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 수천명이 10일 밤 11시경 서면로터리를 점거하고 자유발언과 즉석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 수천명이 10일 밤 11시경 서면로터리를 점거하고 자유발언과 즉석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숨 쉬지마. 공기 아까워."
 "숨 쉬지마. 공기 아까워."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부산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서면로터리를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10일 밤 10시45분부터 11일 새벽 2시까지 차량은 서면로터리를 통과하지 못했고 그 자리를 시민들이 차지했다. 1987년 6·10민주항쟁과 1991년 고 강경대 열사 사건 이후 처음이다.

촛불문화제는 10일 저녁 7시경부터 서면 쥬디스태화 옆 2차선 도로에서 열렸다.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인파가 5000여명으로 불어났다. 8시10분경엔 이에 몇 배로 늘었다. 범일동 현대백화점과 부전역에서 각각 집회를 연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조합원 수천명이 서면에 집결한 것이다.

쥬디스태화 앞 왕복 8차선 도로는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집회에 참가한 이원기(24)씨는 "우리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21년전 섰던 자리입니다"라고 외쳤다. '광우병 부산시국회의' 측은 3만명이 모였다고 보았다.

21년 전에도 서면 거리에 섰던 부산민주시민협의회 회원 이왈신씨는 "눈물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또 양동진씨는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와 의사·약사·한의사 100여명도 흰색 옷을 입고 나왔고, 수녀들도 촛불을 들었다.

이후 즉석 노래공연이 열렸고, 자유발언대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성균관대 법대 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설치한 것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사장 답다"고 말했고, 부산교대 학생 양윤성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이며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선 즉석에서 거리 모금이 벌어지기도 했다. 10여개의 모금함이 몰려든 사람만큼이나 꽉 채워졌다. 이날 저녁 서면에서만 모은 기금은 700여만원.

집회참가자들은 밤 10시45분경 서면로터리로 향했다. 왕복 8~10차선 도로 5개가 만나는 오거리다. 서면에 들고나는 거의 대부분 차량은 이곳을 거쳐야한다. 교통경찰은 서면로터리 입구에 '질서유지'라고 쓰여진 줄을 들고 일렬로 서 있었지만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시민들이 서면로터리를 점거한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 이후 서면로터리를 점거하기는 처음. 그동안 시민들은 쥬디스태화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촛불집회를 열거나 3km 가량 떨어져 있는 부산지방경찰청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적은 있다.

한 시민이 자유발언을 통해 "서면로터리 점거한다고 나아지는 게 있겠냐"고 하자 다른 시민은 "이명박 정부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사복을 입은 한 경찰이 서면로터리를 점거한 시민을 촬영하다 들통이 나 시민들에게 붙잡혀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진 가운데 웃옷이 사람들의 손에 잡힌 사람이 사진을 촬영한 경찰관이다.
 사복을 입은 한 경찰이 서면로터리를 점거한 시민을 촬영하다 들통이 나 시민들에게 붙잡혀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진 가운데 웃옷이 사람들의 손에 잡힌 사람이 사진을 촬영한 경찰관이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사복경찰, 사진 촬영하다 들통나 혼쭐

한 시민이 서면로터리를 점거한 사람들을 촬영한 경찰로부터 빼앗은 캠코더 테이프를 들어보이고 있다.
 한 시민이 서면로터리를 점거한 사람들을 촬영한 경찰로부터 빼앗은 캠코더 테이프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밤 11시 10분경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사복을 입은 한 경찰이 캠코더를 들고 서면로터리에 있는 사람들을 촬영하다 시민들에게 들킨 것. 시민들은 그 경찰로부터 캠코더를 빼앗고, 그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 책임자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붙잡히자 다른 교통경찰들이 달려들어 구출작전을 벌였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10분 이상 계속됐다. 시민을 촬영하던 경찰의 웃옷이 벗겨졌고, 시민들은 그의 속옷을 잡아 달아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경찰은 14분이 지난 11시24분에야 시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시민 수십 명이 그를 뒤쫓아 갔으나, 그는 서면로터리에서 가까운 부산진경찰서로 들어갔다. 시민 100여명은 부산진경찰서 정문 앞으로 몰려가 책임자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부산경찰청 기동대 중대장은 "휴가 나온 대원이 시민 자격으로 촬영했다"고 말한 반면, 부산진경찰서 경비과장은 "경찰이 불법시위 장면을 체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촬영하더라도 안 쓴다"고 답변했다.

한 시민은 "사진 촬영한 경찰은 전경 제2기동대 소속이라고 했다"며 "가방에서 캠코더가 2개가 나왔는데, 불법 체증"이라고 말했다.

경찰 선무 방송은 자정 30여분 전부터 시작

경찰의 선무방송은 11시30분경부터 시작되었다.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이 자리는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시민들은 인도로 올라가 달라"고 여러 차례 방송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로터리를 지키자"거나 "부산시민 함께 해요"를 외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시위대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한 시민은 "해산하라"고 고함을 질렀으며, 이에 시민들이 제지하기도 했다. 한 택시기사는 시민들이 앉아 있는 곳까지 택시를 몰고 왔다가 항의를 받고 돌아가기도 했다.

서면로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민주노총 부산본부 조합원 500여명이 촛불집회 현장으로 합류하려 하자, 한 시민은 자유발언을 통해 "오늘 방송장비를 민주노총에서 빌려준 것은 고맙다"며 "민주노총이 촛불집회 시위를 지휘하지 말라, 지휘를 하게 되면 배후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정을 넘기면서 시위대는 500여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크게 3곳으로 나뉘어 자유발언과 즉석공연을 하던 시민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한 시민은 "옆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담배를 피우지 말자"고, 또 다른 시민은 "쓰레기는 우리가 줍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11일 새벽 2시경 시위를 계속할 것인지 해산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자유발언대에서 사회를 보던 부산대 사회과학대학생회장 박정훈씨는 "인원이 적어 이대로 계속 하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며 "술을 먹지 않은 시민들이 나와서 발언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한 시민이 나와 "우리가 인도에서 차도로 나온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도가 비좁았기 때문"이라며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이 정도 인원이면 인도에서 집회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지금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로터리를 점거하면 다른 시민들이 우리를 적으로 여긴다, 인도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일부 시민들은 "인도로 갈 바에야 집에 가겠다"거나 "해산하면 안된다", "로터리를 어떻게 차지했는데"라고 말하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서면로터리에 모인 사람들은 11일 새벽 '춤추는 사람들'의 즉석 공연을 보면서 박수치고 있다.
 서면로터리에 모인 사람들은 11일 새벽 '춤추는 사람들'의 즉석 공연을 보면서 박수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서면로터리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결정도 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민주적이네, 그러니 반대하는 사람도 다 따라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시민 50여명은 이날 새벽 4시가 넘어서도 제일은행 앞 인도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자유발언을 하거나 노래 실력을 뽐내며 거리에서 밝아오는 새 날을 맞았다.


태그:#쇠고기, #촛불집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