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맵시 없는 입술이 아니라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입술이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정다운 이야기로 상대를 외롭지 않게 하는 목소리고 뒤뚱거리며 부족하지만 남을 뒤처지게 하지 않고 상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 오리

 

집 주변 냇가를 걸으면 늘 꽥꽥거리며 인사하는 오리들이 <희망>(2005, 울림)을 읽고 나니 더 반갑다. 왠지 오늘은 더 깊은 속내를 얘기해줄 거 같다.


지은이 정원준은 <달과 사진사>(2005, 울림)로 알고 있었다.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키는 문장들로 꾸며진 그 책 덕에 자연스럽게 ‘희망’을 펼칠 수 있었다. ‘희망’은 위에 소개한 오리처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연에서 건져 올린 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고통을 겪지 않고는 결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고 ‘종’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진정한 고요함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새벽녘에 찾아오듯 부드러움은 거친 풍파를 겪은 모래만이 가질 수 있는 거라고 '모래'가 털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문은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느냐에 달렸다고 속삭이는 '문'까지 자연과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희망은 결코 입에 발린 낱말이 아니다.

 

지은이가 평생에 걸친 고민들을 다듬어서 자연의 입을 빌려 전하는 우화들은 절망을 해본 사람이 전하는 희망이라 역설적으로 더 희망적이다. 사랑을 하고 절망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지은이가 직접 담은, 이야기와 어우러진 57장의 사진들을 찬찬히 쳐다보면서 희망을 다시 떠올려본다.

 

갈매기가 하늘을 휘돌고 있는 것은 낚아챌 물고기를 찾기 위함이며 뱃사람이 먼 바다를 바라봄은 내일의 항해를 기다림이라며 현재의 미치지 못함을 긍정하는 이야기나 세월을 낚는다는 것은 기회가 아름다운 꽃으로 필 수 있도록 우리의 아집과 욕망을 비우는 거룩한 시간이라며 위로하는 그의 말은 어찌나 가슴 한 편을 보듬는지. 천천히 아래 문장을 읽어보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큰 행복은 내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바다의 별

 

너무 큰 거를 바라며 현실에 불만을 쌓아 놓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랑으로 희망을 얘기한다. 비록 죽더라도 세상에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따뜻한 가슴 속에 묻히고 싶은 게 나방의 심정이란 걸 알면서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추한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가 누군지 생각해보라는 지은이의 말을 곱씹어본다. 끝으로, 조개가 전하는 사랑을 마음 깊숙이 아로새긴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조개 속에 있는 진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의미는 조개만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 조개와 진주


희망

정원준 지음, 울림사(2005)


태그:#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