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군대에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란 소설을 읽게 됐다. 지금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소소하게 따라잡는, 젊은이들이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소설들이 젊은이를 논할 때 오는 거리차를 당신도 느껴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세대차이'. '달콤한 나의 도시'는 최소 그런 거부감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가 그려지질 않았다.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영상이 떠올라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군인이라서 그랬나?

 

은수, 브라운관에서 최강희로 태어나다!

'책으로 볼 때 과연 은수는 어떻게 생겼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피사체가 잘 그려지지 않곤 했는데, 최강희라는 배우가 그 자리에 떡하니 있다.

 

독백으로 시작된 드라마,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쉴새없이 왔다갔다 하는 '달콤한 나의도시'는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가 중요할 것이다. '엄마는 뿔낳다'의 김혜자나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같은 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움이 이런 기법을 성공으로 이끌지만, 어설픈 배우가, 아니면 어설픈 상황극(상투적인 불륜이야기 등)으로 이런 시도를 했다가는 중간중간 어색함만 흐를 뿐이다. 그리고 시청자에겐 공감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은수는 영수(이선균 분)와의 선 자리에서 그 또래의 여성의 평범한 마음을 시청자에게 직설화법으로 던진다.

"멀쩡하게 생긴 남자여서 처음엔 솔깃했는데 반응이 없네요... 그래도 솔직히 차이고 싶진 않네요..."라고.

 

연하의 남자 태오(지현우 분)와의 만남을 가기전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녀의 말과 행동을 시청자가 지켜볼 수도 있다.

"이 팬티 참 귀여운데... 어머, 영화보러 가는데 왜 팬티를 신경쓴대..."라고.

 

아마도 어른들이 보시면 안될라나? 하지만 이런 평범한 캐릭터를 톡톡튀게 표현하는 중심엔 최강희가 있다. 31살을 연기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나이(?), 수줍은 듯한 잔잔한 미소, 그리고 이상하게 매치되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와 오버랩되는 순간까지. 그러고보니 정말 어울리네. 은수와 최강희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상, 브라운관에 담기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시절. 애독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이 매일매일 연재되는 기쁨이, 내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이 버젓이 연재된다는 사실이, 너무 짜릿해서 였으랴.

 

이런 짜릿함이 브라운관으로 무사히 옮겨졌을까? 일단은 성공인 듯 싶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도 얄미운 친구가 한 명은 꼭 있다던가, 내 아무리 잘났어도 회사 안에선 언제나 스마일 머슴이라던가, '결혼은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거다!'가 아닌 결혼은 못한다던가. 아니다. 모텔에서 맞은 아침, 머쓱한 남녀의 눈맞춤이 가장 공감갈수도.

 

말을 풀어놓고 보면 별로 어려울 것 없는데 브라운관에 이런 일상이 잘 그려지질 않는다. 통속적인 멜로물, 이해안되는 불륜물, 우연에 우연만 더해지고 기상천외함에 출생에 비밀이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가득한데 말이다.

 

참고로, 태오 같은 연하남도 영수 같은 썰렁한 맞선남도 현실세계엔 많다. 그리고 전기세 못내서 연체료 붙을까봐 나갈 때마다 보라고 은수가 현관문에 붙여논 고지서는 왜이리 내 얘기 같은지.

 

 

결론을 알아버리니,

달콤함 자체를 즐길 수 있네!

책을 통해 결론을 알아버렸다. 물론 그 결론이 책과 다를 순 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의 달콤함이 죽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느낀 그 현실감을 브라운관에 옮겨주는 최강희가 있고, 아기자기한 구성이 있다.

 

하지만 판타지가 너무 없다면 드라마의 재미도 없을 것. 일상적으로 걷는 골목이나 가볍게 술 한잔 하는 공간이 예쁘고 깔끔하다. 내 얘기도 좀 포장해보니까 일종의 판타지가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공유한 이야기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기에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조금 잘난 배우들과, 조금 멋진 풍경들이 더해져 달콤한 것만 같다.

 

앞으론 1, 2회에서 보여준 달콤한 이야기만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달콤쌉싸름 해질 것이고, 지지리 궁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담백하게 너와 나의 이야기를 전개해줄 것이다.

 

물론 책에서 전개된 바에 의하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CASTO, #달콤한 나의도시, #최강희, #정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