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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루체른(Luzern)의 구시가에는 중세의 광장과 건축물, 골목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가롭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한 절을 구경하기에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 루체른의 구시가지이다. 지도를 접고 발길 가는 데로 산책을 즐기던 나의 가족은 구시가의 한 중앙인 코른 마르크트(Korn markt)로 들어섰다.

 

 

코른 마르크트는 과거 중세시대에 루체른의 곡물시장이 서던 곳으로, 현재도 구시청사의 아케이드 아래에서는 매주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 광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 광장의 남쪽에 자리한 구시청사이다. 1602년~1606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립된 구시청사, 타운홀(The Town Hall)은 갈색의 지붕과 푸른색 시계탑이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이다.

 

전시홀로 사용되는 과거의 무역거래소, 코른스휘테(Kornschütte)는 현재도 구시청사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지만, 전시회가 없어서 자세히 둘러볼 수 없었다. 이 광장에는 시청사 외에도 길드 하우스 휘슈테른(Pfistern)이 있다. 루체른의 길드하우스는 알프스 생고타르(Saint Gotthard) 고개 개통 이후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한 루체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건축물 내부를 샅샅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이 광장과 이 건축물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그대로 전해지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15~17세기의 중세 건축물들을 보면서, 나는 아내, 딸과 함께 온통 돌로 빽빽하게 포장된 중세의 길을 산책했다. 건물들은 모두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지만 건물의 1층은 대부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되어 가게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도 물론 본능적으로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남자 중의 한 명이지만, 이 가게들의 옷과 기념품, 특산물들은 너무나 예쁘고 특이했다.

 

나의 아내는 가족의 동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가게들은 모두 들어가 보고 있었다. 아내가 관심 있게 보는 가게들은 스위스의 독특한 디자인이 드러난 옷가게들이었다. 나와 신영이도 아내가 들어간 옷가게에 덩달아 따라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옷을 몸에 대어보기도 하고 다른 색상이나 무늬가 없냐고 옷가게 아가씨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내는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은 훌륭히 하고 있었다. 유럽 다른 나라의 옷가게와 달리 이곳 스위스의 옷가게 아가씨들은 매우 호의적이고 친절했다. 아내는 옷가게를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다행히 옷을 사려 카드를 빼 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움직였다. 우리 눈앞에 광장 중앙의 분수대가 아름다운 바인 마르크트(Wein markt)가 나타났다. 바인 마르크트는 코른 마르크트와 함께 루체른 구시가의 메인 광장 중의 하나인 곳이다. 여름날의 시원한 분수 물줄기가 분수대의 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분수대의 물 속에 손을 담그고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광장은 스위스 연방의 역사적 현장이다. 1332년 루체른 시민들은 이곳 바인 마르크트에서 우리(Uri), 슈비쯔(Schwyz), 운터발덴(Unterwalden)의 시민들과 스위스 독립의 초석을 쌓는 동맹 조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중세의 이 곳 와인 시장은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던 곳이었다.

 

 

현재 '와인 광장'에서 퍼져 나간 골목길에 쇼핑을 하기에 좋은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지만, 와인을 파는 가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는 지친 다리도 쉬어갈 겸 '요구르트랜디아(Yogurtlandia)'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요구르트 크레페(crepe)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커피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이스 카푸치노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커피 맛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의 아내는 이곳 루체른에서도 커피 아이스크림인 '에라클레아 카페(Eraclea Caffe)'를 주문했다. 나는 이 가게의 주 메뉴인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신영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는 무뚝뚝했지만 아내가 웃으면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자 우리를 반갑게 대했다. 어디를 가나 웃음보다 사람을 더 친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아내는 웃을 때마다 아주 시원하게 웃기 때문에 이곳 유럽에서도 많은 호감을 사고 있었다.

 

바인 마르크트의 광장에는 15~16세기에 지어진 모습에서 달라진 바가 없는 건물들이 가득하다. 광장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인상 깊은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1층이 기념품 가게로 쓰이는 이 건물에는 광장의 이름답게 와인을 사고파는 이들의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다. 컬러풀한 프레스코화들은 유서 깊은 건물의 벽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루체른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를 건물 벽면에 재치 있게 남겨두고 있었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골목의 건물 벽면에도 개성적인 파스텔 톤의 프레스코화들이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건물 벽면에 아름답게 남은 프레스코화는 루체른 구시가 전체에 산재해 있지만 이 광장의 프레스코화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프레스코화에는 중세 당시 루체른의 생활상과 역사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고, 역사적인 프레스코화는 도시의 건축물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광장의 프레스코화들을 여유있게 감상했다.

 

발란세 호텔(Hotel des Balances) 벽면의 프레스코화도 루체른의 프레스코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기를 빼어드는 곳이다. 이 호텔은 벽면 전체가 커다란 캔버스이고, 그 캔버스 위는 온통 프레스코화이다. 호텔의 창문 주변으로는 로마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그려져 있고, 그 옆의 벽면에는 기사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군악대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는 호텔 외부의 벽면을 보고 있지만, 나는 마치 건물 내부에서 입체적인 공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호텔 앞을 지나 골목의 프레스코화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건물의 외부를 보는 동안 나의 아내는 그 건물들의 내부 순례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예쁜 가게들은 주저하지 않고 모두 들어갔다. 순간, 아내가 '실드(SCHILD)'라는 건물에 들어갔다. 비즈니스 캐쥬얼 옷을 파는 가게인데, 4층 전체가 옷가게로 사용되는 큰 건물이었다.

 

 

이 건물의 벽면에는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둥에 칠해진 것과 같은 붉은 칠이 가득 칠해져 있었다. 하얀 벽면을 지탱해 주는 기둥은 붉은 칠의 커다란 나무이고, 이 붉은 칠 기둥들은 마치 기하학적 문양처럼, 나무의 줄기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벽면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채워졌겠지만 나무 기둥은 숨 쉬듯 살아 있었다.

 

나는 가게 앞의 루이스 다리(Reuss brucke)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해는 지고 나는 다리 위를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루체른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해 지는 시간을 즐기듯이 내 눈 앞을 지나고 있었다. 신영이는 엄마가 들어간 옷가게 건물 1층의 의자에 앉아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고 있었고, 아내는 한참동안 옷가게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가 나오지 않아서 '실드' 4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루체른에서는 꽤 큰 이 건물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내는 태연하게 옷 구경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다는 것이 내 여행철학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루이스 다리로 나와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영이는 옷가게에서 꼼짝도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옷가게 아가씨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영이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가게 문 닫을 시간인데 부모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가 딸에게 다가가는 순간, 아내가 가게 1층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지금까지 쇼핑 중이었다는 것을 안 점원이 밝게 웃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사라지고 거리에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구시가의 거리에 인적이 뜸해지면서 구시가 가로등에 노란 조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프레스코화는 조명 속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 건너편 예수회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가족의 손을 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루이스 다리를 건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루체른, #바인 마르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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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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