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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터뷰 대상 : 이루리(꿈을 이룬다는 예명, 나이 올해 서른),
                   글 쓰는 이의 여동생
        특이점 : 올해 암 투병 삼 년째.

 동생의 책도장
 동생의 책도장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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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꿈에 조금 집착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다몽(多夢)'이란 이름을 짓더니, 요즘은 '이루리'란 이름을 지었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현재 꿈은 무엇인가.
"나의 꿈은 마흔 살까지 사는 것이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 내게는 꿈이다."

- 만약 마흔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꿈이 있는가.
"첫째, 유학을 가고 싶다. 일본이나 동남아에 가서 전통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

둘째,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에 있는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 또 일본 여행 가이드 북을 새로 써보고 싶다. 지금까지 나온 가이드 북들은 알려진 곳만 계속 반복해서 소개하고 있다. 나는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일본 사람들만 아는 좋은 곳들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 후지산을 가려고 하면 우리 나라 가이드북에선 그 정보를 찾기가 조금 힘들다. 일본 대표 산인데도 말이다.

셋째, 요리를 배워서 세상을 떠돌고 싶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 세상을 떠돌고 싶다고? 진짜 너무 꿈같은 이야기 같다. 진짜 마흔까지 산다면 가능하긴 한가.
"가능 못할 건 없다. 꿈은 크고 많이 꿀수록 좋다. 그 중에 하나는 이루어질 테니깐. 요리를 배우면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계속 여행할 경비를 모을 수 있다.  그 외에는 세상을 떠돌 능력이 없다. 로또가 되지 않는 이상. 돈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마흔까지 사는 거, 그게 내 꿈이에요

- 그럼 지금까지의 꿈은 무엇이었나.
"세상을 방황하는 것."

- 왜? 무엇이 좋아서?
"그냥 많은 다른 곳을 보고 싶어서. 그냥 궁금하니깐.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깐."

- 어렸을 때 꿈은?
"초등학교 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회사원, 그리고 글 쓰는 사람."

- 글 쓰는 사람? 왜?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그냥 겉멋이 좀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냥 직장인. 남들처럼 변호사니, 과학자니 하는 큰 꿈이 없었다. 그냥 돈 벌면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 사회인이 되고 나선 미용기술도 배우고, 캐드도 배우고 이것저것 배운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 최고봉은 공연예술학교를 다닌 것이었는데 어떤 것이었나?
"공연예술학교는 제일 많은 돈을 들여서 다녔다. 전반적인 공연 기획, 연출, 공연산업에 대해 공부했다."

- 그런데, 왜 그쪽으로 나가지 않았나.
"내가 여유만 있었으면, 한 달에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라도 받으면서 공연 쪽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돈도 없었고, 배도 고파서 적은 돈을 받으면서 그 쪽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 처음엔 왜 하고 싶었나?
"직장 다닐 때 처음 공연을 보고,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공연 기획 같은 걸 하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기획을 하려면 언어능력도 뛰어나야 했고, 학벌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리고 3년 전만 해도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획사들이 많지 않았다. 공연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획사들 말이다."

- 그럼 기획이 잘됐다거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공연은?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몇 년 전 공연계는 사람들이 프로정신이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그냥 대충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3년전 만 해도 있었던 것 같다. 무대장치도 완벽하지 않았고, 배우들도 비싼 돈 주고 보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꼈다.

늦게까지 술 마시고 나쁜 컨디션으로 무대에 서고, 좋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그러면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은 공연을 거의 보지 않아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창 공연을 볼 때는 웬만한 연극, 뮤지컬은 다 봤다. 그 중에서 제일 처음 봤던 <오페라의 유령>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공연 보는 재미를 알았다."

팬질, 그게 어때서? 재미있잖아

 2003년 겨울 캣츠 공연을 보러 가기 전
 2003년 겨울 캣츠 공연을 보러 가기 전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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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아라시' 콘서트를 보러 일본 나고야를 갔다 왔는데, 그 얘기를 해 달라.
"아라시는 일본 자니스에 소속되어 있는 일본 20대 아이돌 그룹이다. 어느 날 심심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그나마 익숙했던 일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출연 배우 중 한 명이 아라시 멤버였다. 그리고 그 배우에 관련된 검색을 하다가 아라시를 알게 됐고, 팬클럽 카페를 가입하고 영상도 보다 보니, 애들이 재밌고, 생각하는 것도 바르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 아주 아주 힘들게 콘서트 티켓을 구해서 나고야까지 갔다 왔는데, 느낌은 어땠나.
"공연은 정말 좋았다. 무대 구성이 우리 나라보다 짜임새 있었다. 한때 무대 연출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무대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 가수들은 노래 중간 중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 공연은 진짜 철저한 퍼포먼스 위주여서 진짜 콘서트에 간 거 같았다. 그 이후 아라시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2007년 8월 나고야 아라시 콘서트장 앞에서
 2007년 8월 나고야 아라시 콘서트장 앞에서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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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른인데, 흔히들 말하는 '팬질'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 마디 해 달라.
"어느 잡지에서 나이가 들어서도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팬질도 하나의 취미로 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100퍼센트 동감했다. 취미는 자기가 즐기려고 하는 건데, 나이에 상관없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 들어서 팬질 하는 것에 대해 왜 안 좋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지금 하는 일은?
"백수. 정확히 말해서 난치병(위암) 투병 중."

- 3년 전에 병원에 갔을 때, 수술을 하고 나서도 병명을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으니깐.. 설마 자신이 암일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생각을 하겠나. 그것도 이십대 중반의 아이가."

- 그러면 무슨 병이라고 생각했나.
"바보 같겠지만, 식구들이 말한 대로 위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했다고 생각했다. 설마 암이어서 수술을 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 조금도 그런 생각 안해 봤나.
"암에 암자도 떠올려 본 적 없다."

- 그럼, 암이란 얘기를 듣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을 때는 어땠나.
"그때는 항암치료를 어떻게 받는 건지도 몰랐고, 항암치료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온몸에 붙어 있던 호스를 빼야 한다는 두려움과(호스를 빼낼 때의 통증은 정말 심하다), 그 호스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서 온몸이 아프니깐, 당장 그게 더 중요했지. 항암치료는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 암이란 게 큰 병이란 걸 몰랐나.
"알았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 1차 항암치료를 받고 생각이 달라졌나.
"뭐, 받을 만하네, 이 정도.  부작용도 많이 없었고. 진짜 심한 부작용, 구역질 같은 거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고 내리 잠만 자다 보니 퇴원하라고 했다."

빵 못 먹게 할 때 '아, 내가 암환자구나'

 병원에서 치료중인 동생
 병원에서 치료중인 동생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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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환자구나 처음 느낀 때는?
"언니가 맛없는 마늘 먹으라 하고, 나는 빵도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할 때,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 눈썹이 다 빠졌을 때 등이다."

- 암환자여서 힘든 때는?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못 먹을 때, 하고 싶은 것 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많이 제약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데 나는 할 수가 없다. 항상 마음만 먹지."

- 그리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다가 중단을 했는데, 그 이유는?
"그냥 받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으니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생각했으니깐."

- 암환자가 되고 나서 특별히 한 것은?
"삶은 마늘, 양파, 닝닝한 계란탕을 처음에 먹었다. 언니가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족욕, 관장, 풍욕을 했고, 녹즙을 매일 먹고, 생수를 항상 사다 먹었다. 상황버섯 달인 물도 먹었다. 이 중에서 관장이 좋았다. 관장을 하고 나면 참 많이 개운했다. 사람 몸에 참 많은 똥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했다. 그리고 아침에 눈 뜨면 아, 오늘도 살았구나, 생각했고 특별한 통증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사나 보다 했다."

- 재발했을 때 기분은?
"아, 때가 왔구나. 또 항암치료 받아야 하는구나. 그 당시 예감이 좋지 않아서 검사 결과가 좋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미세한 통증이 있었다."

- 왜 재발했다고 생각하나?
"그때 좀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짜증도 많이 났다. 일본어 스터디를 했는데 나름 마음의 짐이 되었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한테 상처도 받았고, 그렇게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수술하고 나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던 적이 없었는데, 작년 가을부터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

- 지금 몸 상태는.
"나도 모른다."

- 지금 예감은?
"당분간은 별 탈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주기적인 검사도 안하고 싶다. 일 년 동안 검사도 받지 않고 살아보고 싶다. 두 달에 한 번씩 검사 결과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싫다."

- 별 탈 없이 살수 있다는 근거는?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의외로 나는 그런 예감이 잘 들어맞는다."

암환자 죽는 이야기, 그만 우려먹으세요

- 어린, 젊은 암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즐겁게 살길. 스타 팬질을 해보시는 건 어떠신지. 의외로 즐거움을 많이 준다. 삶에 활력을 준다."

- 텔레비전에 암환자들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눈물 콧물 짜는 얘기는 싫다. 죽는 거 보여주는 것도 싫고. 누가 보면 암에 걸리면 다 죽는 줄 아는데, 암 병동 가보면 죽지 않고 살고 있는 암환자들이 정말 많다.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제발 보여 달라. 방송에서 이러니 자기가 암에 걸렸다 하면 다 죽는 줄만 안다. 그리고 암에 걸려도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기적이라고 하는데, 그건 기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올해 계획은?
"솔직히 돈만 있으면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고 싶다. 구체적으론, 일본어 능력시험 2급에 합격하고 싶다. 2급은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이다."

- 요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풍욕을 하고, 밥을 먹고 인터넷을 하고, 책도 읽고, 일본어 공부도 하고, 저녁 먹고, 티비 보고, 또 인터넷 하고. 또 일본어 책 한 번 꺼내보고. 그리고 잔다."

-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절, 순간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암에 걸리고 나서 1, 2년 동안. 그때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때는 내가 즐거운 것만 했으니깐.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됐고, 즐거운 것만 했으니깐."

스무살로 돌아가 국토순례하고 싶다

 늘 꿈을 향해 달리는 동생 캐릭터
 늘 꿈을 향해 달리는 동생 캐릭터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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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인생을 되돌리면, 어느 시점으로?
"고등학교 1학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 진짜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할지 안할지 모르지만,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서 내가 바라는 대학을 가고 싶다. 그리고 또 20살 때로도 가고 싶다. 일찍 세상을 보고 싶다. 그냥 여행도 많이 다니고.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게 어느 제약회사에서 하는 대학생 국토순례였는데, 대학을 가지 않아서 거기에 응모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게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사람들은 그러면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혼자서 국토 순례 하는 게 솔직히 어려울 거 같다." 

- 지금,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은?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면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것 같다."

- 그런 생각으로 재작년에 태국 갔다 왔지 않았나.
"그때는 머리카락도 자라고 가지고 있는 돈도 점점 없어지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간다는 게 무서웠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사실 도피한 거다. 그래도 가기 전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젠 돈 벌러 가야되겠구나. 다시 네팔에 다녀오면,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것 같다."

- 나란 어떤 사람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꿈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

-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행가고 싶어요."

-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를 믿고 일단 지켜봐주세요."

덧붙이는 글 | <가족인터뷰> 응모글입니다



#가족인터뷰#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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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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