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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찾은 류승완 감독.
 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찾은 류승완 감독.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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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낮 12시쯤 남대문쪽에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배낭을 멘 캐주얼 복장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다른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고시무효 전면재협상'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왜소한 체격에 동안, 수염을 약간 기른 멀리서 봐도 금방 류승완 감독인지 알 수 있었다.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으로 발을 옮긴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그의 새 영화가 8월 개봉 예정이다. 마무리 작업에 정신없을 시기이기도 하거니와 새 영화 개봉을 코앞에 두고 혼자 터벅터벅 이런 집회에 참석한다는 건 분명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류승완의 매력은 '가볍지 않은 유쾌함'일 것이다. 인터뷰 내내 꽤나 웃었지만 그러면서도 알맹이 빠진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매력은 부지런함인 것 같다. 새 영화 개봉으로 한참 바쁜 시기, 그는 사회 이슈는 물론이고 인터넷의 흐름과 네티즌의 의견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

인터뷰 시작 전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아 이런 식으로 인터뷰 엮이면 안 되는데"라고 웃었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그는 역시 달변이었다. 막힘이 없었다. 인터뷰를 끝내고는 스스로 "이거 경찰서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적절한 비유도 즉석에서 톡톡 터져나왔다. 쌍욕도 해댔고 한숨도 쉬었지만 2008년 5월과 6월의 대한민국이 '진심으로 감동스럽다'고 했다.

그가 걸어온 방면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청 쪽으로 접근할수록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울시청 앞에 줄지어 설치된 천막 앞에서 '시민 류승완'을 인터뷰했다.

- 남대문쪽에서 혼자 걸어오던데 정말 혼자 온 건가?
"그렇다. 그래도 이 많은 군중들 곳곳에 우리 스태프가 박혀 있을 것이다.(웃음) 정두홍 무술감독이 무술인 70명 데리고 온다고 했다.(웃음)

- 촛불문화제 참석은 오늘이 처음인가?
"죄송스럽게도 그렇다. 지난달 31일부터 6월 1일 있었던 일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프고 죄책감을 느꼈다.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나왔다. 죄송하다."

"이명박 대통령 정말 X맨 아닌가?... 우리 시민들 너무 멋있다"

- 류승완은 워낙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감독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어떤 생각이 본인을 이리로 이끌었는가?
"이명박 대통령 정말 X맨 아닌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고 있다. 삽으로 막을 걸 불도저로도 못 막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 시민들이 너무 멋있다. 10대들이 먼저 거리로 나와 구호를 외치고 이에 기성세대가 자극을 받아서 반성하고 다시 뜨거워지고. 이런 장면을 보면서 정말 감동했다."

- 인터넷 생중계 등을 통해 집회 현장을 본 적이 있나?
"당연히 봤다. 인터넷이나 신문을 통해 매일 접하고 있다. 집회 현장이 얼마나 유쾌한가. 내가 이런 감동과 유쾌함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절대 없다. 동영상을 보면 정말 놀라울 뿐이다. 디지털 게릴라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노트북 들고 조그만 카메라 붙여서 혼자 방송국을 차려 운영하는 시대다. 거대 언론을 상대로 광고 중단 운동까지 번져가고 있지 않나.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 이런데도 경찰이 쇠 박은 장갑으로 시위대를 패질 않나. 강경진압하고도 진심어린 사과도 없고 책임만 회피하고."

- 시청쪽으로 오면서 서울광장의 풍경을 봤을텐데? (인터뷰 당시 서울광장은 계속 북파공작원이 점거(?)하고 있었다)
"민영화 민영화하더니 이제 전경도 민영화하냐?(웃음)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어제 인터넷과 오늘 아침 신문을 봤는데 집회 장소도 바뀌었고 청와대에서 식사도 한 것으로 미뤄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정황상 그렇지 않은가. 이분들도 참 안 됐다. 정권이 이렇게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지..."

- 이번 사태를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이 그동안의 흐름과 전혀 다르다는 의견들이 많다.
"어찌 보면 그동안 선배들이 민주화 위해 싸웠던 것이 이런 자유로운 활동들로 꽃피는 게 아닌가 싶다.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힘을 국민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것이 밖으로 표출까지 되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국민은 이런 식으로 저력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특수효과상 어청수, 스턴트장비상 경찰, 코미디상은 2MB"

- 스크린쿼터 문제로 지난 정부 목소리를 높였던 영화인들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가 언급되는가?
"얼마전에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올해의 특수효과상 어청수, 올해의 스턴트장비상 대한민국 경찰, 올해의 코미디상 2MB(웃음).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솔직히 스크린쿼터 FTA 투쟁 이후 영화인들이 두려움이 있다. 깨지고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배신감만 느꼈다는 흐름이 있었다. 입장 표명이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생존의 문제다. 많은 영화인들이 꽤나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꼭 시민들이 알아줬음 한다."

- 오늘 생각해둔 별도의 일정이나 만나기로 한 영화인이 있는가?
"정두홍 정도나 만나겠지. 정두홍과는 붙어다니면 타깃이 될테니 찢어다니자고 했다. 그래야 시위대한테도 좋다고.(웃음)

- 8월에 영화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개봉하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나?
"부담? 오히려 죄스러운데. 나라꼴 이 모양인데 낄낄대고 자빠지는 영화나 만들고 있으니 솔직히 죄송스러울 뿐이다."

- 이후 다시 촛불문화제 일정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10일에는 다 나와야 한다. 10일날 무조건 나온다"

- 광화문, 시청을 누비는 시위대 중 류승완 감독 팬이 많을텐데, 한 말씀 해 달라.
"투덜거리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긴 한다. 그런데 그걸 잘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윗돌을 깨기는 어렵겠지만 뭔가를 보여줄때 세상이 움직일 수 있다.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영어 잘 해서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보다 옳고 그른 것이 뭔지를 판단하기 위해 몸소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거리에 있는 분들은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토익 점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배우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청와대에 한 마디.
"(한참 생각하더니 한숨) 아 답답해....글쎄 보청기를 갖다드려야 하나. 국가를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수준을 재단하고 스스로 답답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수 위정자들만의 역사로 그칠 것을 국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이 민주주의 만들어놨나. 섬기는 대통령이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을 모르나......근데 이제 내려오시면 안될까. 100일 잔치 하셨는데?(웃음)"


태그:#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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