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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광화문 사거리에 다시 등장한 이한열. 그의 영혼은 2008년 현재의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08년 광화문 사거리에 다시 등장한 이한열. 그의 영혼은 2008년 현재의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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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21년전 서울거리에는 매케한 최루탄 냄새만이 뒤덮고 음울한 기운만이 온 나라를 감싸고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막이 오르자 군부도 긴박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10일을 전후해 계속해서 시위가 격화되자 6월 20일 무렵에는 서울 외곽 특전사 등 제 부대들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기도 했다.

1987년 6월 10일 국민평화대행진을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에서는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SY-44최루탄 직격탄을 맞고 쓰러진 후 7월 5일 사망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극한적인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다. 전두환 군부세력의 막바지 발악도 극에 달했다. 시위도중 체포되면 최소한 구류였다. 무차별적인 구타와 무차별적인 최루탄 난사가 이어졌다.

군부세력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악은 학생-노동자 주축군에 넥타이 부대가 가세함으로써 그 힘의 균형추가 기울었다. 폭압적인 군부파쇼의 삼엄한 눈초리에 기죽어 있던 화이트 칼라층이 학생-노동자 편에 섬으로써 21년전 6.10 항쟁은 국민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었다.

 보수단체들이 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연단에 오른 한 예비역 대령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탄띠에는 총알(?)까지 한발 담겨 있었다. 이들은 집회에서 "오늘 시위대가 불법을 저지르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호언장담 하기도 했다.
 보수단체들이 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연단에 오른 한 예비역 대령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탄띠에는 총알(?)까지 한발 담겨 있었다. 이들은 집회에서 "오늘 시위대가 불법을 저지르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호언장담 하기도 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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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평화적인 촛불집회'

국민들은 보수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지난 세월동안 '민주'라는 공기를 마음껏 맛 보았다. 국민들 뇌리에 한번 기억된 그 '민주'라는 공기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라는 얄팍한 셈법으로 국민들의 옛 향수를 자극했다. 서민경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아닌 표를 구하기 위한 셈법으로 접근했고, 일견 어리석은듯한 국민들은 그에게 환호성을 건넸다.

이명박 정부는 70년대식의 사고관으로 국민들을 대하면 만사형통하리라는 생각을 했음직 하다. 하지만 지난 10년동안 맛본 '민주'라는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낸 지상 최강의 시위대가 출현하리라는 것은 그들의 셈법에 없었다.

21년 전 시위대가 각목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섰다면, 21년이 흐른 2008년 6월 10일에는 각자의 손에 카메라를 들고, 어깨에 노트북을 걸쳐매고 거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여론의 아젠다가 일부 메이저 언론이 아닌 국민들 손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일반 국민들이 거리에서 직장에서 실시간으로 올리는 의견들은 시위의 양상을 전혀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기존 메이저 언론만 잡고 있으면 해결되는 게 국민 여론이라는 공식에 그 조종을 울린 것이 2008년 6월 10일의 실체가 아닌가 한다.

국민들은 최루탄을 그리고 경찰의 소화기 세례를 원치 않았다. 단연코 '평화'였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시위현장에서 그대로 전달되고 그것이 여론으로 굳어졌다. '평화'는 2008년 6월 10일 집회에 참가한 100여만 국민들의 하나된 염원이었다.

 6월 10일 시청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보수단체의 집회에 항의하던 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고 있다.
 6월 10일 시청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보수단체의 집회에 항의하던 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고 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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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 불 밝힌 '촛불'이 '횃불'로 바뀌기 전에

국민은 어리석은듯 하지만 한없이 현명하고, 느리고 굼뜬 것 같지만 한번 화나면 번개보다 빠르고 성난파도와 같이 움직인다.

6월 10일 광화문 사거리에는 작은 촛불만이 꺼질듯 꺼지지 않고 작은 불을 켰을 뿐이다. 그 촛불의 양이 100만 개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각자 귀가길에서도 상징처럼 전철안에서 버스안에서 촛불을 켜 들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촛불이 횃불로 바뀌는 순간 그의 이름은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행하고 있는 오만과 독선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맛본 '자유'라는 공기에 매우 거슬리는 듯한 불과 100일 남짓동안의 역거운 냄새에 고개 돌리고 '이명박 물러가라'라고까지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하나다.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받아들이고 즉각적인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이 횃불을 들기 전에 70, 80년대의 도저히 맡기 고약스러운 독선과 아집을 과감히 포기하고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만이 남은 임기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민주'에 대한 기억을 국민들 뇌리속에서 지울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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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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