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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원내대표가 되니 말조심하게 된다. 가급적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 오늘은 6·10 항쟁 21주년을 기념해서 <오마이뉴스>하고 인터뷰하는 거다…. 허허."

 

지난 10일 오후 5시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인터뷰를 끝낸 홍준표 원내대표의 얼굴에 엷은 그림자가 스쳐갔다.

 

4선의 홍 의원은 지난달 22일 여당의 원내대표에 취임했다. 그는 지금까지 혁신위원장이나 클린정치위원장 등 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태를 수습하는 일을 도맡아왔다. '당 3역'은 처음. 그는 "비정규직을 12년 하다가 처음으로 정규직을 맡은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끝에 이제야 '정규직'을 맡았는데, 거리에서는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국민의 약 80%가 한나라당이 만든 대통령을 거부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강재섭 대표가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한 발 빼는 사이에 어느덧 그의 위치는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처럼 돼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시위대에서) '한나라당 해체하라'는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 아직은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분명하지만, 여당이 중심을 잡아 현 국면을 수습하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다.

 

홍 원내대표의 당면 과제는 민주당을 등원시켜 18대 국회를 출범시키는 일이다. 홍 원내대표는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날(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등원 조건으로 내세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협정을 국내법으로 제약하는 데 따른 부작용과 법리적인 문제 등 때문에 반대하지만, 논의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양당이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논의하다보면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할 기회도 없었던 한승수 총리에게 책임지라는 것은 과도한 질책"

 

한승수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과 함께 여권에서 '박근혜 총리' 카드가 부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이 총집결하는 양상으로 촛불시위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보수층 결집을 의미하는 '박근혜 총리'로는 난국 돌파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국민들이 (쇠고기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총리가 돼 보수가 결집한들 문제가 해결되겠나?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할 시점에 박근혜 총리가 나와서 보수가 진보와 싸우는 구도는 안 된다. 박근혜 총리는 시기상조다."

 

그러면서 그는 "한승수 총리가 이제야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한 총리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일할 기회도 없었던 총리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조금 과도한 질책이다. 한 총리는 최근의 민생대책도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고, 대학생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의견 수렴도 하고 있다. 나는 한 총리가 최근에야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도 한 총리가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최근 국정 난맥의 핵심은 청와대이니 청와대 참모들이 책임지면 내각은 농림·교육·보건복지 등 극히 일부 부처만 책임지면 된다는 얘기다. 홍 원내대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경제팀 교체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으로, 그는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촛불시위를 "프로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프로들은 이슈 끌고 가려 하겠지만, 시민들은 귀가할 것"

 

- 청와대와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으로 민심이 가라앉을까?

"주말까지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거의 나올 것으로 안다. 그렇게 되면 민심이 수습되고 시민들은 귀가할 것이다. 프로들이야 어떤 경우라도 계속 이슈를 끌고 가려 할 것이고, 일반 시민들은 귀가할 것으로 본다."

 

- 프로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나?

"시민과 프로들이 같이 하고 있다. (둘이) 섞여 있다. 프로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진보 진영은 우리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그걸 비꼬아서 듣는다"며 진보진영의 대대적인 공세에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은 촛불 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여권의 대대적인 '반격'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홍 원내대표는 11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노동계 총파업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할 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부터 민주노총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온 터라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눈치이지만, 그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홍 원내대표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의 방 바깥에서는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야당 당직자들의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음은 홍준표 원내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9일<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6·10 이후에는 홍준표 원내대표를 직접 만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국회통과를 설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6·10 항쟁의 시위 정국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을 이해한다. 6·10 이후에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등원 조건으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법 개정을 반대하는 정확한 이유가 뭔가.

"첫째, 국가 간의 협약을 국내법으로 제약하는 선례를 만들게 되면 한국 정부는 어느 정부가 되더라도 어느 정부와도 국제협약을 맺을 수 없다. 국제조약의 문제는 조약 자체를 고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이걸 국내법으로 제약하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미아가 된다. 둘째, 가축전염병예방법은 사람과 관련 없이 가축에만 적용된다."

 

- 국회 차원의 재협상결의안을 추진하는 것도 결국 국가 사이의 조약을 뒤집는 것 아닌가.

"어느 나라나 의회와 정부의 의사는 다를 수 있다. 정부가 재협상을 하든 추가협상을 하든 소기의 성과만 거두면 된다. 재협상은 협상을 파기하는 것인데,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있을 때, 상대방에게 중대한 사정 변경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에 귀책사유가 있으면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야당이 국민정서에 호소해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 결국 재협상은 안 된다는 얘기인가.

"재협상의 목적이라는 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못 하게 하는 것 아닌가? 그걸 어떤 식으로든 달성하면 되는 것이다. 쇠고기는 금액이 4천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미국이 한·미 FTA의 자동차 분야 재협상을 요구하면 몇조 단위의 수입이 왔다갔다하게 된다.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인 오바마 상원의원이 그런 발언을 하는데 어떻게 하나?

 

국민들이 재협상을 부르짖어도 말을 못하는 게 미국이 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미국은 97개국과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쇠고기 재협상을 했다. 대만과 사실상 협상이 끝났고, 일본에도 같은 요구를 했다. 그런데 한국과 재협상하면 미국도 나머지 97개국과 재협상해야 한다. 재협상 결과만 달성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원외교단과 정부특사단이 미국에 갔다."

 

- 국민의 요구는 잘못된 협상 결과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지금 취하고 있다. '재협상'이라는 용어만 쓰지 말자는 것이다."

 

-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이외에 나머지 조건들은?

"검역주권 문제는 협정문 부칙으로 보완됐고, 7가지 SRM(광우병 위험물질)도 다 제거하기로 했다."

 

-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은 민주당과 논의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인가.

"논의는 할 수 있다. 가축전염병 개정도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논의하겠다. 민주당도 10년간 정부를 운용해본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국민정서에 기대서 국제관례를 무시하면 국익에 엄청난 손해가 온다."

 

- 논의는 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찬성할 수 없다?

"그렇다. 하지만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해서 접점을 찾을 방법도 있다."

 

- 민주당과의 대화는 언제 시작할 건가.

"매일 대화 제의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6·10 행사를 끝나야 등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 내각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어떤 진용을 짜야 한다고 보나?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성에 흠결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도덕성 있는 사람들로 갖춰져야 한다."

 

"정치인 입각 많이 해야 하는데, 뚜렷이 떠오르는 인물 없어"

 

 

- 결국 그 물인데 똑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걱정들 많이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한나라당 출신 정치인의 입각 가능성은?

"입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입각 대상자가 뚜렷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정무 판단능력 때문이라도 정치인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정부에 전문가만 필요하면 차관으로도 충분하다. 장관은 전문성과 정무 판단력을 겸비해야 한다. 후자의 능력은 정치인이 탁월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많이 입각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 뚜렷이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 정치인들이 내각에 들어가면 국정운영 시스템이 안정될 것으로 보나? 이명박 대통령의 탈여의도 실험은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YS와 DJ, 노무현 대통령이 조각할 때에는 총선이 없어서 정치인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많이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총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따라서 총선 끝난 후의 인선이 사실상 이명박 1기 내각이라고 보면 된다.

 

- 청와대는 정치인 입각에 특별히 이견을 보이지 않나?

"그러나 청와대 일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정치인이 없다고 얘기한다."

 

- 그런데 그 얘기하는 사람들이 다 사표 내지 않았나?

"그렇다. 하하하…. 그러나 계속 유임될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의미가 있다."

 

- 정두언 의원의 폭탄 발언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방법이 부적절했고 내용도 꼭 옳다고는 볼 수 없다."

 

- 한승수 총리 후임으로 박근혜 또는 강재섭 총리설이 나오고 있다.

"나는 한승수 총리가 잘하고 있다고 본다. 정권 출범 후에는 모든 권력은 청와대에 집중된다. 더구나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으니 청와대에 힘이 집중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 총리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일할 기회도 없었던 총리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조금 과도한 질책이다. 한 총리는 최근의 민생대책도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고, 대학생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의견 수렴도 하고 있다. 나는 한 총리가 최근에야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도 한 총리가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 지금 시위대도 '총리 물러나라'는 얘기를 안 하는데 왜 총리가 물러나는 쪽으로 얘기가 될까?

"문제는 권력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였다. 청와대만 책임지면 내각은 직접적인 해당 부서만 책임지면 된다."

 

- 책임져야 할 정부부처는?

"10일 전부터 농림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얘기했다. 책임질 부처를 고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얘기도 하는데, 경제정책 수립한 지 3개월밖에 안 됐다. 방향이 잘못됐으면 방향만 바꾸면 되지, 경제팀이 고유가 파고를 헤쳐가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만 잃게 된다. 경제팀이 잘못됐다고 할 만큼 큰 과오가 없다."

 

- 환율 정책에 있어서 리스크 관리 등의 실책이 있었지 않은가?

"그 문제는 정책 기조를 바꾸면 된다. 그 문제만으로 정책 전반이 헝클어졌다고 볼 수 없다."

 

- 강재섭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총리 기용은 효과가 없다?

"강 대표 얘기는 금시초문이고, 박근혜 총리설은 죽 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총리로 민심을 가다듬겠다? 나는 이 상황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라고 보지는 않는다. 시민이 참여한 집회다. 시위 성격을 얘기하면, 처음에는 10대와 386세대가 참여했다. 비판적인 386과 그 자제들이 집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집회가 축제처럼 되면서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2단계로 넘어가서 조직적인 세력이 붙었다. 민주노총과 광우병대책회의 같은 프로들이 붙었다. 3단계로 정치세력까지 붙었다.

 

첫째, 시민들은 이명박만 뽑아놓으면 여러 가지로 좋아질 줄 알았는데, '강부자 내각' 파동을 보며 시쳇말로 '자기들끼리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 전 대표와의 당내 갈등을 보면서 보수층이 이탈했다. 마지막으로, 쇠고기 파동에서 야당이 검역주권을 제기했다.

 

미국에서는 30개월 이상 되는 쇠고기를 갈아서 햄버거로 만들어 아침점심저녁으로 먹는데도 광우병 발병 사례가 없다. 안전한데도 감성적으로 접근하니 해명할 길이 없어졌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얘기해본들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한미동맹을 급히 복원하려고 하다 보니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국민들이 쇠고기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총리가 돼 보수가 결집한들 문제가 해결되겠나?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할 시점에 박근혜 총리가 나와서 보수가 진보와 싸우는 구도는 안 된다. 박근혜 총리는 시기상조다."

 

- 박근혜가 언젠가는 총리가 돼야 한다는 얘기인가?

"나중에라도 박근혜 카드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 촛불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나?

"그렇다."

 

- 청와대와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으로 민심이 가라앉을까?

"주말까지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거의 나올 것으로 안다. 그렇게 되면 민심이 수습되고 시민들은 귀가할 것이다. 프로들이야 어떤 경우라도 계속 이슈를 끌고 가려 할 것이고, 일반 시민들은 귀가할 것으로 본다."

 

- 프로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나?

"시민과 프로들이 같이하고 있다. (둘이) 섞여 있다. 프로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나라당 해체하라는 얘기 안 나오는 게 그나마 다행"

 

- '국민이 화내면 항복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어떤 의미였나?

"지금 국민은 항복을 원하고 있다. 10년 만에 집권하면 과거정부를 계승할 건 계승하더라도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집권세력을 안착시켜야 하니 다소 독선적인 면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정권 바뀌면 10만 명이 이동한다. 우리나라의 규모로는 1만 명 정도는 이동해야 하는데 아직 10분의 1인 1000명도 이동하지 못했다.

 

집권세력 안착시키려는 초조감에 대통령이 다소 무리한 면이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보기에는 경제도 호전되지 않았고, 오렌지를 이상하게 발음해 공분을 사는 말실수도 있었고, 인수위 시절과 정권 초기에 토·일요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설익은 정책도 나왔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너무 큰 기대를 했는데, 실망감이 쇠고기 파동으로 터져 나왔다. 현장에 가면 학생들이 데모하고, 주부도 물가 때문에 나오고, 공기업 노조도 고용불안 때문에 나오고…, 이런 게 뒤섞였다. 이걸 다듬으려면 비상요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청와대와 내각이 총사퇴한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 해체하라는 소리 안 나오는 것이 아직은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항복'이라는 말이 마지못해 한다는 인상도 준다. 정말 반성하는 게 아니라 시늉만 한다는 비판이다.

"진보 진영은 우리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그걸 비꼬아서 듣기 때문에 그런 비난에 개의치 않다."

 

- 문제의 핵심에 있는 대통령이 배후세력 운운하는데 억울하게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마음도 있겠죠. 잠도 안 자고 휴일도 없이 일하는데 국민이 인정 안 하니 억울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봐라.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통령이 잠을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밤 12시에 들어가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신문·방송 다 보고 지방에도 다 돌아다니는데, 그런 마음은 못 알아주고 경제가 빨리 호전되지 않으니 화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3개월 된 대통령에게 나가라고 퇴진하라고 하니 서운한 면이 있을 것이다."

 

-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를 바로잡겠다고 했다가 일이 이렇게 댔는데, 정부의 대미외교에도 반성할 부분이 없을까?

"대통령이 이번에 미국 가서 모든 분야에서 전략적 동맹으로 격상시키고 왔다. 지난 정권에서 한미관계가 붕괴된 예를 하나 들겠다. 98년 총풍사건 터진 배경은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정보기관에 모종의 중대자료를 줬는데, 김대중 정부가 이걸 근거로 수사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에서 온 중요 문건을 법정에서는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권영해 관련 고법 재판에서 권의 무죄 판결을 막으려고 미 정보부 문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 문서를 제한된 범위에서 열람했지만, 그 이후로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고급정보를 모두 차단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한국 정보기관은 몰랐다. 미 정보기관이 한국에 자료를 주려고 해도 '내부 스파이가 너무 많다'며 주지 않는 상황이 10년간 지속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미면 어때'라는 말까지 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그걸 복원하려고 서두르다가 생긴 문제가 쇠고기 협상이다."

 

- 어떤 면에서 시위보다 더 심각한 게 노동계 총파업이다.

"화물연대 파업이 물류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름 전부터 준비해왔다. 정부가 세운 대책을 여러 차례 보완했다. 화물연대 파업의 핵심은 운임 단가 문제다. 원가는 올랐는데 개별계약을 하다 보니 손해보는 계약이 이뤄지니 표준요율제를 요구하고 있다. 중간 유통과정에서 20~30% 마진 떼는 과정도 개선해야 하고, 하여튼 정부 개입에 한계가 있지만 며칠째 조정 작업을 하고 있다.

 

- 오늘(10일) 민노총 위원장과의 만남도 불발됐다.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은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내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2년 하면서 민노총과 거의 협의하다시피 운영했다. '오늘은 힘들고 내일(11일) 만나기로 하자'고 하더라."

 

- 인수위 시절 기억이 생생한데, 민노총 간부들이 경찰 수사에 응하지 않는다고 당선인의 민노총 방문도 취소됐다.

"내가 (대통령에게) 참모들이 건의를 잘못했다고 얘기했다."

 

- 이번에 만나는 것도 사태가 어려워지니 취하는 제스처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한 달 전에 내(환노위원장)가 민노총·한국노총·경총·노사정위원장과 함께 대통령과 오찬을 하자고 제의했다."

 

- 정부의 민노총에 대한 태도가 변했나?

"그렇지 않다. 내가 대통령에게 노동계와의 오찬을 제안했고 대통령도 자리를 만들라고 했는데 민노총이 노동부 장관과는 절대 안 하겠다고 해서 보류된 상태다."

 

"노무현 퇴임으로 87년 체제 종료... 이원집정부 개헌해야"

 

 

- 최근 사태를 계기로 학계와 정치권에서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바람직한 개헌 방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으로 87년 체제가 종료됐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완성됐다. 5년 단임제 도입의 취지가 장기집권·독재를 막자는 것인데, 이제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국민의식이 올라갔다. 이제는 남북통일을 가상해서 환경권·노동권·국민생존권을 정립한 헌법을 만들 시점이다. 통일헌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는데 경제가 워낙 어렵다.

 

그런데 개헌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익단체들과 각종 기관들이 권익 확보를 위해 올 테니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정치인들은 민생을 뒷전에 놓고 정략적 개헌에 몰두할 수 있다. 따라서 국회는 연구반을 편성해서 개헌 준비를 하고 경제가 안정되는 시점에서 집중 논의해서 개헌하는 게 맞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원집정부제가 맞다. 남북통일을 가정했을 때에는 권력의 공존현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내각은 원내 제1당이 차지하고,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맡는 게 맞다. 프랑스식 대통령제와는 조금 다르다. 더 나아가서 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 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 시·군은 소선거구제로 하도록 행정구역 개편도 있어야 한다. 광역시는 놔두고, 도 단위 행정체제 대신 전국을 46개 자치단체로 쪼개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2단계로 바꿔야 한다. 지금은 중앙-광역-기초의 3단계인데, 지금은 이렇게 할 필요 없이 2단계로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선거하기도 편해진다. 때가 되면 공론화해보겠다.

 

- 그동안 정상 당직을 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막상 원내대표가 되니 어떤가?

"비정규직 12년 하고 정규직 맡은 셈이다. 여당 원내대표 되니 말조심하게 된다. 야당 때는 무제한의 언론 자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말 잘못하면 당과 대통령이 욕을 먹기 때문에 말조심하게 된다. 가능한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 내 말이 정책이나 당론이 될 수 있으니까…."

 

- 오늘이 6·10 항쟁 기념일인데, 21년 전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나는 울산지청에 있었는데, 노사분규 사건은 단 1건 맡았다. 6월 항쟁 후 현대중공업 폭동 사건이 터져서 45명 구속됐다. 검사들이 6명 있었는데 나는 마약·조직폭력배 수사 담당이었다. 너무 많으니 나에게도 사건이 하나 배당 떨어졌다. 남모씨라고 현중 노조 부위원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구속기소 됐는데, 나만 남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그때 대검 공안부 책임자가 내게 쌍욕에 가까운 말을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내가 '전부 기소하면 어떻게 하나? 지휘부를 이렇게 붕괴시키면 누가 회사와 협상하고 사태를 정상화 시키냐'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의 공안사건을 맡아본 적이 없다. 실제로 그 뒤 노조가 정상화됐지만, 나에겐 '공안 부적격자' 딱지가 붙었다. 서울 남부지검으로 발령난 후에 김원치 검사가 '홍준표는 공안검사 해야 한다'고 천거했지만 나는 특수부로 갔다."


태그:#홍준표, #한나랃ㅇ, #원내대표, #촛불문화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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