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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하기 바쁜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불교계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주사파와 북쪽에 연계된 학생들이 노무현 정부 때는 활동을 안 하고 있다가 내가 집권하니까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뒤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오마이뉴스>가 기사 <이 대통령 "촛불 배후는 주사파 친북세력">를 통해 단독으로 보도한 사실이다.

 

나로서는 "촛불 1만개는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면서 참모들을 질책한 것을 동시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늘 그래왔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 발언들은 말 속에 '뼈'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박아놨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재협상 불가"를 다시 주장했다. 여타 산업 분야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후유증 때문에 재협상을 무책임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냐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는 중요한 화두들이 등장했다. '재협상 불가 논리'는 사실상 한미FTA 추진 논리를 근거로 들면서, '촛불 1만개를 구입하고 주도한 세력'으로 주사파 친북 세력을 지목했다. '국민과의 소통' 운운하더니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기에 바쁘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참석자는 이렇게 언급했다.

 

"대통령이 우리 얘기를 듣겠다고 해서 갔지만 정작 대통령은 우리 얘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얘기를 하기에 바빴다."

 

10여 차례나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감수하면서까지 가두시위와 청와대행을 시도했던 시위참가자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1차적으로 내세운 '쇠고기 재협상'은 다시 한미FTA 추진 논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 농락당했고, '빨갱이 세뇌' 취급을 당했으니 열이 오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격화된 시위, 전경과의 전면전 양상

 

▲ 전경버스 흔들기 '전경버스 흔들기'는 이제 시위의 통상적인 코스가 됐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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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는 시위현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됐다. '비폭력'을 고수하고자 노력했던 시위의 방향이 점차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로 반드시 가서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뭔가'가 작용한 것이었을까?

 

일단 '변화된 방향'의 화살이 쏠린 곳은 역시나 '전경버스'였다. 그동안은 남성 참가자들이 버스를 흔들려 하던 양상에서, 7일 새벽에서는 밧줄을 동원해 끌어내는 수순으로 나아가다가, 7일 밤과 8일 새벽에 접어들어서는 '전면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시도는 다양했다. 그리고 '도구'들도 마찬가지로 보다 다양하게 등장했다. 전경버스로 올라가 보려는 시도 역시 여전하다. 경찰은 그에 대해 방패찍기와 소화기 분사(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편이었다)로 대처했다.

 

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부터 비롯된 분노로 의지가 더 강해진 것 때문인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맞서려 한다. 유리창을 부수며 전경버스 내에 있는 진압봉과 같은 무기를 탈취하는 시민들도 있었으며, 방패를 빼앗아 '전리품'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뿐이 아니라, 경찰로부터 소화기까지 빼앗아 경찰에게 역으로 뿌리는 경우도 있으며, 스프레이 락카와 라이터를 동원해 불꽃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경찰도 지지 않는다. 오줌을 담은 물통까지 던지는 사례가 있었다. 시위참가자들과 경찰이 욕설로 말다툼을 하면서 물병과 소화기를 서로에게 겨누면서 말 그대로 전쟁통이 됐다. 다시 한 번, 말 그대로 전면전 양상이다.

 

이 대치는 광화문과 안국동 양쪽에서 번갈아가면서 일어났다. 양쪽 현장을 모두 오가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다행히 오토바이를 태워준 어느 시민의 도움으로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오갈 수 있었는데, 이렇듯 양쪽 현장을 오가면서 느낀 것은 참으로 복잡했다.

 

유난히 앞장서 대치하던 '그들', 누굴까

 

▲ 시민의 '소화기 분사' 시민들이 '폭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찰로부터 당했던 '과잉 진압'에 대한 맞대응 요소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것 같지 않다는 판단 아래 전의가 강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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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상을 지켜봤을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다양할 것이다. 환멸을 느낀 분들도 있을 것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시위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듯 격해진 시위 양상을 보면서 찜찜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광화문과 안국동 양쪽 방향에서 유난히 앞장서 경찰과 대치하는 일부 남성들의 존재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청계광장 인근 도로에서 이뤄지는 연좌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행동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디지털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물론, 그들의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뭔가 특별하다는 증거도 없으며,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내 감을 무작정 무시할 수만은 없다.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이어진 시위에서 내가 현장을 지켜본 횟수는 총 16차례가 됐다.

 

특히나 가두시위가 진행된 이후에는 형편이 되는 대로 최대한 자주 참여했기에 다양한 상황을 눈으로 목격했다.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감이다.

 

나로서는, 이명박 대통령 본인을 비롯한 친MB세력의 '집회 배후'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점, 그리고 지난 현충일에 큰 문제가 됐던 '대한민국특수임무자수행회'의 시청 광장에서의 추모행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행사예정지는 경기도 판교 금토리에 위치한 충혼탑에서 서울광장으로 급하게 변경됐다. 그래서 회원들 중 100여명만이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 사실이 크게 논란이 됐던 이유는, 행사 주최의 임원진들이 지난 4일 청와대로 초청돼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직후에 추모 장소가 시청 광장으로 변경됐다는 것이었다. 다수의 시위참가자들과 누리꾼들은 이 점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촛불문화제를 비롯한 시위 전반에 영향을 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은 8일 새벽에서의 대치 현장에서도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거론하고 있었다.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앞장서서 전경버스 등에 '영향'을 주려는 가운데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의 존재도 눈에 띈다.

 

시위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의지에 따라 시위에 참가한 것이기에 생각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치 상황에서는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거세질 수밖에 없으며, 이들이 약간의 행동만 취해도 상황은 급변한다. '의문'을 거론한 시위참가자들이 주목한 요점은 바로 이것이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느껴온 것이다.

 

분노에 분노를 거듭하면서도 참고만 있던 시위참가자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점을 주목해본다.

 

'폭력시위 변질'일까 '저항권 행사'일까

 

▲ 앞장서 대응하던 참가자와 '비폭력'의 논쟁 시위대 사이에서도 대응 방식을 놓고 그 자리에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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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란 점을 짚고 넘어가보자. 여기에는 보수언론의 시각이 큰 역할을 했다. 의도적으로 과잉된 부분만 편집해 지면에 내세우고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면서 점차적으로 "시위=폭력시위"라는 인상을 가지면서 시위문화 자체를 부정하는 양상으로 번진 것이다.

 

여기에는, 시위 현장에서 늘 시위참가자들과 대치하는 전경의 부모들의 존재를 '악용'하는 보수언론의 노림수도 적절한 양념처럼 작용한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 설령 폭력이 오간다 해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후'의 차이는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같이 행사하는 것이다. 아니, 폭력을 같이 행사할 경우에는 월등한 무기와 '공권력'이라는 배경을 안고 있는 경찰 병력이 일방적으로 시위대를 압도할 것이다.

 

시위현장을 지켜보면서 서글펐던 것은, '차출'에 의해 전경이 됐을 뿐인 어린 동생들이 '공권력'의 선봉에 서서 정권의 핵심이 맞아야 할 '분노'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우린 청와대로 가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목소리를 강조하면서 "어린 전경들이 다치지 않게끔 빨리 물러나게 하라"고 주장하는 시위참가자들도 인상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비폭력'이라는 목소리가 우월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핵심들의 잇따른 '감정 건드리기 발언 및 행각'으로 인해 그 선을 넘어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0여 차례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와 '비폭력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 본인까지 직접적으로 '역린 건드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무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명분'을 찾고자 한다면 그 명분은 시위참가자들에게 여전히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근거는 '저항권'이다. "국가권력이 불법적으로 행사됐을 때, 그 복종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말한다. 헌법에도 보장돼 있다.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이 OIE(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을 신주단지 모시듯 읊은 것을 기억해보자. '저항권'의 국제적 근거는 그보다 더 인상적인데, 1949년 UN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전문에도 "억압과 전제에 대한 최후 수단으로서 부득이 반역에 호소하지 않도록 인권의 법적 보호가 중요하다"는 부분이 거론돼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논란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대통령과 정권의 기본적 임무를 망각했다는 점을 주지하자. '저항권'은 필연적이다. '저항권' 행사에 폭력이 행사되느냐 마느냐의 요소가 다소의 논란이 될 수는 있어도, '폭력'이라는 일부분에 의해 시위 자체가, 그리고 '저항권 행사' 자체가 부당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위참가자들 중 일부가 특히나 대치전선 전방에 위치한 일부의 '과잉'에 대해 '모종의 의문'을 느끼고 있다는 점, 나로서도 그 의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판단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헌법'보다 '감정'에 우선한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훈련된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보수언론의 오랜 공들이기로 인해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폭력'이라는 일부분을 확대해석해 시위문화 자체를 '교통체증'의 이유까지 거론해가며 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시위참가자들'과 '시민'을, 구분하려 사력을 다 하는 보도 행태도 보수언론의 전형적인 관점임을 주목하자.

 

공은 다시 이명박 대통령과 '조중동'에게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 그리고 어청수 경찰청장은 '폭력시민', '불법시위 엄정대처' 등을 주장한다. 일부 시위대의 대응이 시위문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한국인의 평균적 감성에 기반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조중동' 역시 이명박 대통령과 발맞추어 오래전부터 '북한의 공작' 등을 거론했다.

 

일단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또다른 대처와 '조중동'의 9일자 보도인 것 같다. 여기에 따라서 시위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도 판가름날 것 같다. 하지만, 예상은 희망적이지 않다. 제로섬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끝없는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정권과의 전면전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합법적으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취임한 지 몇 달도 못가서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탓이자 우리 모두의 불행인 것 같다. 이명박 정권, 과연 이 국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갈 생각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저항권, #광우병, #이명박, #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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