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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에 들어가기 전 밖에서 본 도산서원의 전경이다.
▲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에 들어가기 전 밖에서 본 도산서원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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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온 휴일. 이 휴일을 만끽하려고 지난 주말(7일) 도산서원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도산서원. 천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천원짜리 지폐를 늘 사용하면서도 어쩌면 도산서원은 생소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도산서원 입구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산책을 즐기고 싶어 도로에서부터 약 20분 정도를 걸으니 도산서원 입구가 나왔다. 그리고 도산서원 입구에서 약 5분가량 걸으면 도산서원이 나온다.

도산서원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서원으로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진도문 아래에서 본 도산서원의 모습이다.
▲ 도산서원의 모습 진도문 아래에서 본 도산서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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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면 도산서원의 전교당으로 들어가는 진도문이 나온다. 진도문은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래의 서당과 위의 서원을 구분하고 있다.

도산서원이 지어질 때 서원은 산수가 좋은 곳에 위치하여 심신의 건강과 지식 수양의 근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지어졌다. 그래서 강당이 사당 앞에 위치하는 전학후묘의 형식으로 앞은 배움터인 강당, 뒤는 모시는 분의 사당 공간이다.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이다.
▲ 전교당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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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문을 지나면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전교당이 보인다.

도산서원에서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되었다. 건물은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교당은 1969년에 보수를 했고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고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간소하게 지은 건물로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 박약재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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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당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양 옆으로 두 개의 건물이 있다.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하는데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왼쪽사진이 광명실이고 오른쪽사진이 역락서재이다.
▲ 광명실과 역락서재 왼쪽사진이 광명실이고 오른쪽사진이 역락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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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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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이 상덕사이고 오른쪽 사진이 전사청이다.
▲ 상덕사와 전사청 왼쪽 사진이 상덕사이고 오른쪽 사진이 전사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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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안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먼저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 광명실. 광명실은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준다"는 뜻이다. 또한 역락서재는 퇴계 선생의 제자 정지헌 부친이 지헌을 선생에게 취학시킬 때 지어준 집으로 현판의 글씨는 선생의 친필이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공(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마루를 '시습재'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현'이라 하였다.

상덕사는 퇴계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선조 7년(1574) 전교당과 함께 지어졌다. 원래는 흙담장이었던 것이 70년대 정비사업 때 돌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태극 무늬의 문을 보면서 하늘과 땅,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우주의 상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동서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전사청은 상덕사에서 퇴계 선생의 향례를 지낼 때 제물을 보관하고 평소에는 묘지기로 하여금 사당을 수직케 하던 곳이다.

옥진각에서 올려다 본 도산서원의 모습이다.
▲ 도산서원 옥진각에서 올려다 본 도산서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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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이 장판각이고 오른쪽 사진이 옥진각 출입구의 모습이다.
▲ 장판각과 옥진각 왼쪽 사진이 장판각이고 오른쪽 사진이 옥진각 출입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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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각은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언행록, 병서, 도산싱비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2003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옥진각은 퇴계 선생이 직접 쓰시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 전시관이다. 사진촬영은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어 내부의 모습은 담지 못했다.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 시사단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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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강 건너편을 보면 시사단이 보인다. 이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1792년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에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7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壇)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강과 어우러져 있는 시사단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물밀듯이 찾아온다.

최근에는 '선비체험'을 하기 위해 군인과 직장인 등 각계 각층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는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도 옛 선비들의 지혜와 인성은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던 도산서원. 각 건물을 둘러다보면 자연스레 배움이 되고 거기에 멋드러지게 어우러진 주변 경치는 시간가는 줄 모르는 눈요기이다.
만약 아직도 도산서원이 생소하기만 하다면 직접 찾아가 바람이 전하는 도산서원의 숨결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태그:#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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