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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가끔 딴 사람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내가 찍는 사진이 초라하거나 뭔가 좀 모자라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 사진을 흉내내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 사진을 흉내내어 찍고 나면 뭔가 그럴싸한 사진을 얻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 사진을 얻지는 못한다. 도무지 내가 사진을 왜 찍나, 내가 잡은 사진감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진을 왜 찍으려 하는가? 내 사진이 남이 보기에 초라하면 어떻고 모자라면 어떤가?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할 뿐인데 말이다.

 

나는 멋들어진 사진도, 그럴싸한 사진도, 뭔가 좀 이야기가 있거나 재미난 사진도 못 찍는 사람이다. 그저 헌책방 사진을 찍을 뿐이며, 헌책방을 즐겨 찾아오는 내 자신을 담고 싶을 뿐이며, 헌책방이 흘러온 자취를 있는 그대로 담고 싶을 뿐이다. 큰 곳은 큰 대로, 작은 곳은 작은 대로, 깨끗한 곳은 깨끗한 대로, 낡은 곳은 낡은 대로 찍을 뿐이다. 내 자신을 찾자. 내 사진도 찾자.

 

 

[12] 어제도 훌륭한 사진책 하나 만났다 : 어제도 기막히게 훌륭한 사진책을 하나 만났다. 젊어서는 권투선수로, 늙어서는 권투 코치로 일하다가 죽은 사람 이야기를 묶은 사진책인데 어찌나 자연스럽고 수수하게 한 사람 삶을 담아내고 보여주는지, 권투라는 운동이 사람으로서 차마 즐기기 어렵도록 끔찍하다는 이야기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맞은편을 죽도록 두들겨패야 이기는 운동경기이니, 안 끔찍할 수 있으랴). 이 사진책에는 어느 한 가지 일, 이 일이 권투이든 아니든 다른 무엇이든, 자기 온삶을 바쳐서 즐겁게 살아온 할아버지 한 사람이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몸을 부지런히 쓰면서 일하는 아름다움이 담겼다. 사진 한 장에 찍히는 사람 얼과 찍는 사람 넋을 고이 담으면 이런 책 하나 세상에 태어나는구나 싶다.

 

 

[13] 사진작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찍는 사진 : 아이가 아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아이는 나중에 사진작가가 되고 싶단다. 그 아이는 동무보고 ‘야, 귀여운 얼굴 한번 해 봐’ 하고 말하며 사진 한 장 찍는다. 어디선가 사진작가들 하는 품새를 보고 따라했을까.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며 사진 찍는 흉내를 냈을까.

 

 

[14]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으면 :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믿는 사람, 아끼는 사람, 훌륭한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귀여운 사람, 반가운 사람, 멋진 사람, 좋은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괜찮은 사람, 우러르는 사람, 즐거운 사람, 재미있는 사람, 나를 가볍게 해 주는 사람, 아늑한 사람,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라. 이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담긴 사진은 더없이 빛이 나고 그지없이 놀라우며 대단히 아름답게 찍히리라.

 

 

[15]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을 엮으려면 :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을 엮으려면 그야말로 온갖 사진을 골고루 살필 줄 알며, 온갖 갈래 사진을 두루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구나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에 말을 걸다, #사진, #사진찍기, #사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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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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