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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체첸 등에 집속탄이 산재해 있어 약 4억 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이라크전 모습.
 국제적십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체첸 등에 집속탄이 산재해 있어 약 4억 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이라크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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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111개국 대표들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집속탄 금지 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 11월 노르웨이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오슬로 프로세스'가 1년 6개월 만에 역사적인 성과를 낸 것이다. 협정 초안에 합의한 111개국은 올해 12월에 공식 서명을 거쳐, 내년 6월에 공식 발효를 목표로 삼고 있다.

'확산탄'으로 불리기도 하는 집속탄은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인도적인 문제를 야기하면서 '없애야 할 대표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항공기, 미사일, 야포 등에서 투하되는 집속탄은 대형 폭탄이 공중에서 수백개의 소형 폭탄으로 분리·폭발해, 축구장 2~3개 크기 안에 있는 사람들에 치명상을 입힌다.

특히 소형 폭탄의 상당량은 불발탄으로 남아 있다가 대인지뢰처럼 터져 민간인에 큰 피해를 준다. 인권단체들은 어린이들이 장난감인 줄 알고 만졌다가 터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불발탄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전후에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재건 사업과 난민 재정착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집속탄을 '대량살상무기'라고 부른다.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피해 범위가 광범위하며,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집속탄에 의한 사망자 수는 수만 명에 달한다.

미국, 언제까지 북한 타령할 것인가?

집속탄 금지 협약을 지지해 온 국제적십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체첸 등에 집속탄이 산재해 있어 약 4억 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유엔은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당시 약 4백만 개의 집속탄의 소형 폭탄이 투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00개국 이상이 집속탄 금지 협약에 합의한 것은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인류 사회를 만드는 데 쾌거라고 일컬을 만하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리틀 아메리카'라고 조롱을 받아온 영국과 일본조차도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집속탄 사용 금지에 동의해 협약 체결에 물꼬를 튼 것 역시 이러한 인도주의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된다. 우선 대표적인 집속탄 보유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이 협약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의 집속탄 보유량은 10억 개로 추산된다. 그만큼 이들 나라가 빠진 협약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한 금지 대상을 '현재' 보유한 것으로 한정함으로써, 새로 개발하는 집속탄 보유에 길을 터준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협약 체결국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것 역시 인정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집속탄 보유국이자 사용국인 미국은 '집속탄의 군사적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이 조약의 서명을 거부하고 있어 미국 안팎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을 선포해 예방적 선제공격 전략까지 채택한 미국이 정작 이들 무기를 없애고자 하는 국제적 노력에는 무시와 거부로 일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북한의 남침 격퇴 등 재래식 전쟁에서 집속탄은 동맹국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라며, 집속탄 금지 협약 서명 거부의 핵심적인 이유로 북한을 들었다. 미국은 1997년 대인지뢰금지협약 제정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이 조약의 서명을 거부 한 바 있다. 미국이 자신의 '예외주의'를 관철하는 데 북한 등 미국이 지목한 '깡패국가'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일본도 동참, 그러나 '글로벌 코리아'는 불참

이명박 정부는 대외정책에서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고 있지만 그러나 한미관계의 전략동맹화와 이를 위한 쇠고기 협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처럼, 그 실상은 '리틀 아메리카'가 되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는 대외정책에서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고 있지만 그러나 한미관계의 전략동맹화와 이를 위한 쇠고기 협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처럼, 그 실상은 '리틀 아메리카'가 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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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차원에서 이 조약 체결 운동을 주도해 온 '휴먼라이트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집속탄 생산·보유·수출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북한은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이 무기를 생산·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 보고서에서 한국 관련 부분은 아래와 같다.

"한국은 풍산과 한화 두 곳의 회사에서 집속탄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의 국방부 관계자는 2005년 6월 3일 "한국은 구형 집속탄의 생산을 중단했다. 현재 생산 중인 집속탄은 신뢰도가 높고 대부분은 자폭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풍산은 2004년 11월 DPICM(집속탄의 일종) 생산 기술을 파키스탄으로 수출했다. 미국은 2001년 다연장로켓(MLRS)에 사용되는 DPICM 생산을 위해 한국과 면허생산 협정을 체결했다."

이처럼 한국은 집속탄의 주요 생산·보유·수출국 가운데 하나이고, 주한미군이 대량의 집속탄을 배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속탄 금지 협약 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외면해 왔다. 2007년 2월 오슬로 국제회의, 2007년 5월 리마 회의, 2007년 12월 비엔나 회의에 잇따라 불참했고, 집속탄 금지 협약 체결을 결의·촉구한 웰링턴 선언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속탄 금지 협약 체결에 합의한 더블린 회의에도 불참했다. 이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특수한 군사안보적 상황"을 고려해 "이 협약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인도주의적 문제도 고려해" 특정무기금지협약(CCW) 논의에는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CCW 논의는 구형은 금지하는 대신에, 신형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즉, 집속탄의 신뢰도를 크게 높이고 자폭 장치를 갖추면 군사적 유용성은 보유하면서도 인도적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미 상당량의 신형 집속탄을 보유하고 있고, 또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높다. 이에 따라 주로 구형 집속탄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입장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무엇보다도 인도주의적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물신주의'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면 부수적 피해는 최소화하고 군사적 목적은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판박이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글로벌 코리아'를 대외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전략동맹화와 이를 위한 쇠고기 협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처럼, 그 실상은 '리틀 아메리카'가 되는 데 있다. 그런데 '전략동맹의 모델'이라던 영국과 일본은 '리틀 아메리카'라는 오명에서 점차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외교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태그:#집속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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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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