에 놀람과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갈림길 앞에서 나름의 궁리를 하고 있을 무렵 아래쪽에서 잘 차려입은 노신사가 다가왔다. 그 역시 관광객이나 주변에 사는 주민들일까 하는 의문도 잠시, 노신사가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 곳 에덴농장의 주인올시다. 이렇게 찾아줘 고마워요." 에덴농원의 주인이라 밝힌 박순호(76)씨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낯선 이를 반긴다. 마치 가족이나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던 양 넉넉한 웃음으로 반기는 박 씨는 관광객들에게 마음의 안도를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면 과장일까?

인사를 나누자 박 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왼쪽 길로 내려가면 에덴농원이고 앞쪽에 보이는 것은 작지만 제가 손수 만든 공원입니다. '계영정'이라 이름 붙였는데 잠시라도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맘 편히 쉬다 갈 공간이 필요할 듯 싶어 만들게 됐습니다." 계영정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돌을 탑처럼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여러 개 있었고 그 위에는 다양한 사물의 모양을 닮은 수석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여느 자연사 박물관 못지않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곳에 쌓아 올린 돌만해도 트럭 20대 정도의 분량입니다. 사위가 경북 영주에서 선별해 직접 가지고 온 것이죠." 그의 말에서 이곳에 들인 노력과 애정을 알 수 있었다. 박씨의 안내를 따라 길을 걸으니 널찍한 잔디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다양한 식물들과 조각상들이 비치돼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원 곳곳에 걸려있는 시가 새겨진 목조물과 대리석이었다. "다 제가 쓴 시랍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이곳에 정착해서 문예창작활동에 힘쓰고 있죠. 특히 이 '계영정'이라는 시는 이 공원을 위해 쓴 것입니다"라고 설명한  씨가 시가 새겨진 돌을 가리켰다.

계영정

아무리 부어도
넘치는 법 없어
버릴 것이 없고
아무리 퍼내써도
항상 채워주는
넉넉한 어미품이어라.

푸른 꿈 뒤쫓던 길손
해름에 계영정에 올라
놀 이는 들녘 바라보니
영욕의 한 세월은
장마 뒤의 구름인 양
산들 바람결에
흩이듯 걷히어라.


에덴농원 주인인 박순호 씨 가족의 모습.
 에덴농원 주인인 박순호 씨 가족의 모습.
ⓒ 황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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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는 이들이 편히 쉬다 가길 바라는 주인내의 마음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름다운 절경이 시 구절에 절절히 배어 있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볼거리에 시간가는 줄 몰라 발길을 농원으로 돌리려다 보니 들판위로 또 하나의 계단이 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끝에 서 있는 두 마리의 거북이가 심상치 않은 곳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박씨와 함께 계단을 오르니 아래와 같이 넓은 들판과 함께 그 끝에는 아담한 정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들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정자에 들어서니 눈앞으로 수풀과 냇물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정자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읊조리니 마치 내가 신선이나 되는 것 같았다. 이곳이야말로 세속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상낙원이 아닐까란 생각을 뒤로 하고 에덴농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영정을 나서 농원으로 가는 길목마다 꽃망울을 터뜨린 꽃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낯선 이의 방문을 반겨주었다. 주인 내외가 기거한다는 본관에 다다르니 박 씨가 그랬던 것처럼 안주인인 전인순(72) 씨가 반갑게 맞아 준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며 차가운 음료수와 함께 내어져 온 수박을 먹으니 마치 피서라도 온 듯 한 기분에 절로 흥이 났다.

에덴농원은 교회나 각종 단체들의 수련회 장소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여름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만 그를 제외하면 평소에 에덴농원을 찾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에덴농원은 찾는 이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8개의 큰 방을 비롯해 식당과 휴게실, 그리고 야외 수영장과 운동장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유수의 펜션 못지않은 편안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박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이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인 전씨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일러주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50년 넘게 함께 한 부부의 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며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니 박씨가 전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공직생활만 40년을 했어요. 정통부 행정서기관까지 지냈었지요. 그런데 아내가 15년 전에 단도암 판정을 받았어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이었죠.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그래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면 살 날이 조금은 늘 수 있다는 말에 서울 생활을 다 정리하고 횡성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시울이 약간 불거졌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 이 사람이 죽으면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해 서울과 이 사람 고향인 강릉의 중간쯤인 횡성에 자리를 잡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공기가 좋은지 이 사람이 안 죽고 여태껏 살아 있는 거예요." 박씨는 호탕하게 웃어보였지만 홀로 남겨두지 않고 여태껏 함께해준 전씨에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씨의 연고지는 횡성이 아니지만 자신의 평생 반려자를 살려준 은인 같은 곳이라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것이 계기라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막 결혼한 신혼부부 못지않은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웃음 짓게 만들었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이 전씨의 생을 지금까지 연명시킨 것 아니냐란 말에 전씨는 "지금은 병에서 완쾌돼 100살까지 거뜬할 것 같다"고 답해 웃음꽃을 피웠다.

박씨 내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손녀가 다가와 대화의 자리에 마주 앉았다. 작년에 서울에 살던 맏딸 내외가 이곳으로 내려와 자신들과 함께 살며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서울에 살고 있는데 바빠서 자주 못 봅니다. 하지만 사위가 아들을 대신해 줘 아쉬운 것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박씨. 온 가족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에 부러움마저 들었다.

박씨는 에덴농원을 꾸리며 상당한 양의 개인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관광객들이 들러 일상의 시름을 잊고 즐겁게 놀다 가는 모습들을 보면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관광객들에게 약간의 이용료를 받고는 있지만 에덴농원에서 얻어가는 추억에 비하면 극히 적은 액수인 것이다. 박씨 내외에게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돈 보다 더 큰 보상이라고 한다. 오히려 먼 길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저 고맙다는 박씨에게는 한 때 고위 공직에 몸담았던 공무원의 모습이 아닌 소박한 농사꾼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늘 옆에 있고 언제나 함께 하리란 생각에 가족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평상시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늘 채워져 있던 자리가 비워지게 되면 후회와 아쉬움에 슬퍼하기 마련이다. 함께 있을 때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훗날 후회치 않도록 잠시 여유를 갖고 일상을 떠나 가족의 정(情)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미리 계획한 목적지가 없다면 주저 말고 에덴농원으로 떠나보자.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낸 고향의 맛과 멋을 물씬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태그:#에덴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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